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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6-1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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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클래식 수퍼스타즈
‘오페라 종주국’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오페라하우스 음악감독에 선임된 마에스트로 정명훈. [중앙포토]
지난달, ‘오페라 종주국’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은 리카르도 샤이의 후임으로 72세의 한국인 지휘자 정명훈을 음악감독에 임명했다. 20세기 이후 국민은행서민전세자금대출 비(非)이탈리아 출신으로는 다니엘 바렌보임에 이어 두 번째, 아시아인으로는 극장 247년 역사상 최초다. 정명훈은 ‘최초의 동양인 음악감독’이라는 수식에 대해 “일평생 외국 생활을 해왔기에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나라를 빛낼 기회라 생각해 반드시 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오페라 지휘자 경력으로 오 감정가이하 를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순간에 정명훈은 자신을 ‘예외적 개인’이 아닌 국가 공동체에 헌신하는 예술가로 정의한다. 그를 찬미하든 비판하든, 그의 위치를 한국이라는 정체성과 분리할 수 없게 만드는 정치적 언어다. 정명훈은 음악적 흡인력으로 관객을 끌어모으는 상업적 클래식 스타를 넘어 국가 이미지를 대변하고 아시아인의 존재감을 입증하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보너스 라 스칼라 입장선 이중적 고뇌의 반영 라 스칼라 입성 효과는 즉각적이다. 2002년 오자와 세이지가 빈 슈타츠오퍼 음악감독에 오른 성과를 당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도쿄 봄 음악제’ 출범과 저명 오페라단 방일로 연결했듯, 정명훈 덕에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이 부산을 찾는 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현 클래식부산 예술감독이기도 원주 춘천 한 정명훈은 “부산 오페라하우스도 2027년 오픈이 되는데, 보나마나 오프닝은 라 스칼라와 할 것 같다. ‘오텔로’ 가능성이 높다”고 빅 이벤트를 예고했다. 정명훈의 구상대로라면 라 스칼라는 1988년 로린 마젤과 ‘투란도트’로 방한한 이래 39년 만에 전막 오페라로 한국을 찾게 된다.
라 스칼라 극장이 정명훈을 음악감독에 선임하며 밝 복비계산 힌 대로, 양측은 오랜 기간 긴밀하고 유익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2020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라 스칼라 극장 수퍼린텐던트(극장장)를 지낸 프랑스 예술행정가 도미니크 메이어는 정명훈을 극장 역사상 첫 명예지휘자로 임명하는 작업을 했다. 예술 조직이 계관이나 명예지휘자 직위를 신설하는 건 대개 스케줄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이자, 음악감독 공백 등 비상에 대비하는 플랜 B 차원이다. 정명훈은 2012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서도 조직 역사상 첫 수석 객원지휘자가 됐다.
그런데 베페 살라 밀라노 시장의 후원에 힘입어 샤이 후계자로 유력시되던 이탈리아 지휘자 다니엘레 가티가 단원들과의 불화로 낙마하는 일이 생겼다. 올해 3월 라 스칼라 극장장에 취임한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는 음악감독 인선을 재추진해야 했다. 그는 베니스 라 페니체 극장에서 극장장-음악감독으로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정명훈을 천거했고, 밀라노시·롬바르디아주·이탈리아 문화부 추천 인사로 구성된 이사회 승인을 끌어냈다. 라 스칼라 음악감독 결정은 이사회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며, 다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극장장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 정명훈 임명 이후 가티는 향후 라 스칼라와의 예정된 지휘를 모두 취소했다. 공교롭게 가티와 정명훈은 지금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서 각각 수석 지휘자와 수석 객원지휘자로 있다.
결국 오르톰비나의 라 스칼라 진출이 정명훈에게 음악감독이라는 행운을 안겼다. 오르톰비나의 밀라노행은 정치적 산물이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극우 연립정권은 ‘이탈리아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이탈리아 오페라하우스 극장장에 ‘만 70세 이상 재임 불가’ 원칙을 도입했다. 이 원칙은 명분상 노령 제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외국인 전문가의 축출 논리로 작용했다. 프랑스인 도미니크 메이어(라 스칼라), 스테판 리스너(나폴리 산카를로)가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밀라노 예술계는 오르톰비나와 정명훈을 운명 공동체로 본다. 정명훈의 음악감독 임기는 2027년 1월부터 시작되며, 오르톰비나의 극장장 임기 종료 시점과 같은 2030년 2월에 끝난다.
라 스칼라 입장에서 정명훈 임명은 극장이 처한 이중적 고뇌의 반영이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정체성과 국제 생존전략 사이에서 방황하는 라 스칼라의 현재가 드러난 결정이자, ‘익숙한 타자(familiar outsider)’를 일단 구원투수로 쓰는 위기 대응 성격이다. 이탈리아 주류 언론이 정명훈을 “밀라노 관객이 가장 사랑하는 지휘자 중 한 명”이라 치켜세우지만, 당분간은 문화 민족주의를 자극할 위험도 감수한 선택이다.
