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로스스타인의 '먼지 폭풍 속을 걷는 농부와 아들들'. 1936년 4월 오클라호마주 시머론 카운티에서 촬영한 재정착관리국 사진.


벌써 며칠째, 해가 뜨지 않았다. 푸른빛으로 찬란한 하늘에 잿빛 먼지가 커튼을 쳤다. 더께 진 먼지는 인간과 해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빛이 없는 도시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빛은 생명에 기운을 불어넣은 촉매여서 빛이 사라지자 인간들도 기운을 잃어갔다.
밤에 어두웠다가, 낮에 어스름했다가, 다시 저녁에 어두워지는 날들의 반복.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우울한 사내들이 쉽게 주먹을 휘둘렀다. 사이다쿨 만연한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불러 먼지와 피가 도시를 물들였다. 도시는 더욱 어두워졌다.
먹을 것이 없었고, 아이들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여자들은 몸을 팔았다. 너무 많은 여자가 한꺼번에 자기 몸을 내놓아서 매춘 가격은 얄궂게도 매일같이 내려갔다. 가족은 고사하고 제 입에 풀칠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1930년을 미 야마토게임 국은 '더러운 30년대(Dirty 30's)'라고 부른다. 경제 대공황(1929년)에 이어 먼지 폭풍우가 미국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얼핏 인재(人災)와 천재(天災)의 앙상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재와 인재가 겹쳐 일어난 일이었다. 먼지 폭풍우를 부른 건, 우매한 인간의 경제활동이 부른 촌극이어서였다. '더스트 볼(Dust Bowl·흙먼지 그릇)'로 불린 릴게임모바일 일대의 사건이었다.
링컨의 한 수, 홈스테드법
이보다 70년 전인 1860년, 미국은 분열해 있었다. 대규모 농장에서 흑인을 노예로 부린 백인들로 뭉친 남부와, 공업과 도시로 대변되는 북부는 서로를 증오하고 경멸했다. 북부를 기반 삼은 공화당은 에이브러햄 링컨을 앞세워 대통령 자리를 거머쥐었다. 남부의 반발은 예상된 것이 사이다쿨 었다.
공화당은 남부의 농민이 아닌 새 시대 '농민'의 표본을 보이고자 했다. 흑인을 짐바리 동물로 여기는 비인간적인 농장이 아니라, 현대화된 기계의 힘으로 인권이 지켜지는 농장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도입한 것이 홈스테드법(1862년)이었다.
중·서부 대평원(Great Plains)에 오는 개척자들에게 미국 정부 바다이야기5만 소유의 토지를 160에이커씩 무상 할당했다. 울타리를 세우고, 땅을 개간하고, 씨앗을 심기만 하면 큰 땅을 가질 수 있었다. 무산자로서 서러운 삶을 살아가는 도시민, 남부 농장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흑인의 마음은 들떴다. 어엿한 제 땅에서, 가족을 먹이고 재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공화당 정부로서는 하나의 돌로 세 마리의 새를 잡는 격이었다.
아메리카대륙 원주민의 땅을 백인 중심으로 개척할 수 있었고, 빈민을 부농으로 만들어 세수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공화당 우호 세력을 마련할 수 있었으니까.
당시 2억7000만에이커의 땅이 개인에게 넘어갔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토지 양도였다. 무리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11배나 되는 땅이 손바뀜한 것이었으니까. 미 대륙을 달리는 철도에는 부농이 되겠다는 야망에 찬 사내들로 가득했다.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때의 토지 양도가 극도의 재앙으로 돌아올 줄은.



도러시아 랭의 '이주하는 어머니'. '더스트 볼' 피해자의 참상을 담은 사진이다.


1차 대전, 미국을 세계의 빵 바구니로
어중이떠중이가 대평원에 도달했을 때 끝없이 펼쳐진 대지가 그들을 맞았다. 보슬보슬 비가 내려 땅은 더없이 풍요로워 보였다. 봄비가 땅속에 깊이 스며서 싹이 돋아 옥처럼 빛났다. 대평원은 원래 비가 잘 내리지 않아서 풀이 듬성듬성 자라는 지역이었지만, 하늘은 초심자를 축복하듯 땅을 적셨다. 세례자가 뿌리는 하늘의 성수인 것만 같았다.
