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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8월8일 도쿄의 도심에 있는 호텔에서 대낮에 벌어진 김대중 납치사건의 진상규명을 평생 과업으로 삼아 생의 마지막까지 분투했던 후루노 요시마사 선생(이하 경칭 생략)이 지난 16일 세상을 떠났다.
기자 정신의 정수를 온몸으로 보여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6월이었다.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가 조사 대상의 하나인 김대중 납치사건의 결과를 발표하려 하자 일본 정부가 수십년 전에 마무리된 것을 재론하려는 저의가 뭐냐고 은밀하게 딴지를 걸던 무렵이었다. 배경을 취재해보려고 납치사건 당시 구원운동에 관여했던 일본인터넷황금성
인 인맥을 소개받고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한승헌 변호사를 찾아갔다. 용건이 끝나 일어서려는데 한 변호사가 신간이라며 한권을 건네주었다. 후루노의 역작 ‘김대중사건의 정치결착’이었다. 다나카 정권이 주권침해 사건을 흐지부지 덮으려 했던 과정이 흥미롭게 기술돼 있어 단숨에 읽었다. 꼭 만나야 할 취재대상이라고 생각해 전화했더니 오사카에 오면 어디에씨엔조이 릴게임
묵을지 알려달라고 했다. 잠시 후 이번에는 그가 전화를 걸어와 송건호(한겨레신문 초대 사장) 선생을 존경한다는 말을 했다.
서울특파원 부임한 해 사건 벌어져 연금 중이던 자택 종종 방문해 필담 ‘김대중 밀착 일본인 기자’ 딱지 붙어 귀국길 공항서 중정에 연행될 뻔도
자위대 정보요원들 집요하게 추적 납치 관련 기밀 내용 무료백경
담은 책 발간 2년 전 병상서도 “새 책 내겠다” 의욕
1936년 기타큐슈에서 태어나 교토대학을 졸업하고 마이니치신문에 들어간 그는 마이니치 오사카 본사에서 주로 일했다. 경찰 사법 검찰을 담당해 뼛속까지 사회부 기자였던 그는 1973년 3월 서울특파원으로 부임했다. 외신부 근무 경험이 전혀 없어 다소 이례적인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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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뉴스를 일본 신문에서 크게 다루지 않던 시절이어서 일본 적군파의 요도호 하이재킹(1970), 대연각호텔 화재(1972) 같은 돌발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쓸 것이 없어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런 한가한 기우는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싹 사라졌고 속보를 계속 써대느라 길어야 2년 정도인 부임 기간이 3년으로 연장됐다.
그는 납치초대박주
당일 김대중이 실종됐다는 본사의 연락을 받고 바로 동교동 김대중 자택으로 달려갔다. 내외신 기자를 통틀어 가장 먼저 도착했다. 국외에서 반유신 투쟁을 벌이다 중앙정보부 공작으로 강제로 끌려온 뒤 연금과 투옥생활이 이어지던 김대중에게 그는 신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외신 기자였다. 이따금 인편을 통해 동교동으로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찾아가면 ‘도청이 안 된다’는 방에서 얘기하거나 필담을 나누었다. 그 때문에 박정희 정권으로부터는 ‘김대중 밀착 일본인 기자’라는 딱지가 붙여졌다.
1976년 3월 3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을 때 김포공항에서 당했던 봉변은 그가 유신 시절 어떤 상황에서 일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중앙정보부 직원은 그의 가방을 샅샅이 뒤지고 긴급조치 위반 문서가 나왔다며 연행하려 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나와 있던 일본대사관 직원 5명이 막고 나서 겨우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지만 취재 노트와 사진은 대부분 압수됐다.
후루노 요시마사 선생이 낸 책들. 필자 제공
귀국 후 오사카본사의 사회부장, 편집국장 등 요직에 있을 때도 김대중 납치사건의 기이한 봉합 배경을 추적하는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김대중사건의 정치결착’ 외에도 ‘한국현대사 메모’, ‘김대중사건 최후의 스쿠프’ 등의 저서를 냈다. 2010년 나온 ‘김대중사건 최후의 스쿠프’는 납치 실행 전 중앙정보부 요원의 의뢰로 김대중의 동선 파악에 나섰던 전·현직 자위대 정보요원들이 사건 발생 후 고토다 마사하루 당시 관방 부장관의 지시로 일제히 잠적했으며 이들에게 지급된 도피자금이 ‘관방기밀비’로 추정된다는 충격적 내용이다. 관방 부장관은 통상적으로 내각의 핵심으로 정부 대변인역을 하는 관방장관 밑에서 실무적으로 보좌하는 최고위직 관료이다.
후루노는 집요한 추적 끝에 정보요원들의 무거운 입을 열게 해서 얻어낸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이 책에 상당히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일본 언론에 먼저 보도자료를 보낸 뒤 나에게 책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유감스럽게도 일본의 주류언론들은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겸연쩍은 일이지만 나는 그해 4월 노기자가 어렵게 취재한 것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한겨레에 크게 보도할 수 있었다.
그는 김대중 사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도 열정적으로 보도했다. 송건호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경영진의 기자 해고 방침에 반발해 사표를 낸 것이나 동아일보의 소장 기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것을 1단짜리 특종기사로 보도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김대중 납치사건 50주년이 된 2023년 여름 후루노 선생은 병상에 누워서도 책을 또 내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필자 제공
그를 마지막으로 뵌 것은 2023년 7월이었다. 오사카에 일이 있어 간 김에 병문안했다. 병상에 누워있는 상태였지만 “백살까지 살 수 있겠다”고 농담을 하면서 납치사건 50주년이 됐으니 이전에 써놓은 원고를 모아 다시 책을 내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유신시절 박정희 정권은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수시로 간첩으로 몰아 조작사건을 터트렸는데 1975년 11월22일 김기춘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 대대적으로 발표한 ‘11·22사건’이 대표 격이다. 후루노는 놀랍게도 이 사건 발표 11일 전에 재일한국인 자녀가 당국에 연행되거나 공항에서 출국이 정지되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고 송고했다. 이것이 2단 기사로 보도되자 정보입수 경위를 놓고 중앙정보부의 엄중한 추궁을 받았다고 한다.
2018년 11월 유학생 간첩조작사건을 파헤친 졸저 ‘조국이 버린 사람들’의 일본어판 출판기념회가 오사카에서 열렸을 때 그는 휠체어에 탄 채 행사장에 나와 격려를 해주었다. 올해는 11·22사건 50주년이 된다. 11월에 관련 행사가 예정돼 있는데 그의 혼이 함께 해주시리라고 굳게 믿는다.
김효순/리영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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