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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8-0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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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엥~.’
2025년 7월22일오전 11시께 서울의 한 건설 현장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빨간 안전모를 쓴 김아무개 반장이 “아싸, 폭염경보!”라고 외쳤다. 뜨거운 햇살을 잔뜩 품은 콘크리트 바닥과 철근 등 건축자재 때문인지 현장 온도는 이미 36도를 돌파했다. 습도 역시 71%를 넘었고, 체감온도는 37.5도까지 올라 ‘경고’(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체감온도 산출표 기준)에서 ‘위험’ 구간으로 넘어서고 있었다.
시스템·동바리 직무에 지원했다
교사학원강사
7월22일 서울 서초구의 한 건설 현장에 투입되기 전 받은 안전모.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저희 그럼 뭘 해야 하지 않을까요?” 분출하는 땀 때문에 자꾸만 미끄러지는 흰색 안전모를 잡아 올리며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건설 현장 우리미소금융 에 투입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시간에 들었던 강사의 말이 번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35도가 넘어가면 현장에서 ‘집에 가라’고 할 겁니다. 45분 일하고 15분 쉬어야 하거든요. 안 지키면 고발하셔야 합니다.”
현장에 처음 투입된 ‘신규’(현장에서는 새로 온 직원을 이렇게 불렀다)가 두 눈을 동그랗게 개인파산자격조건 뜨고 던진 질문에 빨간 안전모를 쓴 김 반장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응? 그건 나도 모르지.”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시선을 피한 그는 곧장 무전기로 타워크레인 조종사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기자는 차마 “쉬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다시 하늘에서 내려오는 타워크레인 줄을 기다렸다.
이 건설 현장의 원청은 시공능력평가액 4200억원 무직자주부대출 이상인 1군 건설사였고, 형식적으로나마 안전·보건 교육이 이뤄졌다. 하지만 온 나라가 떠들어대는 폭염 대책은 불법·탈법·편법이 판치는 건설 현장에선 작동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가 만들어 2025년 7월17일 시행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현장에 당부했다던 ‘폭염안전 5대 기본수칙’은 하청의 하청인 ㄴ업체 건설노동자에게 언감 부산저축은행비대위 생심이었다. “팀장이 쉬자고 할 때 쉽니다.”(현장 노동자 20대 정아무개씨) 2시간마다 20분 휴식? 현장에선 빨간 안전모의 말이 곧 법이었다.
7월21일 온라인 공고를 보고 경기도의 ㄱ인력사무소에 찾아갔다. 그곳에서 시스템·동바리(비계 설치) 직무에 지원한 또 다른 구직자와 함께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ㄴ업체로 보내졌다. 해당 업체는 서울의 건설 현장 시공사의 ㄷ하청업체로부터 불법으로 하도급을 받아 비계(높은 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돕는 임시 구조물) 조립 용역을 제공하는 업체다.
건설 현장 투입 노동자들이 반드시 받아야 하는 ‘배치전 검사’(노동자가 해당 업무에 적합한 건강 상태인지를 평가하는 건강진단)를 마치고 ㄴ업체 사무실에 도착하자, 자신을 담당 팀장이라 소개한 정아무개씨가 인사를 건넸다. 그는 곧바로 사무실 인근의 숙소로 우리를 안내했고,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오늘만 이렇게 존댓말을 쓰지 내일부터는 반말을 쓰게 될 겁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그냥 사람이 나르는 업무라고 보면 돼요. 현장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임의로 행동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솔직하게 말할게요. 다치거나 죽습니다. 위험한 곳으로 많이 올라갑니다.” 건물 외벽 등 접근이 힘든 위치에 자재를 운반·설치하기 위해 비계가 필요한데, 각종 철제 부품(작업 발판, 수직재, 수평재 등)을 들고 올라가 비계를 조립하는 과정에서 고소(높은 곳) 작업이 필요하다.
