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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8-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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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서 섬으로 가는 여행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하지만 울릉도를 향하는 마음은 더욱 들떠 있었다. 울릉도에서만 사는 섬말나리가 딱 지금 제철이기 때문이다. 4박5일간 동행하는 꽃전문 작가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울릉도행 페리 안에서도 섬말나리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섬말나리, 그 낯선 여름의 색
울릉도에 도착한 건 오후 1시. 점심으로 간단하게 김밥을 먹고 안평전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조금 지났다. 한낮의 열기가 절정에 달한 시간이었지만 섬말나리를 만날 거라는 기대감은 더위조차 큰 장애가 아니었다. 현대카드 사람들이 주로 찾는 KBS 중계탑 코스 대신, 인적이 많지 않은 안평전 코스를 택했다. 이 길은 더 짧지만, 그만큼 더 가파르다. 성인봉까지는 1km쯤 더 짧지만, 발걸음마다 숨이 찼다. 해지기 전에 나리분지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시간의 압박도 있었다.
연평전 입구부터 빨간 말오줌나무가 가득했다. 찌는 듯한 더위와 맞서며 걷다 쉬기를 반복 씨티은행 새희망홀씨 하며 성인봉으로 향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산길까지 스며 들었어도 여전히 뜨거웠다. 하지만 그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준 건, 섬말나리였다.
1km도 채 걷지 않았을 무렵부터 노란빛 꽃잎에 갈색 반점이 찍힌 섬말나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걸음을 멈추고 셔터를 누르기를 반복했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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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전 전망대 입구에 수국이 관음도 앞바다를 배경으로 화려하게 피어 있다.
산등성이마다 펼쳐진 섬말나리 군락은 요정들이 춤추는 듯한 풍경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은은한 꽃향기가 바다 냄새와 섞여 울릉도만의 독특한 향기를 만들어냈다. 중금리
정상 1.5km 전쯤부터는 꽃이 보이지 않고 봉오리만 보였다. 해가 지기 전에 안전하게 산행을 마치려면 이제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숲이 더 깊어졌다. 울릉도 원시림을 느끼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길은 없을 것 같았다. 초록 터널 속으로 들어서니,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축축하면서도 청량한, 수만 년 동안 인 주택담보대출 방공제 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원시의 숨결이었다.
오후 5시, 986.7m 성인봉 정상석 앞에 섰다. 땀으로 젖은 옷, 후끈한 얼굴, 하지만 마음은 시원하게 확 트였다.
안평전에서 성인봉으로 오르는 능선길에는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섬말나리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하산은 나리분지 방향. 오후 5시 10분부터 시작된 하산길. 시작 부분엔 산책길이었지만 이어서 가도 가도 끝없는 계단길이 이어졌다. 예전에 누군가의 글에서 보았던 '계단 1,800개'라는 표현이 문득 떠올랐다. 진짜 그랬다. 정말 많았다. 그래도 웃기만 했다.
오후 5시 40분, 계단 끝 신령수 약수터에 도착했다. 목이 바싹 말랐을 때 만난 선물이었다. 울릉도 화산토가 만들어낸 천연 필터를 거친 물의 맛이었다. 약수터를 내려온 계곡엔 아직도 겨울 잔재가 남아 있었다. 얼마나 눈이 많이 왔기에 한여름에도 계곡에 빙하처럼 눈이 남았을까? 성인봉이 정말 크고 깊은 산임을 다시 느꼈다.
계단이 끝나고 이젠 오솔길. 참으로 평화로운 길이었다. 누군가와 데이트하기 좋은 그런 길이었다. 저 멀리 나리분지가 보였다. 그런데 지난겨울의 피해가 아직 남아 있었다.
석포옛길에서 은은한 종소리처럼 고요히 피어난 섬초롱꽃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투막집을 지나니 산책길. 숲의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나리분지가 열렸다. 오후 6시 30분, 이 긴 여정의 마무리는 울릉도 산채비빔밥 한 그릇. 꽃과 땀, 약수와 흙내음이 어우러진 하루의 마침표였다.
울릉도에 가거든, 성인봉의 꽃길을 걸어보길. 그 길엔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섬말나리가 피고, 숨이 차지만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이 기다린다. 지구상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여름에만 만날 수 있는 기적 같은 꽃과의 만남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고단함도 기꺼이 감수할 만하다.
