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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시공간 축을 꿰뚫고 새로운 우주가 열려.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열광케 할 신세계. 영웅(들)을 기다린 이들을 울게 할 새 지평. 바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야.
'아이언맨'의 첫 장면ⓒ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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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작품 ‘아이언맨’이 개봉한 해가 2008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토니 스타크 캐릭터가 처음 등장하는 오프닝 신. 그 ‘유니버스’의 시작점에 쓰인 음악은 뭐였을까 호주의 전설적인 하드록 밴드 AC/DC의 ‘백 인 블랙’(Back in Black)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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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Cⓒ유튜브
청백색 힌두쿠시산맥 아래 황토색으로 뻗은 황야의 파노라믹 뷰. 토니 스타크는 아프가니스탄 북부 쿠나르주(州)를 달리고 있어. 군용차 뒷좌석에 올라탄 그는 호위하는 중무장 미군들에 둘러싸여서. 방탄모, 방탄복을 입은 군인들과 달리 스타크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맨 정장 차림으로 오른손엔 알라딘바로가기
위스키 글라스를 들고 있지. 덜컹거리는 군사 위험 지역이 아니라 맨해튼의 힙한 바에라도 있는 듯, ‘온 더 록’으로 말이야. 긴장한 군인들에게 농담을 건네고 셀카까지 찍어주면서. 그러다 갑자기 ‘펑!’ 사달이 나지. 매복 중이던 테러리스트들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스타크는 납치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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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
시간을 조금만 앞으로.
다시 첫 장면으로 가보자고. 군용차 안에 왜 AC/DC의 ‘백 인 블랙’이 흘러나올까.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에 놓인 포터블 오디오를 잠시 비추는 샷까지 감독이 굳이 넣은 걸 보면 분명 이 노래에 의미가 있어.
영화 ‘아이언맨’에서 군용차 안의 포터블 오디오를 비추는 장면
‘백 인 블랙’은 영어로 검은 옷을 입고 돌아온다는 뜻이지.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아니지. 우리가 죽으면 무슨 옷을 입을까. 동서양이 조금 달라. 한국에서는 주로 삼베로 만든 흰 옷, 또는 상아색 옷을 입지. 수의(壽衣)야. 서구권의 수의는 반대야. 주로 검정이지. 동양의 귀신과 서양의 언데드를 비교해 봐. 한국의 전통 귀신은 대개 하얀 옷, 즉 소복(素服)을 입고 있지. 서양 귀신, 그러니까 드라큘라 백작 같은 흡혈귀나 기타 유령들은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아래에 미국 이모(emo) 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뮤직비디오 ‘헬레나’(Helena)의 한 장면을 붙일게. 죽은 여자친구도, 그를 기괴한 춤으로 추모하는 하객도 모두 ‘블랙’ 차림이야. (그럼 건스 엔 로지스의 ‘노멤버 레인’(November Rain)에 나오는 죽은 신부는 왜 관 속에서 흰옷을 입고 있냐고? 결혼식 중에 죽었잖아!)
My Chemical Romance ‘Helena’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그럼 노래 속에서 검은 옷을 입고 돌아오는 사람, 즉 죽음에서 돌아오는 사람은 누구일까. 본 스콧(1946~1980)이야. 호주 사람. AC/DC는 호주 밴드거든. 본은 AC/DC의 리드 보컬이었어. ‘내일은 없다’ ‘잠은 죽어서 잔다’는 스피릿을 뼛속 깊이 심은 로큰롤 맨이었지. 그러던 그가 진짜로 잠을 자러 갔어. 1980년 2월 19일, 33세의 나이로 영면했지. 사인은 알코올 중독. 멤버들은 충격에 빠졌지. 본의 장례식장.본의 부친은 밴드의 두 기타리스트인 앵거스 영과 맬컴 영 형제에게 뜻밖의 말을 건넸어. ‘밴드를 결코 해체하지 마라. 앞으로 나아가라. 그것이 본의 유지를 지키는 길이다.’
