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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9-3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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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같이 뜨거웠던 여름이 끝나간다. 하루키는 여름의 끝을 “해변가의 방갈로가 자취를 감추고, 고추잠자리가 돌아다니고, 고교야구가 끝난 빈 야외석에서 응원 깃발을 둘둘 마는 때”라고 묘사했다. 여름이란 계절은 열정이고 발산이다. 신나는 젊음의 축제다. 어느덧 잔치는 끝난다. 따뜻한 커피와 스웨터의 감촉이, 더운 날엔 떠오르지 않았던 깊은 생각을 그러모은다.
추억의 드라마 ‘모래시계’에는 파가니니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가 흘렀다. 고현정이 분했던 혜린의 테마였다. 이 드라마에서 음악을 떠올리는 순간이 또 있었다. 고 남성훈이 분했던 장도식이 어느 맑은 가을날 “브람스라도 들으면 어울릴 날이군” 같은 인천취업알선 말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19일 롯데콘서트홀 ‘가을에는 브람스’ 공연에서 경기필, 김선욱(지휘), 클라라 주미 강(바이올린), 지안 왕(첼로). [사진 류태형]
가을을 재촉하는 찬비가 내리던 19일 저녁, 롯 현대저축은행 대출 데콘서트홀에서 김선욱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의 공연을 봤다. 공연 제목이 ‘가을에는 브람스’였다. 기후 온난화로 요즘엔 웬만해선 9월을 가을에 넣지 않는다. 폭염이 심했던 7~8월엔 ‘10월까지 덥다’는 예측기사도 등장했었다.
그렇게, 여름에서 나올락 말락 가을에 들어갈락 말락 하는 9월이었지만 줄기차게 내리는 비에 서늘해진 기온 덕분인 한국산학연협회 지 ‘가을’이란 표현이 설익지 않게 다가왔다. 누가 붙였는지 딱 맞아떨어지는 제목이었다. 본격적인 가을에 앞서 ‘가을’과 ‘브람스’를 선점한 공연이었다.
물론 이날 날씨가 더웠다 하더라도 브람스의 음악만으로 가을을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듣는 이의 감각을 자극하고 어디론가 데리고 가기 마련이다.
국민은행 직장인우대종합통장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첼리스트 지안 왕이 협연한 브람스 이중협주곡은 대담한 바이올린과 노련한 첼로가 김선욱이 열정적으로 지휘한 경기필하모닉과 중후한 앙상블로 어우러졌다. 김선욱은 브람스 교향곡 4번에서도 땀에 흠뻑 젖어 뜨거운 지휘를 선보였다. 지휘자로서 젊은 그는 점차 여름의 정열을 넘어 가을과 인생의 착잡함을 묘파하는 원숙함으로 익어 해드림론 갈 것이다. 그의 피아노가 그래왔던 것처럼.
가을에는 왜 브람스일까. 직접 느껴보기 전에 정답은 없다. 그의 음악과 삶이 가을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화사하고 장식적이기보다는 그을린 은빛의 색채감, 오래된 가죽의 질감에 가까운 음악이다. 서늘한 북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연모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삶에 드리운 고독과 쓸쓸함도 가을에 어울린다.
가을엔 브람스를 연주하는 음악회에 가야 한다. 고독하지만 더 깊어지고, 쓸쓸하지만 내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지는 브람스를 들어야 한다. 겨울을 견디고 봄을 맞이할 때까지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음악이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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