이제 막 농사를 처음 해보는 뜨내기 농사꾼들은 '쟁기질이 비구름을 부른다'는 미신을 되뇌며 열심이었고, 하늘은 이를 어여삐 여기듯 비를 뿌려줬다. 공장의 작업복을 갈아입은 농부들은 소를 사들여 풀어놓거나, 밀을 심으면서 마음속에 농심(農心)을 파종했다.
1차 세계대전의 총성에 미국 중남부 농부들은 미소 지었다. 유럽이 전쟁에 휩싸여 농업 생산량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었다. 배고픈 군인들은 싸울 수 없어서, 유럽 지도자들은 성난 군인을 먹을거리로 달래야 했다. 유럽이 잇달아 미국에 곡물 수출을 요청한 배경이었다.
1차 대전 기간 곡물 가격이 3배 뛰었고, 대평원의 농부들은 노랗게 익은 곡물로 황금을 거둬들였다. 촉촉한 비가 자주 내리고, 농부들의 트랙터질 몇 번에 곡물이 쑥쑥 자랐으며, 수확한 곡물은 유럽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야말로 신의 축복, 할렐루야.
에덴동산에 가고 싶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황금의 땅에 사람이 몰려들었다. 동부 대도시에서 일자리를 잃은 백인들과, 유색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차별의 땅 남부에서 올라온 흑인들이 뒤섞였다. 자유와 풍요의 땅을 향한 몸부림이었다.
대평원은 미국 정부의 든든한 지지 기반이었다. 정부가 양도한 땅 덕분에 부농이 될 수 있었으니까.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 성공에 취해 '홈스테드법'의 판을 키웠다. 1909년과 1916년에도 홈스테드법이 추가로 발의됐다. 대평원은 어느덧 사람과 트랙터로 빽빽 차고 있었다. 너른 대평원에서 콤바인이 매일같이 땅을 갈았다.



저주의 시작
"우리는 우리 먹거리를 먹겠어요."
1918년 전쟁이 끝나자 특수도 끝났다. 유럽의 군인들이 총을 내려놓고 농부로 돌아가면서였다. 유럽인들은 이제 제 땅의 밀을 찾았다. 미국 밀을 찾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었다.
수요가 줄면 가격도 함께 떨어지는 건 경제학의 법칙이어서 밀 가격은 10년 동안 80%나 하락했다.
뜨내기 농부들은 공급을 늘리는 방식으로 더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빚을 내 트랙터와 콤바인을 빌려 땅을 경작하거나, 가축을 흘레붙여서 더 많은 새끼를 쳤다. 땅은 기계에 갈리거나 동물에게 너무 자주 뜯어먹혔다. 후대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땅을 수없이 강간했다"고 했다.
사람의 지력은 팔수록 샘솟지만 땅의 지력은 팔수록 떨어지기 마련이어서, 끊임없는 경작은 땅을 불모지로 만들고 있었다. 1929년 경제 대공황이 미국을 덮쳤다. 곡물 가격도 덩달아 폭락했다.
기다렸다는 듯, 하늘도 비를 거둬들였다. 대평원의 농부들은 맑고 화창한 하늘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쟁기질해도 비가 내리지 않고 있어서였다. 곡물이 죽고, 초지가 사라지면서 촉촉한 땅이 메말라갔다.
대평원의 땅은 사막처럼 고운 모래로 가득했다. 물을 가두는 토착 식물들은 이미 뿌리 뽑힌 지 오래였다. 풍요로운 시절 익어가는 곡물이 펼쳐져 있던 황금빛 들판은, 모래로 뒤덮인 황금빛 황량함으로 죽어갔다.
대평원에는 생명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네브래스카, 캔자스, 다코타, 콜로라도, 몬태나, 와이오밍, 오클라호마, 뉴멕시코, 텍사스 평원, 아이다호, 오리건 서부 평원이 모래로 가득해서였다. 작물 위에 내려앉았던 모래는 이윽고 사람의 집에, 차에, 슈퍼마켓에, 레스토랑에 불어닥쳤다. 평원의 사람들은 먹을 때마다, 말할 때마다, 숨 쉴 때마다 모래 알갱이를 씹어야 했다.