바람과 길, 섬을 걷다
성인봉에서 섬말나리와의 감동적인 만남을 뒤로 하고, 이제 울릉도의 또 다른 속살을 들여다볼 시간. 산 위에서 느꼈던 원시림의 신비로움과는 또 다른 매력, 바다와 맞닿은 울릉도의 해안길을 걸었다.
성인봉을 감싸는 원시림은 축축하면서도 청량했다. 수만 년 동안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원시의 숨결이 느껴졌다.
바다 위를 걷다, 울릉해담길 1코스
과거엔 도동과 행남마을 주민들이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걸었던 길.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산책로'로 변신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기암절벽과 천연동굴, 그리고 짙은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전체 길이는 1.9km, 소요 시간은 1시간 남짓. 저동에서 시작한 길은 도동에서 끝난다. 코스 난이도는 초중급 정도. 걷다 보면 해안에서 살짝 산 쪽으로 올라야 하는 구간과 소라계단이 살짝 숨차지만 길 자체가 길지는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다. 무엇보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걷는 걸 추천한다.
바다와 절벽, 그리고 바람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서두르기엔 너무 아까웠다. 발걸음마다 코끝으로 스며드는 짠 바다 냄새와 피부를 어루만지는 해풍의 부드러운 터치가 온몸의 감각을 깨웠다.
암반을 뚫고 만든 피암터널을 지나고 코발트빛 다리를 건너며 만난 바다로 떨어지는 해식폭포는 보너스였다. 터널 안의 서늘함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서는 순간, 눈부신 햇살과 함께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바다는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진짜 감탄할 순간은 따로 있었다.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놓인 오징어다리와 해안 절벽을 휘감는 소라계단은 그 자체로 인생사진 포토스팟이었다. 파도가 발아래에서 부서지고 햇살은 반짝이며 바다 위를 춤추었다. 이탈리아 친퀘테레보다 더 멋진 울릉도 해담길이었다.
소라계단을 올라와 숲이 무성한 좁은 오솔길을 마주했다. 저동에서 도동으로 가는 옛길이다. 숲을 헤치고 조금 숨을 몰아서 언덕을 올라오니 하늘이 열리고 바다가 보였다. 도동 해안산책길을 걸으며 에메랄드빛 바다에 흠뻑 빠져 있노라면 어느새 도동항에 도착했다. 바다와 절벽이 만든 이 길은 걸을 때마다 새로운 각도에서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다.
안평전 코스는 들머리에서 성인봉까지 약 2.7km. 짧지만 경사가 매우 가팔라 만만치 않은 길이었다.
울릉도의 속살을 느끼다, 석포옛길
울릉도의 속살을 느끼고 싶다면, 도민들이 걸었던 옛길을 따라가야 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내수전에서 석포까지 이어지는 옛길이다. 이 길은 울릉해담길 3코스의 일부이기도 하다. 전체 거리 약 4.4km, 난이도는 '하'. 석포와 내수전을 잇는 도로가 연결되지 않았을 때는 이곳 사람들은 배를 이용하거나 차로는 서면과 북면을 지나 무려 34km 거리를 둘러가야 했다. 배가 뜨지 못하는 날엔 폭풍우 속에서 사람들은 이 길을 걸었다. 생활을 잇기 위해, 생명을 잇기 위해, 이 숲길은 그들에겐 삶의 연결통로였다.
길은 넓지 않았다. 단출한 숲속 오솔길, 딱 한 사람이 걸어가기에 넉넉했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울창한 원시림이 품은 생명들이 눈에 들어왔다. 발밑에서는 수백 년 동안 쌓인 낙엽들이 푹신하게 밟히고, 코끝으로는 축축한 흙냄새와 나무들이 내뿜는 싱그러운 향기가 스며들었다.
바람 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 새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며 걷다 보니 울릉도에만 피는 섬말나리, 고요한 종처럼 피어난 섬초롱꽃들이 가끔씩 인사를 건네주었다. 걷는 내내 죽도가 곁을 따라왔고, 길은 어느새 시간의 깊숙한 안쪽으로 나를 이끌어갔다.
내수전 전망대 입구에서 정매화골을 거쳐 석포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등산로가 아니라 숲속 산책길이라 걷기엔 최고의 코스였다. 시간의 깊이를 담고 있는 이 길을 걷지 않고서는 울릉도를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 이 길을 걸으며 비로소 울릉도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울릉도의 숨겨진 비경, 염소골폭포. 절벽에서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폭포라 배를 타야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울릉도의 비밀 폭포
해안길과 옛길을 걸으며 울릉도의 다양한 얼굴을 만났지만, 연일 계속되는 살인적인 더위는 피할 수 없었다. 육지보다 시원하다는데 한여름 태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땀이 줄줄 흐르는 오후, 문득 떠오른 것은 폭포였다. 폭포가 주는 시원함은 단순히 온도의 문제가 아니다. 바위 틈새로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물방울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바람과 음이온이 온몸을 감싼다. 이럴 때 폭포는 쉼을 주는 공간이다.
