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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때 전남대 교수 시국선언문 직접 작성해 체포·해직 등 고초 겪어
1984년 복직 뒤 선구적으로 동학 연구 광주·전남 동학농민혁명 자료집 내고 장성 황룡촌 동학 승전탑 건립 주도 현존 유일한 동학농민군 편지 발굴도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시국선언문을 작성했다가 구속되시고, 전남 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 연구와 기념사업을 평생 이어오신 이상식 교수님(전남대 사학과 명예교수)께서 지난 5일 영면하셨습니다. 향년 87.
1938년 전남 장성군 삼서면 홍정리에서 태어난 교수님은 서울대 사범대 역사과를 졸업한 뒤 전남대와 충남대 대학원에서 석· 주택마련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광주 전남여고와 중앙여고에서 교편을 잡으신 후, 1977년부터 전남대 사학과 교수로 부임해 후학을 양성하셨습니다.
민주화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1980년 5월12일, 교수님은 전남대 전체 교수회의에서 민주화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교수협의회 명의의 시 우리은행 전세자금대출 서류 국선언문을 직접 작성해 온 나라에 울려 퍼지게 하셨습니다.
고인이 작성한 1980년 전남대 교수 시국선언문. 필자 제공
이 선언문에는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라는 사관에 입각하여 민주정부에 정권 이양, 학원 민주화, 표적 언론의 공정한 보도, 민주시민의 사면·복권, 노동자와 농민의 소득 균형분배를 위한 제도적 정리 등 민주주의의 본령을 향한 요구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용기는 곧 가혹한 시련으로 이어졌습니다.
1980년 7월11일, 교수님은 포고령 위반 혐의로 505보안대로 연행되어 고초를 겪으셨고, 10월30일 전교사계엄보통군법회의(1심)에서 징 수원신용회복위원회 역 1년을 선고받고, 그해 12월29일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2심)에서 선고유예가 확정되자 전남대에서 해직되셨습니다. 다행스럽게도 1984년 복직되어 2003년 정년까지 전남대에서 전남대 평의원회 의장, 전남사학회 회장, 인문대학장 등을 지내며 학문과 교육에 헌신하셨습니다. 2001년에는 5·18의 기억을 담은 ‘역사의 증언’(전남대 출판부)을 펴내셨습니다. 여신금융
교수님은 특히 동학농민혁명 연구와 기념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바치셨습니다. 1994년, 혁명 100주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을 때,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이미 교수님이 선구적으로 연구와 기념사업을 이끌고 계셨습니다. 10여편의 관련 논문과 함께 ‘전남 동학농민혁명사’를 집필하셨고, 광주·전남 전역에서 발굴된 사료를 모아 ‘전남지역 동학농민혁명 자료집’을 발간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교수님이 발굴하신 ‘동학농민군 한달문 편지’와 ‘동학농민군 유광화 편지’는 각각 2022년과 2021년에 국가등록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2023년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때 핵심 기록물로 포함되었습니다. 이 편지들은 한달문과 유광화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가 교수님께 보여드리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한달문 편지는 현재 남아 있는 동학 농민군의 유일한 한글 편지로, 나주 감옥에 갇혀 있던 한달문이 어머니께 보낸 것입니다. 유광화 편지는 역시 현존하는 동학 농민군의 유일한 한문 편지로, 동학농민군 유광화가 전투 현장에서 집에 있는 동생 광팔에게 보낸 것입니다.
동학농민군 한달문의 편지. 필자 제공
동학농민군 유광화의 편지. 필자 제공
교수님이 태어나신 전라도 장성은 동학농민혁명과 깊은 인연을 지닌 고장입니다. 동학농민군은, 진압하려는 중앙군을 상대로 장성 황룡촌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기세가 한층 높아졌습니다. 교수님은 이 역사적 현장에 1995년 승전기념탑 건립을 주도하셨고, 1998년 황룡전적지가 국가사적(제406호)으로 지정되도록 힘쓰셨습니다. 승전탑과 국가사적 지정은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업적입니다.
교수님은 학문에만 머물지 않고,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추진에도 헌신하셨습니다. 1993년 12월, 광주전남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결성해 회장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활동하셨습니다. 필자가 처음 교수님을 뵌 것은 2005년, 민간 주도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만들어지고 관련 단체들이 모여 회의를 할 때였습니다. 회의 때마다 빠짐없이 참석하신 교수님은 연구자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올바른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으로서 동학농민혁명 연구와 기념사업에 초석을 다지신 이이화 선생님과 함께 의견을 나누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두 분은 같은 광주고 동기로, ‘민중이 역사 발전의 주체’라는 믿음 위에서 연구와 기념사업을 함께 이끌어 오셨습니다.
고인이 건립을 주도한 장성 황룡촌 동학 승전기념탑. 필자 제공
2016년 광주 남구의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조성, 2017년 장성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창립에도 교수님은 중심에서 역할을 다하셨습니다. 동학농민혁명 연구와 기념사업을 해오신 공로로 2017년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주는 녹두대상을 수상하셨고, 상금 1000만원 전액을 전남대에 기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의 마지막 길에서 마주한 잊지 못할 장면이 있습니다. 화장장에서 태극기에 싸인 관이 들어갈 때, 한 사람이 유난히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 곁에서 아버지를 위로하던 아들도 같은 눈물로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었습니다. 바로 교수님의 아들과 손자였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눈물, 아들을 위로하는 아버지의 눈물… 그 부자의 모습에서 저는 교수님이 아버지로서, 할아버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깊고 따뜻한 삶을 살아오셨는지를 느꼈습니다. 저 역시 그 순간, 애써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이상식 교수님! 당신은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진실을 외친 용기 있는 학자였고, 민중과 함께한 참된 지식인이셨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을 계승하여 민주화운동을 실천하신 진정한 역사학자이셨습니다. 민주주의와 정의,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이제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부디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 빕니다.
이병규/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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