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때 처음 연극 관람
배우들 열연에 ‘감명’
대학 다니며 연극 활동
졸업 후 극단 창단 동참
2006년 마산 부두 인근
두 번째 연습실 꾸려
20년째 작업 이어와
‘지역 연극 발전’ 힘써
창작 환경·기회 조성
젊은 예술가들 돕고파
연극이 하고 싶다면
문 열고 들어와 주길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공연장엔 어둠만이 흐르기 마련이다. 객석을 메웠던 관객들이 하나둘 떠나고 나면,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정적이 찾아 든다. 하지만 무대 위 조명이 꺼진 후에도 누군가의 삶 속에서는 연극의 시곗바늘이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연극을 만드는 이들은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수백 번 같은 대사를 읊고 같은 동선을 맞춘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장인의 마음으로 한 편의 극을 위해 땀방울 흘리는 이들의 작업실. 마산 극단 ‘객석과 무대’의 연습실에서는 관객들이 보지 못하는 무수한 연극이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다.
102년의 세월을 자랑한다는 예향 마산의 연극 역사. 이제는 어느덧 서너 개의 극단만이 남아 있다는 이곳에서 진경호 객석과 무대 대표는 여전히 단원들과 함께 꿈을 키워나간다. 마산 부둣가 4층짜리 건물의 꼭대기에 자리 잡은 그들의 연습실에는 쉽게 불이 꺼지지 않는다.
- 연습실 문 앞에 걸린 현판이 눈에 띈다.
△구복예술촌 촌장이셨던 서예가 석강 윤환수 선생님께서 극단을 창단할 때 만들어주신 작품이다. ‘객석과 무대’의 1대 극단 대표셨던 김태수 대표님이 받으셨다고 들었다. 이전 연습실에서부터 걸어뒀던 거라 의미가 깊다. 극단의 이름은 2001년 창단 당시에 활동하던 선배들이 연극으로 객석과 무대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들자는 뜻으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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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이 무대보다 앞으로 오는 이유는 무대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이 더 중심이 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 지금의 연습실은 몇 번째 공간인가.
△이곳은 두 번째 연습실이다. 마산 중부경찰서 인근에 원래 첫 연습실이 있었는데, 재개발 문제로 2006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사를 오게 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스무해째 이 공간에서 마음껏 떠들고 쉬면서 단원들과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연습을 거쳐 무대에 올린 연극들을 세어 보면 132편 정도 되는 것 같다.
- 벽면에 늘어놓은 연극 포스터들도 인상적인데.
△우리들의 기록이다. 2001년 창단 후 처음 선보인 연극 ‘꽃마차는 달려간다’의 포스터부터 이후 작품들의 포스터까지 시간 순서대로 걸어뒀다. 물론 요즘은 종이로 인쇄하는 포스터를 잘 출력하지 않기도 하고, 모든 극의 포스터가 다 걸려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연습실 벽에 걸어 놓은 포스터 액자들을 보면 우리 극단의 역사를 보는 느낌이다. 지금은 그리워진 작고하신 선배들의 모습도 담겨 있고, 극단에서 한때 같이 활동했던 유명 배우들의 얼굴도 발견할 수 있다.
- 바닥에 붙여 둔 색깔 테이프들에도 의미가 있나.
△우리 연습실이 그냥 봤을 때는 조금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작은 규모가 아니다. 웬만한 소극장 크기의 공간이다. 무대 위에 올라가서 연기를 하려면 정해진 배우들의 위치라든지, 소품과 세트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 그런 걸 미리 연습실 바닥에 테이프로 붙여 그어 놓는 거다. 무대를 그대로 그려둔 거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무대를 한다는 마음으로 ‘이 이상은 절대 넘어가면 안 돼’, ‘여기서만 춤을 춰야 해’ 그러면서 실전같이 연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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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연극인으로서 극단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는지 궁금하다.
△제가 처음 연극의 매력에 사로잡힌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연합고사가 끝나고, 친누나가 연극이나 한 편 보러 가자고 해서 우연히 마산의 한 극장을 찾게 됐다. 그땐 좌석이나 그런 것도 없었고 그냥 서서 공연을 봤다. 그런데 내가 알던 드라마나 영화랑은 다르게, 실제 눈앞에서 배우들이 연기하고 움직이는 게 너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후로 ‘나도 저런 걸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서 대학에 간 뒤부터 본격적으로 마산에서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마산의 연극인들이 꾸린 ‘객석과 무대’의 창단 과정에 함께하게 됐다. 하루하루 연극 활동을 하다 보니 극단 대표가 된 오늘까지 이르게 돼 나로서도 신기하다. 지금의 아내도 이 극단에서 같이 연극을 준비하다 만난 인연이다.
- 20년을 연습해 온 공간이면 개인적으로도 이곳에 남다른 애착이 느껴질 것 같다.
△우리 극단은 보통 아침부터 저녁까지 긴 시간 동안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다. 저는 생계 유지를 위해 다른 일도 하고 있어서 주로 오후에 늦게 합류하는데, 다른 친구들은 낮부터 밤까지 종일 이곳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여기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연극을 준비하다 의견이 안 맞으면 싸우기까지 한다(웃음). 말 그대로 생활 터전이다. 집만큼이나, 어쩔 땐 집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저 스스로는 연습실이 곧 극단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 이곳에서 ‘객석과 무대’가 탄생시킨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나.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극을 올리는 건 아니다. 다만 처음 극단을 만든 취지가 살아있는 무대 정신으로 지역의 연극을 발전시키자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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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 레퍼토리를 많이 개발해서 지역민들과 소통하는 무대를 가져보고 싶었다. 그래야 우리가 이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의미가 있는 거고, 지역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란 믿음이 있었다. 우리 극단이 ‘너의 역사’나 ‘삼월이 오면’ 같은 3·15 의거 기념 연극을 창작해 선보인 것도 그런 이유들 때문이다.
- 지역에서 연극을 오랫동안 이어가는 게 극단의 목표인가.
△그렇다. 그러기 위해 젊은 친구들이 마산에서 연극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이 연습실을 계속 운영하는 것도 그 목표의 하나일 수 있고, 또 관객들을 많이 모아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 극단의 목표이자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 이외의 다른 지역들이 모두 공통되게 겪는 현상이지만, 지역에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없지 않나. 이곳에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기회를 줘서, 그 친구들이 하고 싶어 하는 다양한 작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돕고 싶다.
- 앞으로 연습실에서 또 어떤 극들을 완성해 나갈 계획인지.
△단기적으로 보면 우선 지금은 올가을에 선보일 공연을 준비 중인데, 지역의 연극 대선배이신 송판호 배우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극이다. 지역에서 연극의 맥이 이어지도록 오래 역할을 해오신 선배들을 기억하고 존경하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공연이 끝나도 관객이 객석에 끝까지 남아 있는 연극을 하고 싶다. 처음 연극을 접했던 중학교 3학년 시절의 나 자신처럼, 극을 다 본 후 감동에 젖어 “이런 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다.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너무 필요하다. 원한다면 언제든, 누구든 객석과 무대의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와 주셨으면 한다. 항상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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