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01 ?/?Day 1-10
해가 나면 멈춰 서서 장비를 말렸다.
Day 9 차가운 젖음 속에서 피어난 '몬스터 파이어'
밤새 보슬비가 내렸다. 아침에 눈을 뜨니 풀잎 하나하나가 잔뜩 물을 머금은 채, 누가 먼저 이 길을 지나가나 하는 듯 서 있었다. 캠프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출발하는 나는 항상 그 물기를 온몸으로 받아낸다. 금세 옷이 흠뻑 젖어버리지만, 이제는 저녁에 불을 피워 신발과 양말을 말리려 애쓰지 않는다. 어차피 다음 날 새벽 6시면 다시 젖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구름으로 가득찬 하늘 때문에 시원한 뷰는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덕분에 선선해진 공기는 하이킹하기에 최적의 컨디션을 만들어 주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정글 같은 수풀을 헤치며 나아간다. 거친 풀잎들이 다리에 무수한 스크래치을 남기지만, 그렇게 몸을 던져 얻어낸 35km의 성적이 뿌듯하다. 다리가 뻐근한 이 기분 좋은 피로감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캠프사이트에 먼저 도착해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오늘 걸어온?거리가 꽤 되기에 다른 멤버들이 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7시가 넘어가자 약속이라도 한 듯 동료들이 하나둘씩 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친 서로를 향해 화이팅을 외치고 안아주는 사이, 우리의 우정은 한층 더 돈독해졌다
바다이야기 시즌7
.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번이 첫 종주인?친구들이라, 함께 난관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더 각별해 보인다. 문득 AT를 걸을 때 만났던 친구 '락피시'가 생각났다.
오전에 그날 묵을 쉘터를 정하면, 아무리 시간이 늦더라도 반드시 약속한 장소에 나타나던 의리 있는 친구였다. 오늘 이?친구들도 락피시처럼 든든하게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 고단했던?하루 끝에 멤버들이 모두 모이자, 처음엔 작고 초라했던 모닥불이 어느새 '몬스터 파이어'가 되어 뜨겁게 타올랐다.
AT 동료였던 락피시의 음식 박스. 든든한 응원에 감사했다.
Day 10 안개라는 심해를 걷다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오늘 걸음의 절반이 지그재그 오르막인 '스위치백'이었다. 경사가 완만하니 쉽지 않았겠냐고 묻겠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안개 속에서 수풀을 헤쳐 나가는 '부쉬웨킹(Bushwhacking)' 수준의 길을 걷다 보니 가슴 밑으로는 홀딱 다 젖어버렸다. '분명 미국 서부 산맥을 걷고 있는데, 왜 나는 정글 속에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 았다.
마이카 호수(Mica Lake)를 지난 이후의 약 5km 구간은 그야말로 거대한 눈밭이었다.
손오공게임 예시
PCT 앱이 없었다면, 아니 앱이 있었음에도 길을 두 번이나 헤맸으니 아마 꼼짝없이 조난을 당했을지도 모를 구간이었다. 짙은 안개에 비까지 섞여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것이 뿌연 장막 뒤로 사라졌다.
그 적막함이란, 마치 수심 40m 아래로 딥다이빙을 했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내 거친 숨소리만 들리던 그 감각과 흡사했다. 산도, 지형도 보이지 않는 무채색의 공간에서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한 걸음씩 내딛는 일은 심리적으로 꽤나 압박감이?컸다.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 캠핑하는 날이었다. 다른 멤버들은?아마 5km 전인 마이카 호수 근처에서 짐을 풀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장거리 종주라는 게 그렇다. 함께 웃으며 모닥불을 피우다 가도, 어느 순간 이렇게 철저히 혼자가 되곤 한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는 기약할 수 없지만, 안개 너머에 있을 동료들 모두가 안전하고 즐거운 하이킹을 이어가기를 빌어본다.
산허리를 타고 흘러오던 안개
아름다웠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쉽지 않았던 끝었는 스노우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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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