폭염은 건설 현장의 노동시간을 바꾸고 있었다. 업무 시간은 해가 뜨기 전인 새벽 5시부터 오후 1시까지로 변경됐다. 기존 업무 시간은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다. “너무 일찍 시작한다”는 기자의 말에 정씨는 “점심시간부터 수직재와 수평재가 (햇볕에) 달궈져서 뜨거워진다. 그래서 오후 1시부터는 일할 수 없다”며 “(더운 오후에 일했을 때) 현장소장 말대로 2시간 일하고 20분 쉬어봤는데, 이미 체력이 바닥나서 일을 못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한번 맛탱이 간 애들은 20분을 쉬든 30분을 쉬든 (정신이) 되돌아올 수가 없거든.” 팀장 정씨가 휴대전화 속 건설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읊조렸다.
끝없이 열을 뿜어내는 섬 같은 현장
가설 울타리에 둘러싸인 건설 현장은 주변 환경과 차단된 채 끊임없이 열을 뿜어내는 섬과 같았다. 펄펄 끓는 열기를 식혀줄 나무 그늘 하나 없고, 가설 울타리에 둘러싸인 공간에선 더운 공기가 빠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햇볕은 수직으로 내리쬐고, 건물이 올라가는 콘크리트 바닥은 착실하게 달아오른다. 이런 환경 탓에 건설 현장의 온도는 주변보다 최소 5~7도 높게 측정됐다. “바깥 온도가 30도라도 재건축·재개발 현장의 체감온도는 43~44도 찍어요.” 건설업 30년 경력인 김민규(56)씨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한겨레21은 폭염 노동이 신체에 끼치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지티에이컴(ZTACOM)이 개발한 반지형 건강 모니터링 기기 ‘바이탈링’을 착용하고 작업에 나섰다. 바이탈링은 착용자의 심박수, 피부온도, 운동량을 측정하고 스트레스를 분석해 실시간으로 건강 이상 징후를 살피도록 해주는 기기다. 실제 복지관이나 요양병원 등에서 치매환자, 노인, 암환자 등의 몸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다.
7월22일 아침 8시 기상청이 발표한 서울시 온도는 28도. 건설 현장 노동이지만, ‘못 견딜 만큼은 아닐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침 8시47분, 몸에 차고 있던 디지털 온습도계가 34도를 가리켰다. 습도는 70%까지 올라섰다. 공식 업무가 끝나는 오후 1시까지 디지털 온습도계의 수치는 단 한 번도 내려가지 않고 꾸준히 오르기만 했다. 이날 서울의 기온은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28도에서 시작해 최대 31도까지 올랐지만, 같은 시각 현장은 34도에서 출발해 38도를 돌파했다. 체감온도는 그보다 높은 ‘위험’ 단계를 찍었다.
7월 22일 서울 서초구 한 건설 현장에서 한 노동자가 타워크레인 기사와 소통하며 ‘줄걸이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습도 역시 공사 현장 곳곳에서 측정한 결과 50~80%대를 나타낼 만큼 무더웠다. 공사판에서 건물이 올라가는 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흡사 펄과 같은 흙판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햇볕을 받아 수분을 뿜어내면서 체감온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구역에 따라 온도 격차도 확연했다. 오전 11시35분께 건물 옥상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작업하다 측정한 체감온도는 37.25도(기온 35.1도·습도 80%)였으나, 흙바닥 위 산더미처럼 쌓인 비계 부품을 타워크레인에 매다는 ‘줄걸이 작업’ 현장에서 낮 12시10분께 확인한 체감온도는 40.25도(38.5도·73%)였다. 이 순간 바이탈링으로 측정한 상대피부온도(평상시 체온을 기준으로 상대적 체온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 역시 절정(+3.2도·경고 단계)으로 치달았다.
오전 10시, 쇠파이프 형태의 비계 부품에 손을 살짝 대보니 뜨끈함이 느껴졌다. 사람 어깨높이만큼 쌓인 비계 부품의 복사열이 본격적으로 노동자의 진을 빼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기다란 부품 수백 개는 격자무늬로 빈틈없이 빼곡하게 쌓여 한 덩어리를 이뤘는데, 여러 사람이 4~6개씩 조립 위치로 옮기기 전까지 거대한 난로 같은 구실을 한다. 이런 덩어리가 현장에서 많게는 5~6개가 한데 모여 있다. 20대 정씨는 “오후 1시부터는 아예 뜨거워서 들 수도 없다”며 여름용 냉방 목토시 착용을 권했다.