라 스칼라의 본의가 무엇인지는 명예지휘자 제도 존속과 2027/28 시즌 프로그램 발표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제2의 정명훈’급 인물이 명예지휘자로 새로 등장한다면 차기 음악감독 후보로 유력하다는 메시지가 된다. 현지 예술계는 2028년 라 스칼라 창립 250주년에 걸맞은 대형 프로젝트를 요구하고 7월 예정된 정명훈의 밀라노 공식 기자회견에서 상징적 기획이 제시되지 않으면 초반부터 리더십 압박이 가시화될 수 있다. 2019년 베니스 홍수 당시 전기가 끊긴 라 페니체 극장에서 공연을 강행했던 정명훈과 오르톰비나의 유대가 라 스칼라에서도 절실하다.
클래식부산 예술감독도 맡아 바쁜 몸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세종문화회관에서 로린 마젤 지휘로 ‘투란도트’를 공연했던 라 스칼라 오페라. [중앙포토]
정명훈이 라 스칼라에서 임기를 마치고 연임을 논의할 수 있을지는, 2030년이면 만 77세가 되는 나이보다 오히려 예술 외 변수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2026년 총선에서 멜로니가 이끄는 극우 연립정당 ‘이탈리아 형제들(Fratelli d’Italia)’이 다수당이 되면, ‘이탈리아 문화 수호’ 담론은 더 거세질 것이다. 2027년 10월로 예정된 밀라노 시장 선거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현 시장 베페 살라를 대신해 극우 후보가 당선될 경우에도 외풍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라 스칼라 음악감독 시절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밀착했던 리카르도 무티와 달리, 정명훈은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시절에도 이탈리아 정치권과 거리를 유지해왔다. 라 스칼라에서 기댈 방패는 이탈리아 오페라, 베르디 해석에서 거둔 예술적 성과다.
서울시향 재임 시절 정명훈은 지방선거를 전후해 시의회의 고액 급여 논란에 휩싸인적 있다. 정명훈은 현재 KBS 교향악단 계관 지휘자, 부산콘서트홀과 부산오페라하우스를 총괄하는 클래식부산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클래식부산 예술감독 임기는 2023년 7월부터 3년으로, 부산시와 정명훈은 2026년 상반기까지 재계약 논의를 완료해야 2027년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에 전념할 수 있다. 2027년부터 라 스칼라 음악감독을 수행하는 일정상, 향후 클래식부산에서 정명훈의 시즌당 오페라 전막은 당분간 1개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향이 그랬듯 한국의 음악조직도 정명훈을 발판삼아 국제 공연시장으로 한 걸음 나아가려면 정명훈을 명예 지휘자로, 또 음악감독으로 영입한 해외 음악 기관에서 제시한 계산서는 어땠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다만 정명훈의 서울시향 말기와는 달리 그의 가치에 관한 질문과 평가가 보다 구체적이어야겠다.
국내에서 정명훈의 티켓 파워는 여전하다. 정명훈의 베토벤 ‘합창’은 서울시향이든 KBS교향악단이든 전석 매진을 이끄는 불패 카드다. 오는 21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아시아 필하모닉의 ‘합창’ 역시 예외 없이 매진됐다. 오히려 조성진이나 임윤찬 없이 정명훈이 해외 악단을 이끌 경우 흥행이 종종 부진하다. 서울시향 시절보다 고가의 티켓에 가성비를 따지는 관객이 늘어난 탓이다. 정명훈도 2013년 자신이 지휘한 라디오 프랑스 필 내한의 저조한 판매를 “서울시향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증거”라 말하곤 했다.
박정희에서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최고 정치지도자들은 늘 정명훈이라는 예술가를 국가적 상징으로 호출해왔다. 국내 기관과 정명훈의 협업은 단순한 ‘개인과의 계약’이 아니라, 국가 이익을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다뤄야 한다는 국제정치학자 조홍식이 남긴 지적(본지 2015년 3월 1일자)도 돌아볼 만 하다. 라 스칼라 음악감독이라는 상징적 자리에 오른 지금이야말로, 정명훈의 예술적 위상과 그에 상응하는 보상 체계를 국가 브랜드 제고라는 공공 자산의 관점에서 재조명할 시점이다.
한정호 공연평론가·에투알클래식 대표. 런던 시티대 대학원 문화정책 매니지먼트 석사. 발레리나 박세은, 축구인 박지성 등 예술 체육계 명사의 에이전시와 문화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에투알클래식 대표를 맡고 있다. 월간 객석, 일본 오케스트라연맹에서 일했고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다양성위원회 민간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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