1980년 7월에 발표한 그들의 정규 7집 ‘백 인 블랙’은 역사에 남은 록 명반이야. 새까만 표지에 그저 ‘AC/DC’, 그리고 ‘BACK IN BLACK’이란 글자만 새겨진 이 음반은 11년 뒤 나오는 메탈리카의 ‘메탈리카’(Metallica)앨범 이전까지 최고의 ‘블랙 앨범’으로 불렸어.
AC/DC ‘Back in Black’ 표지
타이틀 곡 ‘백 인 블랙’을 비롯해 전곡을 본 대신 부른 이는 신임 보컬 브라이언 존슨이야. 본 스콧은 생전에 다른 밴드에 있던 브라이언의 보컬을 너무 좋아했어. 록의 대선배 리틀 리처드까지 언급하면서 브라이언이야말로 로큰롤의 정수를 담은 목소리라고 추켜세웠지.
AC/DC의 남은 멤버들이 본 없이 밴드를 지속하기로 결정하면서 가장 먼저 찾은 후임 보컬은 브라이언일 수밖에 없었던 거야. 특히 본 스콧 추모곡으로 정한 ‘백 인 블랙’을 만들면서 앵거스 형제는 브라이언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어. ‘본을 추모하되 결코 우울한 가사면 안 된다. 본의 성정을 잘 알잖아. 추모곡이되 축하곡이어야 한다!’
이 어려운 미션을 보컬이자 작사가 브라이언은 충실히 이행하지.
‘검게 입고 돌아왔어/잠들었었지/너무 오래/돌아와서 기뻐’라든가 ‘영구차는 잊어줘/난 절대 안 죽으니까/목숨이 아홉 개, 고양이 눈/남김없이 목숨을 낭비하며 하고픈 대로 살아버리지’ 같은 가사는 본 스콧의 죽음에 관한 곡이되 기이한 귀환의 송가, 파티 앤섬(anthem)으로 악곡을 완성해 버렸어.
이 가사에 저 무시무시한 드럼의 4박자 비트, 더구나 중고 음역대의 바삭바삭한 질감을 살린 기타 리프(riff)까지 얹히니 이건 그대로 록의 클래식이 돼버린 거야. 게다가 ‘검은 옷 입고 돌아왔어!’를 시종 새된 목소리로 활개 치듯 부르짖는 브라이언 존슨의 보컬을 한번 들어봐. 로큰롤 역사에 길이 남을 ‘검은 수의의 플렉스’라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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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언맨’으로
영화 ‘아이언맨’에서 납치된 토니 스타크는 어떻게 되지? 유폐된 동굴에서 목숨값이 벼랑 끝에 휘날리던 스타크.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MCU에 길이길이 남게 될 ‘아이언맨 수트’, 그 첫 버전이야. 토니는 천재답게 발명가적 재기를 발휘해. 궁색한 공간에서 찾은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동굴 R&D’에 돌입한 결과지. 죽을 뻔했던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이 돼 삶으로 돌아오는 것. 이것이 바로 MCU의 첫 시퀀스, 부활 시퀀스야.
초기 아이언맨 수트
본 스콧과 토니 스타크. 1980년과 2008년. 노래와 영화. 두 개의 부활 이야기가 교차하는 것이 바로 ‘아이언맨’의 첫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지.
벌써 6월이야. 새봄의 설렘은 너무 짧았는데 벌써 한 해의 중반이라고? 하지만 새로 시작하는 건 그게 언제라도 결코 늦지 않아. 생이란 음악처럼 시간의 예술이고 매 순간 새로 시작되는 거니까. 마음 먹기에 달렸어. 우리 사회도 새로운 시작을 맞았지. 무채색의 두려움을 딛고, 새로 시작하는 그 모든 것들을 위해서,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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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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