고무로 코팅된 목장갑과 목토시는 이때부터 화상을 막는 보호구 구실을 한다. 같은 날 입사한 또 다른 ‘신규’ 박아무개씨는 이날 일이 끝난 뒤 “날이 많이 더웠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장갑을 껴서 그나마 (자재를) 나를 수 있었지… 햇볕이 뜨거워서 얼굴이 달아오르는데 땀이 흐르니 넥워머도 자꾸 벗게 된다”며 “예전에 평택 공장에서 한 덕트(건물 내부 환기 및 냉난방을 위한 공사)가 훨씬 낫다고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7월22일 서울 서초구의 한 건설현장에 쌓여 있는 비계 부품.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체감온도 38.8도 ‘위험’ 상대피부온도 +3 ‘경고’?
고온 기계·설비 등의 물체 표면에서 방출되는 복사열은 태양열과 뒤섞여 건설 현장을 최악의 폭염 취약 지역으로 만든다. 박세중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7월23일 국회에서 열린 ‘더우면 쉴 권리: 폭염 속 온열질환 예방 토론회’에서 “콘크리트에는 화학약품을 많이 섞기에 타설 노동자들은 화상이나 피부질환을 피하고자 여름철에도 통풍이 잘되는 얇은 작업복을 입을 수 없다”며 “타설된 콘크리트가 내뿜는 수화열 때문에 일을 시작하면 1시간도 안 돼 장화에 땀이 차 움직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복사열은 ‘폭염 작업’을 규정하는 요소에서 빠져 있다. 류현철 공익재단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건설 현장은 콘크리트와 철근 구조물이 많아 노동자들이 복사열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며 “(휴식 주기 기준인) 체감온도는 복사열과 작업자의 복장을 고려하지 않기에 현장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더 정교한 지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노동자 중 건설업 종사자는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근로복지공단이 작성한 온열질환 산업·업종별 산재 승인 현황을 보면, 2022년 사망 5건 포함 23건→2023년 사망 4건 포함 31건→2024년 사망 2건 포함 51건으로 해마다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산업·업종 중 건설업 종사자의 온열질환 산재 승인 비중은 60.8%(사망 5건 포함 14건)→29%(9건)→49%(25건)로 나타났다.
온열질환이 산업현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산재 신청 및 승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 산재에 해당하더라도 요양 기간이 4일 이상일 때만 진료비 등을 받을 수 있기에 노동자들이 미리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에 해당하더라도 3일 이내 요양으로 치유가 가능하면 요양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받을 돈이 없다고 생각하면 산재 신청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장광석.
‘에엥~.’ 오전 11시에 이어 오후 1시께 두 번째 폭염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두 번째 사이렌이 울리기 전 한 시간 동안 한곳에 서서 타워크레인 줄걸이 작업에 매진하다 보니 상대피부온도는 +2.7→+2.8→+3.0도로 꾸준히 오르며 ‘주의’, ‘경고’ 단계임을 연이어 표시했다. 땀 흘리며 움직일 때보다 뙤약볕 아래 가만히 서 있는 게 훨씬 더 위태롭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기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는 물을 수 없었다.
낮 12시58분 체감온도는 38.88도(36.5도·81%)로 ‘위험’ 단계를 찍었다. 모공 기능이 고장 났는지 얼굴은 세수를 막 끝마친 듯 땀범벅이 됐고, 속옷까지 모두 젖었다. 정신이 혼미해 작업 중 허벅지가 전부 드러날 만큼 바지가 찢어진 줄도 몰랐다. 오히려 바지가 찢어져 통풍되는 게 다행으로 느껴졌다. 뜨겁게 달아오른 비계 부품을 짊어지고 돌아다니다보니 어깨가 붉게 붓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갈증에 미지근한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이 있는 천막 휴게실 앞 휴대용 정수기로 달려가 서너 번 물을 마셨지만, 쏟아지는 땀에 화장실을 가고 싶은 욕구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화장실은 대부분의 작업 현장에서 보이지도 않았다.
