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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놀이 ‘홍길동이 온다’ 남역 대 잇는 김성녀·이소연









‘홍길동이 온다’ 주연 이소연(오른쪽)과 연희감독 김성녀. 최기웅 기자







“이 어찌 태평성대란 말인 바다이야기게임기 가!” 지난해 여성국극 남역 호동왕자(드라마 ‘정년이’ 중 정은채)의 웅장한 호령에 뭇 여성들이 설?다면, 현실판 남역 히어로는 마당놀이에서 나왔다. 국립극장 마당놀이 ‘홍길동이 온다’에서 길동 역을 맡아 “그대들은 팔도로 흩어져 썩어빠진 탐관오리들을 징치하라!”고 외치는 소리꾼 이소연의 포스가 상당하다. 시작부터 와이어를 타고 등장해 우렁찬 발성으로 활빈 무료릴게임 당을 이끌고, ‘사자보이즈’의 기세에도 눌리지 않고 정의를 실현한다. 춘향에서 옹녀까지 국립창극단의 거의 모든 여주인공을 섭렵하던 이소연의 변신 뒤에는 김성녀 연희감독(연기 지도 담당)이 있었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장충체육관을 날아다니던 ‘원조 K히어로’다. 두 사람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과 단원으로 인연을 맺어, 마당놀이 남역 히어로의 대를 잇는 손오공게임 관계가 됐다. 그 현장은 흡사 영화 ‘국보’ 실사판에 다름 아니다.

“10년만 젊었어도 내가 뛰어나갔을 것”이라는 김성녀 감독은 여전히 에너지가 펄펄 끓어 넘쳤다. “홍길동은 마당놀이 중에서도 가장 하드한 액션 장르라 연습장이 강철부대 촬영장 같았죠. ‘라떼는’ 플라잉도 더 높고 불꽃까지 쐈는데, 지금은 안전제일이라 릴게임가입머니 네요. 마술도 디지털로 하는 지금보다 모든 걸 아날로그로 했던 그때가 더 잘됐던 것 같아요.”(김)









2025년 이소연의 와이어 액션. [사진 바다신2다운로드 국립극장]







이소연에겐 마당놀이 자체가 도전이다. 지난해 심청전과 춘향전, 흥보전을 뒤섞은 모듬전에 잠시 나왔지만 분량이 적었다. 홍길동이 주역 데뷔인 셈인데, 인기가 심상치 않다. 관객들 인증샷을 찍어주느라 마지막까지 마당을 떠나지 못한다. “관객 반응이 완전 달라요. 판에 직접 참여하다보니 끝나고도 분위기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이분들이 이것만 기다려오다 즐길 준비를 하고 왔구나, 진짜 필요한 장르구나 싶어요.”(이)

마당놀이가 25년 만에 홍길동을 부활시킨 건 이유가 있다. 손진책 연출이 “답답한 요즘 시국에 관객들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했듯, 계엄과 주가조작, 뇌물수수, 매관매직 등 뉴스로 익숙한 권력자의 무능과 위선을 낱낱이 마당에 소환한다. “속상한 게 30년 전 대사를 그대로 써도 될 정도예요. 정치인들은 안 변해.(웃음) 와서 좀 봐야하는데, 자기들 얘긴 줄도 모르겠죠.”(김)
이소연이 홍길동에 처음부터 낙점된 건 아니다. 손 연출은 창극단 간판스타 김준수와 이소연의 남편인 이광복을 캐스팅하려 했다는 후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소연을 시켜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손 연출이 체력이 달릴 거라고 우려하더군요. 그런데 광복은 같은 시기 창극을 하게 됐고 준수는 퇴단을 하게 돼서 원점으로 돌아온 거죠. 창극단에서 늘 소연이가 외모도 훤칠하고 소리도 잘 뻗어서 남역이 되겠다 싶었거든요. 참한 이미지지만 스스로 변신 욕심도 있더군요.”(김) “재밌겠는데와 어떡하지, 두가지 생각이 공존했어요. 새로운 영역을 만나는 신선함이 있지만 선생님이 하셨던 건데, 원곡자 가수 앞에서 노래부르는 것 같은 부담감이 컸죠.”(이)
남역 연기가 쉬울 리 없다. 일단 고소공포증부터 극복해야 했다. “와이어를 타고 연기까지 해야되니까 두려웠는데, 연출님이 나중엔 즐길 거라고 세뇌시키셨어요.(웃음)”(이) “나도 와이어 무서워서 안한다고 손 연출과 싸우기도 했었죠. ‘와이존’이 너무 아파서 기저귀 서너개를 차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박수받는 재미에 즐기게 됐죠.”(김)









1990년대 김성녀의 와이어 액션. [사진 국립극장]







이소연은 당시 영상을 보며 홍길동이 김성녀라고 믿을 수 없었단다. “너무 멋있어서”다. “배워야 되는데 관람하게 되더라고요. 너무 유려하게 동선이 아닌 것처럼 움직이고 대사가 아닌 것처럼 대사를 하고, 노래를 또 대사처럼 하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대본과 애드립의 경계도 모르겠고, 소리도 정말 남자처럼 내세요. 그걸 따라하다 보니 목이 다 쉬더군요. 걸음걸이부터 강한 말투까지 감독님의 밀착지도가 있었습니다.”(이) “마당에서 남역 한번 하면 심봉사 개안하듯 어떤 역할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꼬셨죠. 외모의 격이나 기품은 나보다 나아요. 이제 망가지는 것만 되면 뭐든 할 수 있을 겁니다.”(김)

그런데 왜 마당놀이 중에서도 액션 장르인 홍길동을 여자가 하게 된 걸까. “홍길동 이전에 내가 이춘풍이나 제갈공명을 하니 훨씬 손님이 들더군요. 여성국극 임춘앵 선생이 아이돌 인기를 누린 것처럼, 미소년 역할을 여자가 하면 더 매력 있잖아요. 소연이도 끼만 좀 부리면 팬이 확 늘어날 겁니다.”(김) “극중 왜 영웅은 다 남자냐는 대사도 있지만, 실제 영웅 연기를 해보니 쾌감도 있어요. 옳은 말을 할 때 반응이 오면 사람들에게 이런 말이 필요했었구나 알겠더군요. 관객들 눈빛에서 정말 나를 원하는 마음이 읽히고, 다 아울러서 진짜 활빈당이 되었음을 선포할 때 정말 내가 영웅이 된 것 같은 전율이 느껴지죠.”(이)
하지만 ‘원조’의 기준에는 아직 못미친다. 호랑이 선생님처럼 개막 후에도 매일 지켜보며 훈수를 두고 있다. “홍길동 하면서 사랑받는 거 보니까 너무 기분이 좋아서 더 주마가편하는 거죠. 맥이 끊기면 안되잖아요. 제갈공명, 이춘풍까지 다 전수해주고 싶어요. 얘 하나 키워놓으면 엄청난 마당놀이 주역이 될 것 같아서 투자하려는 건데, 내가 하도 잔소리를 해서 그런지 잘 울더군요. 울거나 말거나 부족한 거 안 보일 때까지 쪼을 겁니다.”(김) “‘국보’란 영화를 봤어요. 핏줄이 아니라 혼으로 예술의 대를 잇는 데서 사람들이 감동 받는데,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잘 배워서 전수를 해 나가야 할 것 같고, 그런 귀한 예술을 배우는 느낌이라 눈물이 난 것 같아요.”(이) 어느 새 이소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유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