울릉도에는 두 개의 대표적인 폭포가 있다. 하나는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봉래폭포, 그리고 또 하나는 드론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비밀의 폭포, 염소골폭포다.
봉래폭포 바위와 폭포가 만들어낸 절경, 그리고 울릉도 자생 식물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 멋진 곳이다. 낙차 약 30m, 각기 다른 암석으로 이루어진 3단 폭포이고 하루 유량이 약 3,000톤 이상, 울릉도 남부 지역의 상수원이다.
입구에서 봉래폭포까지 2km 정도를 올라가야 한다. 조금 경사가 진 길이라서 쉬엄쉬엄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올라가는 길 자체도 울릉도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25m 높이에서 세 단계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봉래폭포. 그 물줄기를 보고 있노라니 울릉도의 매력에 다시금 빠져들었다.
봉래폭포를 오르는 길에 꼭 들러봐야 할 곳이 바로 풍혈. 천연 에어컨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온몸이 오싹할 정도로 추웠다. 바위들 사이에서 이렇게 찬바람이 나오다니? 너무 신기했다. 올라오며 엄청 땀을 흘렸는데 어느새 땀이 말랐다.
한여름에도 4℃를 유지하는 이 신비로운 공간은 지하수의 찬 공기가 바위틈으로 흘러나와 만들어진 자연의 선물이다.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에 이보다 더 완벽한 휴식처가 또 있을까.
울창한 삼나무 숲에는 산책길이 있었다. 나무들이 하늘 향해서 어찌나 쭉쭉 뻗었는지. 그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이 벌써부터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짧아서 아쉬웠지만, 폭포로 향하는 전주곡 같은 길이었다.
전망대 도착. 하늘에서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봉래폭포를 마주하니 울릉도의 매력에 다시금 빠져들었다. 25m 높이에서 3단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었다.
단출한 숲속 오솔길, 석포옛길에서는 원시림이 품은 생명들이 조용히 발길을 멈추게 했다.
염소골폭포
염소골폭포는 안용복기념관 아래쪽 해안가 절벽에 위치해 있다. 높은 절벽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지형에 폭포수가 흘러들며 만들어낸 독특한 경관이 특징이다. 절벽에 굴처럼 움푹 파인 부분에서 물이 쏟아지는데 이 굴이 염소가 살던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져서 '염소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절벽에서 바로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라서 바다 위에서만 볼 수 있다. 배나 유람선을 타고 접근해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일반 유람선은 너무 멀리서만 보아서 그 감동이 전달되지 않는다.
안용복 기념관 아래 해안 절벽을 따라 조심스럽게 드론을 띄웠다. 비가 많이 와서 수량이 많아 더 장관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염소골폭포는 자연이 만든 비밀 정원 같았다. 절벽과 바다, 그리고 폭포가 어우러진 풍경은 지상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울릉도만의 숨겨진 보물이었다.
떠나는 배 위에서
야영장을 폐쇄시킬 만큼 거센 강풍으로 종일 숙소에만 머물렀던 시간도 있었지만 성인봉 원시림에서 마주한 섬말나리, 숨막히게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를 선물해 준 울릉해담길, 시간의 깊이를 느끼며 걸은 석포옛길, 드론으로만 만날 수 있는 비밀의 염소골폭포까지. 울릉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 주었다.
떠나는 배 위에서 바라본 울릉도는 여전히 신비로웠다.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이 작은 섬 하나가 이토록 많은 이야기와 감동을 품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4계절 모두 다른 아름다움을 선물하지만, 여름의 울릉도는 오직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야생화들로 인해 걷는 즐거움이 더욱 특별했다.
Info
울릉도 배편 정보
오래전 울릉도 여행은 쉽지 않았다. 수시로 변하는 날씨 덕분에 바닷길이 닫혀서 울릉도에 묶이는 경우도 많았지만 요즘은 대형 페리 운항으로 결항되는 날은 거의 없어서 다른 어떤 섬보다 안심하고 여행할 수 있는 섬이 되었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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