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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후드 게릴라’ 출신으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린 남미 좌파의 거두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2025년 5월13일 숨을 거뒀다. 2024년 4월 식도암 판정을 받은 뒤 투병생활을 해온 그는 2025년 1월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중단했다. 향년 89. 그의 장례식은 사망 다음날인 5월14일 수도 몬테비데오의 의회 의사당에서 엄수됐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운구 행렬을 지켜보며 대형주
애도했다.
2025년 5월14일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의 거리에서 시민들이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을 지켜보며 애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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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14일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의 거리에서 시민들이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을 지켜보며 애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는 1935년 5월20일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의 파소데라아레나에서 태어났다. 중산층 가정에서 평범하게 성장한 그는 1주식수익율
0대 시절 중도우파 정당인 국민당의 열성 당원이던 외삼촌을 통해 정치에 눈을 떴다. 그는 20대 초반부터 국민당 내부 진보파에 적극 가담했고, 27살이던 1962년엔 국민당을 탈당해 사회당 등과 함께 좌파 연대체 인민연합 결성에 앞장섰다. 그해 치른 대선에서
인민연합 후보는 단 2.3%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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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후드 게릴라?
우루과이는 한때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꼽혔다. 이미 20세기 초에 저소득층 소득세 폐지(1905년), 실업급여(1914년)와 하루 8시간 노동제(1915년) 도입 등으로 복지국가의 꼴을 갖췄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농산물을 비롯한 수출이 크게 늘어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 하지만 1950년대 중반 이주식천황
후 세계적인 농산물 수요 급감으로 우루과이 경제는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 중산층의 삶의 질도 곤두박질쳤다. 그 무렵 쿠바에서 무장혁명으로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우루과이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했다. 제도권 정치의 벽을 실감한 청년 무히카도 신생 게릴라 조직에 가담해 총을 들었다. 1965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조국해방운동-투파마로스’(MLN-T·이하 투파마로스)다.
스페인 식민지배에 맞서 싸운 18세기 잉카 투사(투팍 아마루 2세)에서 이름을 따온 투파마로스는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무장단체였다. 이 단체는 이른바 ‘무장 선전·선동’ 전술을 채택했다. 최소한의 무장력을 동원해 상징적인 장소를 공격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2014년 10월26일 호세 무히카 당시 우루과이 대통령이 직접 낡은 소형차를 몰고 수도 몬테비데오의 투표장에 도착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한 4명을 포함해 모두 7명의 괴한이 휴양도시 푼타델에스테의 산라파엘 카지노를 급습해 미화 22만달러를 탈취했다. 우루과이 사상 최대 규모의 강도 사건이었다. 7일 뒤 도둑질한 돈 가운데 일부가 카지노 직원의 봉사료(팁)란 사실을 알게 된 절도범들이 해당 금액만큼 카지노 쪽에 돌려줬다. (…) 비슷한 시점에 괴한 4명이 수도 몬테비데오의 금융회사 사무실에 침입했다. 괴한들은 현금 수천달러와 회계장부 6권을 훔쳐갔다. 하지만 업체 쪽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며칠 뒤 몬테비데오의 신문사와 방송사에 등사된 문서가 배달됐다. 도난 사건이 은폐됐다는 점과 해당 업체가 불법행위에 연루됐음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도난당한 장부는 나중에 법원 계단에서 발견됐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1969년 5월16일 ‘우루과이의 로빈 후드 게릴라’란 제목의 기사에서 투파마로스의 활동을 이렇게 전했다. 게릴라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정부의 소탕작전도 격해졌다. 1970년 3월 동료와 술집에서 접선을 시도하던 무히카가 경찰에 적발됐다. 그는 총격전 끝에 여섯 군데나 총상을 입고 체포됐다. 온전히 회복하기까지는 1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1971년 11월 대선에서 우파 콜로라도당 소속인 후안 마리아 보르다베리 후보가 당선됐다. 정권의 군부 의존도가 심화했다. 결국 1973년 6월 쿠데타를 통해 군부가 전면에 나섰다. 이때부터 우루과이는 ‘민군복합체’란 기이한 형태의 군부독재 체제로 접어들었다. 무히카는 1985년 3월 민정 이양 뒤에야 사면령이 내려지면서 14년여 만에 석방됐다.
나는 가난하지 않다, 자유롭기에
석방된 무히카는 곧바로 좌파정당 연대체 ‘프렌테 암플리오’(FA·이하 광역전선)에 가담하는 한편 1989년 대선을 앞두고 투파마로스 동지들을 중심으로 한 ‘인민참여운동’(MPP) 창당 작업에 집중했다. 그가 오랜 연인이자 게릴라 동지 출신으로 나중에 상·하원 의원을 거쳐 부통령(2017~2020년)까지 지내는 루시아 토폴란스키와 몬테비데오 외곽에 작은 농가를 마련해 입주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94년 하원에 진출한 그는 재선 상원의원과 농축수산부 장관(2005~2008년) 등으로 경력을 쌓아갔다. 이어 2009년 11월 대선에서 광역전선 후보로 나서서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2025년 5월14일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의 거리에서 시민들이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을 지켜보며 애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5년 5월14일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의 거리에서 시민들이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을 지켜보며 애도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 관저는 노숙인 쉼터로 내줬다. 대통령 별장은 아예 팔아치워 국고에 귀속시켰다. 당선 전부터 살던 비좁은 농가에서 계속 지냈고, 1987년식 낡은 하늘색 폴크스바겐 비틀을 손수 몰고 출근했다. 외국 출장길엔 전용기 대신 민항기 이코노미석을 고집했다. 미화 약 1만2천달러에 이르는 대통령 급여의 90%는 빈민 지원금으로 내놨다. 그는 2012년 11월15일 영국 비비시(BBC)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나더러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하더라. 전혀 그렇지 않다. 비싼 생활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일만 하면서, 항상 더 많은 걸 원하는 사람들이 가난한 거다. 이건 자유의 문제다. 많은 걸 가지지 않았다면, 그걸 유지하기 위해 한평생 노예처럼 일할 필요도 없다. 그럼 스스로를 위한 시간도 더 많아지는 거고.”
2013년 6월1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바티칸을 방문한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을 환한 표정으로 얼싸안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그의 임기 5년 동안 우루과이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5.4%로 안정적이었고, 빈곤율과 실업률은 지속적인 감소세를 유지했다. 사회개혁 의제도 뚝심 있게 추진했다. 2012년엔 가톨릭 신자가 절대다수인 남미 국가로선 드물게 낙태를 합법화했다. 2013년엔 동성결혼까지 합법화했고, 같은 해 말엔 마리화나 재배 가공 보관 판매를 국가가 전담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마리화나 합법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2014년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2015년 3월1일 퇴임할 무렵 그의 지지율은 70%에 육박했다.
퇴임 뒤 낡은 농가에서 꽃밭 일구며 여생?
퇴임 뒤에도 변한 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옛집에서 부인과 단둘이 생활했고, 낡은 농가 맞은편 비포장도로에 차를 대고 지켜선 사복 경관 2명이 경호인력의 전부였다. 항암치료 중단을 선언한 2025년 1월9일 우루과이 유력 주간지 부스케다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솔직히 죽어가고 있다. 혼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더 이상 인터뷰도 사양한다. 동포들에게 작별인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을 부인과 함께 꽃밭을 일구며 조용히 보내기를 원했다. 그에게 삶은 매 순간 “아름다운 모험이자 기적”이었다. 그러니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은 흠 없이 살다 가는 스스로에 대한 위로다.
‘엘 게레로 티에네 데레초 아 수 데스칸소, 전사에겐 쉴 권리가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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