오후 2시. 흰색 카니발이 숙소 앞에 멈춰 섰다. 팀장 정씨는 ‘맛보기’로 일해놓고 눈 초점이 풀려버린 신규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많이 덥지? 그래서 새벽 5시부터 일해서 오후 1시에 끝내는 거야. 아니면 죽거든.” 실제 7월7일 경북 구미 산동읍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베트남 노동자 ㄱ(23)씨의 경우 ‘혹서기 노동 단축’을 적용받지 못한 상태에서 오후 4시쯤 숨진 채 발견됐다.
하청 구조 복잡할수록 ‘폭염 관리’ 안 돼
“외국인이 더 많은데 이게 의미가 있나?”
7월22일 아침 7시. 자신을 원청회사 안전관리자라 소개한 심아무개씨는 교육장에 있는 열댓 명의 신규 노동자를 훑어본 뒤 이렇게 말했다. “한국말 할 줄 아는 사람?” 이 물음에 손을 든 사람은 단 4명에 불과했지만, ‘근로자 신규 특별교육’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말로 진행됐다. “그냥 잘 보고 알아들으세요.” 두 눈만 끔벅이며 앉아 있는 러시아, 중국인 노동자들을 보며 심씨가 말했다. 스크린에 펼쳐진 교육 자료 역시 모두 한국어였다.
40분 동안 이어진 교육은 사고 산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원청회사가 맡아온 현장에서 실제 발생한 사망사고 영상이 유형별로 스크린에 상영됐다. 심씨는 사고를 둘러싼 전후 맥락을 한국말로 설명했다. 심씨에 이어 강연대에 오른 보건관리자는 마지막에 온열질환을 언급했다. 그는 한국말로 “올해 건설 현장에서 베트남 청년 한 명이 사망했다”며 “힘들면 쉬어야 한다. 다만 쉴 때도 꼭 2명이 함께 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열질환 관련 예방 대책이 담긴 표지판은 비닐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교육장 뒤편에 방치돼 있었다.
ㄷ하청업체 직원을 따라 현장에 내려간 순간부터 원청이 강조한 모든 폭염 안전 수칙은 무력화된다. 원·하청이 사라진 현장은 불법 하도급을 받은 ㄴ업체 직원들에 의해 통제됐다. 현장 체감온도는 35~40도를 오갔지만, 노동부에서 강조하는 휴식 주기는 지켜지지 않았다. 오로지 “팀장이 쉬자고 할 때 쉰다”가 유일한 휴식 원칙이었다. 정해진 공식 휴게 시간은 없었다. 빨간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수시로 무전기로 소통하는데, 휴식 여부 역시 이때 정해졌다. 그래서 누구도 언제 쉬는지 알 수 없다. 시스템·동바리 노동자들은 모여서 일하다 수시로 다른 구역으로 찢어지기도 하는데, 이때 차출된 노동자들은 쉴 틈 없이 다른 작업에 투입돼야 했다.
작은 현장일수록, 다단계 하청 구조가 복잡할수록 현장의 폭염 대처 능력은 떨어진다. 류현철 이사장은 “실제로 원청에서 아무리 온열질환에 신경 쓴다고 해도 하청 단계가 많아지면 관리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건설에서 재하도급은 2차 이상 넘어가지 못하게 돼 있음에도 관행처럼 불법 하도급이 펴져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작은 현장일수록 폭염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빨리 짓고 빨리 만드는 데 몰입한다. 불시 점검으로 현장 소장에게 위반 사항을 지적해도,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던 대로 한다”고 털어놨다.
2025년 7월29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 역시 불법 다단계 하도급 문제가 안전 대책을 무력화하는 구조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공사 현장에 가보면 하청을 한 번만 하는 게 아니고 하청의 하청, 하청의 하청의 하청,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 네 번 다섯 번씩 하청이 되면서 원 도급 금액의 절반 정도로 실제 공사가 이루어지니까 안전시설이나 안전 조치를 할 수가 없다”며 “포스코이앤씨 같은 데서 1년에 5명(올해 4명 사망, 1명 부상)씩 이렇게 산재 사망 사고가 나는 것도 아마 그런 거와 조금은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진짜 쉴 수 있는 휴게실 갖춘 곳 드물어
7월22일 서울 서초구 한 건설 현장에 투입된 ㄴ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작업 도중 그늘에서 쉬고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현장 관리자의 경각심과 같이 깊게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요소를 제외하고는 단시간에 쉽고 빨리 점검할 수 있는 항목들은 잘 구비돼 있다. 한 예로 눈에 띄는 곳에 간이 천막 휴게실이 마련돼 있었고, 내부에는 대형 선풍기와 산업용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다. 식염포도당 역시 손에 닿는 거리에 배치돼 있었고 디지털온도계도 보였다. 시원한 물이 담긴 휴대용 정수기 역시 휴식 시간에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다만 실효성에는 물음표가 붙었다.
