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학교를 떠난 청소년을 떠올릴 때 먼저 자유를 이야기한다. 더 이상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되고,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고, 아침 일찍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 말이다. 그러나 자유는 언제나 바깥에서 보는 사람의 언어였다. 학교를 그만둔 날 내가 처음 마주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고요였다.
▲ ?나는 혼자라는 사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건드렸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아침 여덟 시가 되어도 집 안은 조용했고,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 대신 내 방 창문으로 햇빛만 천천히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친구들과 같은 시간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을 시간이었다. 세상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지만, 나만 시간표 밖으로 밀려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처음 며칠은 늦잠을 자는 일이 좋았다. 알람을 끄지 않아도 되었고, 교복을 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 여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이면 친구들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텐데 나는 혼자라는 사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건드렸다.
사람은 시간을 함께 보낼 때보다 같은 시간을 살아갈 때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학교를 떠나며 잃은 것은 교실이 아니었다. 같은 시간 속에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김애란 시인의 시집 <난 학교 밖 아이>
▲ ?김애란, 『난 학교 밖 아이』, 창비교육
ⓒ 창비교육
얼마 전 학교 폭력과 질병, 가정 문제, 빈곤, 친구 관계 등 저마다의 사정으로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의 삶을 담은 김애란 시인의 시집 <난 학교 밖 아이>(2017년 3월 출간)를 읽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데서 나아가 이들의 선택과 가능성을 응원하는 시들 가운데 '난 마네킹'이라는 시 앞에서 오래 멈춰 섰다.
내 가슴은 사정없이 뛰는데
친구들에겐 내 심장 소리 들리지 않고
얘들아, 내게 말을 해 봐
아무리 외쳐도 내 입은 움직이지 않지
친구들은 내게 말 걸지 않는 세상
화자는 분명히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친구들은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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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절을 읽는 순간 자퇴 직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친구들은 가끔 만나자고 연락했다. 하지만 시험이 있다거나 수행평가가 있다거나 학교 일정이 있다며 약속은 늘 다음으로 미뤄졌다.
누구도 나를 일부러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단지 서로 다른 시간표를 살게 되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더 슬펐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보다 같은 시간을 잃어버릴 때 더 깊이 외로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는 설명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SNS를 열면 친구들은 교복을 입고 운동장에 서 있었고, 수학여행 사진을 올리고, 시험이 끝났다고 웃고 있었다. 나는 검정고시 문제집을 펼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같은 나이였지만 하루의 풍경은 전혀 달랐다.
그때는 학교를 떠난 선택보다 학교 안에 남겨두고 온 장면들이 더 크게 보였다. 수학여행, 축제, 쉬는 시간의 잡담처럼 그 나이에만 가능한 평범한 순간들이었다. 평범한 하루는 그 안에 있을 때는 소중한 줄 모르지만, 떠나고 나면 가장 먼저 그리워지는 것이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외로움은 학교 밖에 있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나지 못할 때 생긴다는 것이다. 시집 속 학교 밖 청소년들은 서로를 만나 상처를 이야기하고 웃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그런 공동체를 만나지 못했다.
대신 혼자 걷는 법을 배웠다. 걷다가 지치면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일기를 썼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종이에 적다 보면 마음속 소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 시간들은 누군가에게는 공백처럼 보였겠지만, 나에게는 내 목소리를 다시 찾는 시간이었다.
시집에 실린 '한동안'은 학교 밖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엄청난 그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기다리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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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학교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아무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종이 울리면 다음 교실로 가면 되었고, 학년이 끝나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학교 밖에서는 다음 계단을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고, 학.은행제로 공부를 이어갈 수도 있었다. 선택지는 오히려 더 많았다. 다만 그 모든 선택의 책임도 온전히 내 것이었다. 자유가 무거운 이유는 선택지가 많아서가 아니라, 실패를 대신 책임져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자퇴를 하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누군가는 공부를 포기한 것 아니냐고 물었고, 누군가는 문제를 일으켜 학교를 나온 것 아니냐고 짐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이유만으로 미숙한 사람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변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나를 가장 오래 괴롭힌 것은 다른 사람의 편견이 아니라 그 편견을 의식하는 내 마음이었다. 결국 내가 내 선택을 믿지 못하면 누구도 대신 믿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웠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뒤처진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자기 위안이었다. 하지만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삶의 방향이 되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학.은행제로 학위를 이어가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를 배우고, 지금은 기자가 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내 삶을 바꾼 것은 자퇴라는 사건 하나가 아니었다. 그 이후에 보낸 수천 번의 평범한 하루였다. 인생은 특별한 결심보다 평범한 하루가 훨씬 많이 만든다는 사실을 그 시간들이 가르쳐 주었다. 시집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작품은 '벽은 길이다' 였다.
담쟁이한테는 벽이 길이더라
벽만이 어딘가에 닿을 수 있는
오직 한길이라도 되는 양
온통 푸른 잎을 흔들면서 기어오르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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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벽인 것이 담쟁이에게는 길이 된다는 구절은 처음에는 희망적인 비유처럼 읽혔다. 그러나 여러 번 읽을수록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노동에 가까운 문장이었다. 담쟁이는 벽이 길이라고 믿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하루에 몇 센티미터씩,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을 견디며 끝없이 벽을 붙잡기 때문에 어느 날 뒤돌아보면 그 자리가 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자퇴 그 이후의 시간을 책임지는 것
내 삶도 그랬다. 벽이 어느 날 갑자기 길로 변한 적은 없었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넘어지고, 다시 시작하는 평범한 날들이 쌓인 끝에 비로소 지나온 자리가 길이 되어 있었다. 길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이 뒤늦게 붙여 주는 이름인지도 모른다. '괜찮아'를 읽으며 처음으로 엄마를 생각했다.
그날 밤 나는 보았습니다
캄캄한 베란다 화분 뒤에서
들썩거리는 검은 그림자
그게 파초 이파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퇴를 결심했을 때 나는 내 불안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 속 아이는 베란다 화분 뒤에서 몰래 우는 엄마를 발견한다. 그 장면을 읽고서야 문득 우리 엄마도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은 언제나 한 사람의 것이지만 그 여파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도 오래 남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상처 너머의 누군가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 시가 조용히 일깨워 주었다.
지금도 나는 학교를 떠난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십 년 뒤에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 삶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자퇴'라는 사건이 아니라 그 이후의 시간이었다.
결국 사람을 만드는 것은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 이후에도 계속 살아내는 하루하루다. 그래서 이제 누군가 학교를 떠날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면 쉽게 괜찮다고도, 쉽게 말리고 싶지도 않다. 대신 한 가지 질문만 건네고 싶다. "그 선택 이후의 하루를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마 인생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조금씩 완성되는 것일 테니까.
람을 만나지 못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