어린아이와 노약자들은 폐렴으로 죽었고, 홀로 남겨진 아기들이 질식사로 숨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모래로 죽은 아이는 모래밭에 묻혔는데, 애끊는 참척의 고통에 부모들은 목놓아 울 수조차 없었다. 통곡할 때마다 입에 모래가 씹혔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끌어당긴 대평원은 이제 사람을 모래로 튕겨냈다. 동서남북에서 대평원으로 몰려온 이민자들은 대평원에서 사방팔방 동서남북으로 떠났다. 탈출하지 않으면 모래 속에 묻힐 운명이어서였다.
모래, 분노의 추격자
인간은 떠났으나 대평원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인간을 가만두지 않았다. 모래를 날려 사람의 길을 막았다. 인간으로서는 바람이 너무 거세어 이동할 도리가 없었다. 말의 코에 모래가 박혀서 말이 코피를 쏟았다. 채찍을 맞아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면에서 모래 소리가 들려왔다.
도시로 탈출에 성공했어도 그들을 기다리는 건 눅진한 가난이었다. 대공황 여파로 도시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일자리가 없는 남자들은 술에 취했고, 화난 부인들은 이혼을 선언하고 구직활동을 다녔는데, 대공황기에 여자들이 구할 직장이 있을 리 없어서 수많은 여자가 몸을 팔았다.
1만명이 안되는 도시에 매춘부만 2000명이 넘기도 했다. 1930년대 후반 텍사스 지역의 성매매 여성 화대가 '1달러'에 불과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이때의 절절함을 배경으로 '분노의 포도'를 썼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모래바람을 뚫고 사람들은 도시에 다다랐지만, 모래는 분노의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1934년 대평원에 큰바람이 일었다. 큰바람은 모래를 끌어올린 뒤 편서풍에 기대어 도시까지 달려갔다. '더스트 볼'이었다. 도시로 도망친 농부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대평원에서 본 모래가 다시 눈앞에 도달해 있었으니까. 모래는 눈 속으로, 콧속으로, 입속으로 맹렬히 달려왔다. 마치 시신을 염하려는 장의사처럼.
1934년의 대형 먼지 폭풍은 시카고에만 1200만t의 먼지를 뿌렸다. 뉴욕·워싱턴DC에도 갈색 먼지가 내려앉았다. 이듬해 4월 14일 일요일, 먼지 폭풍의 규모가 더욱 커졌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먼지 폭풍으로 일컬어지는 '블랙 선데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해가 두꺼운 먼지 벽을 뚫지 못해 도시는 어두웠고, 미국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1930년대 미국의 참혹한 현실을 배경으로 쓴 소설인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대공황의 상처에 뿌려진 모래
재앙이었다. 밀 생산량이 36%, 옥수수 생산은 48%나 줄었다. 수확이 없어 농민은 은행 이자를 낼 수 없었고, 지방 은행들은 연쇄적으로 도산했다. 돈줄로 연결된 대형 은행까지 자금 경색이 이어졌다. 대공황의 상처가 더 크게 벌어졌다.
남자들은 직업을 잃었고, 여자들은 몸을 팔면서 생명을 부지했다. 더스트 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현재 가치로 하루에만 5억7000만달러인 것으로 전해진다. 1930년대 농민 250만명이 대평원을 떠났다. 1940년대에도 250만명이 고향을 등졌다.
인간은 어리석으나 어리석음으로 크게 배우는 존재여서, 미국 정부는 1935년 '토양보전국(Soil Conservation Service)'을 세웠다. 농민들에게 농작물을 바꿔 심는 윤작과 땅을 쉬게 하는 휴경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2억그루의 나무를 심어 방풍림으로 모래의 발목을 잡았다. 정부와 농민이 자연스럽게 자연을 대하기 시작한 지 4년 후, 1939년 대평원에 다시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자 대공황의 불도 꺼졌다.
1950년 대평원에 다시 가뭄이 닥쳤다. 모래는 더 이상 성내며 날아가지 않았다. 대평원은 그렇게 평온을 찾았다.
작은 모래바람을 먼지 폭풍우로 만들었던 건 정치적 포퓰리즘과 인간의 욕망이었다. 화난 자연은 인간에게 가혹한 보복을 내린다는 걸, 우리는 너무 늦게 깨쳤다. 어쩌면 아직 모르고 있는 진실일지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만든 '더러운 시대(Dirty Ages)'에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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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