먼저 휴게실 공간은 성인 남성 6명이 들어가기에도 비좁았다. 구역마다 노동자 수십 명이 작업하는데, 휴게실에 모두 들어갈 수 없다 보니 거의 모두 그늘을 찾아 휴식을 취했다. 설치 장소 역시 콘크리트 바닥 위라 내부 온도가 바깥에 견줘 1~2도 낮을 뿐이었다. 김인아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과)는 “(휴게실이) 콘크리트 바닥 위에 설치돼 있거나 햇볕이 떨어지고 복사열이 강한 곳에 있어 걱정된다”며 “그늘막 내 습도가 높으면 오히려 (휴식에) 도움이 안 된다. 습도까지 고려해 자세한 (휴게실)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5년 산업안전보건공단의 폭염예방키트(식염포도당·아이스팩·쿨매트·이온음료·쿨토시·쿨타월 등) 예산은 9억8천만원으로 전년(2억4500만원)에 견줘 대폭 증가했지만, 현장 사정은 달랐다. 시스템·동바리 직무에 한해 개인 보냉 장비를 착용한 노동자는 없었다. 현장 투입 전 개인 텀블러 사용이 가능한지 묻는 말에 “한번 들고 가봐라, 마실 수나 있는지”라는 냉소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이는 휴게 공간을 떠나 작업하게 되면 물 마실 방법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2021년 5월, 기자와 같은 시스템·동바리 노동자로 일하던 서아무개(43)씨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그해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고 산재 신청을 한 노동자는 대한민국에 2명 있었고, 모두 건설업 종사자였다. 서씨는 서울 광진구 재건축 현장에서 일하다 퇴근 직후 구토와 경련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서씨는 2022년 산재 승인을 받았다.
기자가 간 현장의 시공사인 1군 건설사 역시 온열질환 사망자가 나온 사례가 있음에도 이를 교육 시간에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서씨의 죽음으로부터 4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원청이 짧게나마 강조한 폭염 대책은 현장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서울 내 금싸라기 땅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공사였으나, 폭염 안전 5개 기본 수칙마저 내실 있게 지켜지지 않았다. “1시까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현장에서 간간이 “도대체 언제 쉬냐”는 푸념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왔지만, 빨간 안전모에 닿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
7월22일 하루 만에 현장을 탈출한 뒤 받은 임금은 2500원이었다. ㄴ업체는 채용 전 배치전 검사 비용을 7만5천원이라고 소개한 뒤 “여기서 20일 만근을 하지 않으면 일당에서 공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고도 했다. 배치전 검사는 사업주 부담이라고 법으로 규정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현장 투입 전 원청에서 실시하는 교육 역시 업무 시간에 포함되지 않았다. 새벽 3시30분, 다 함께 출발해 현장에 도착했지만 의무 교육 시간을 빼고 반공수(반나절 근무)에 해당하는 임금(7만7500원)만 받았다. ㄱ인력사무소는 “반공수인 데다 한 달(도 되기) 전에 그만둬서 배치전 검사 비용이 빠져 2500원만 지급된 것”이라며 “힘들게 일했는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폭염예방키트 예산 9억8천만원은 어디로?
오후 1시께 작업 종료가 선언된 뒤 현장에 있는 식당으로 직행하니, 에어컨 바람이 온몸의 감각을 깨웠다. 온몸의 에너지를 폭염에 뺏겨 식욕마저 달아나 점심 식사량은 새벽 4시20분께 먹은 아침 식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함께 일한 노동자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얼굴을 싸맸던 냉감 천을 벗어던지고 손짓이 아닌 대화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건설현장 전경.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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