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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6일 자정 무렵, 아라홍련의 시배지인 경상남도 함안으로 향했다. 내가 살고 있는 경기 김포시에서는 400㎞가 족히 넘는 거리다. 아라홍련은 고려 시대 연꽃 씨앗에서 발아한 연꽃으로, 함안의 옛 이름인 ‘아라’와 연꽃을 뜻하는 홍련이 합쳐져 아라홍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7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마음으로 밤새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더니 새벽 5시30분경이었다. 새벽같이 길을 떠난 이유는 이때 아라홍련의 자태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함안군 가야읍 ‘함안박물관’ 근처 아라홍련 시배지에부산주공 주식
도착하자 안개가 살짝 드리워진 고요 속에 수줍은 아라홍련 꽃봉오리가 부드러운 색채를 띠고 있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이유다. 장거리 운전에도 아라홍련 덕분에 피곤한 몸이 맑게 깨어난다.
안개 낀 아침, 아라홍련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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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봉오리에서 은은한 향기가 새어 나와 벌을 유혹한다.
서두름 없이 서서히 피어나는 아라홍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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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 전 고려 시대 연꽃의 씨앗에서 발아한 아라홍련의 자태.
이처럼 동틀 무렵 아라홍련도 피어난다. 봉오리 속에 머금은 향기가 새어 나와, 일찌감치 벌 두어 마리가 날아든다. 그로부터 1시간 동안 서급등주차트
서히 잎을 벌리는 홍련의 향기가 벌을 유혹한다. 연꽃 향기에 취한 벌들이 홍련 속을 넘나들며 마음껏 춤을 춘다. 연꽃은 시간을 두고 보는 느린 미학이 있다.
은은한 아라홍련 향기에 벌들이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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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한 연꽃 향기에 벌들이 즐겁기만 하다.
연잎 뒤에 숨어 피어나는 연꽃이 수줍다.
연꽃의 향기가 충만한 시간은 오전 6~7시 사이다. 오전 7~8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9~10시면 꽃잎을 활짝 피운다. 11시가 되면 꽃잎이 서서히 오므라들기 시작해 정오가 되면 완전한 꽃봉오리로 돌아가 내일을 기약한다. 6월 중순~7월 중순이 가장 아름다운 아라홍련을 볼 수 있는 적기다.
오전 5시48분. 아래로 먼저 펼쳐진 분홍색과 연녹색을 띠는 꽃잎은 연꽃을 보호하는 꽃잎이다.
오전 6시27분. 연꽃을 보호하는 꽃잎이 먼저 펼쳐지자 위 꽃잎도 따라서 벌어진다.
오전 6시51분. 연꽃잎은 아래서부터 위로 펼쳐진다.
오전 7시48분. 활짝 핀 아라홍련.
오전 10시48분. 아라홍련 꽃잎이 위에서부터 오므리기 시작한다.
연꽃은 처음 봉오리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이틀간 봉오리 형태로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하다가 개화한다. 개화한 뒤에는 4일간 꽃잎을 펼치고 오므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대형 종인 아라홍련은 개량된 홍련과 달리 화려하지 않고, 꽃봉오리가 두 손을 합장한 형태로 살포시 올라와 둥근 타원형의 겹꽃을 피어난다. 꽃잎의 길이는 17㎝ 정도로 길쭉하고, 은은한 향을 뽐낸다. 독특한 형태의 우아함과 기교 없는 자태는 아라홍련만의 자연스러움을 드러낸다.
여유를 갖고 관찰을 하면 살아있는 동물의 움직임을 보는 듯한 연꽃.
아라홍련의 절제된 자태.
특히 비단결 같이 부드러운 분홍빛 색상은 보면 볼수록 여유로운 매력을 느끼게 한다. 꽃잎 바깥 색은 전제적으로 분홍색을 띠지만, 안쪽 아랫부분은 흰색이다. 연한 분홍색이 부드러운 계조를 띠며 위쪽으로 갈수록 분홍빛이 짙어진다. 꽃의 끝부분은 아주 붉은 선홍빛을 띠는데, 마치 순수가 빛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연꽃은 오전 5시 잠에서 깨어나 7시간을 활동하고 꽃잎을 접고 내일을 기약한다.
연꽃의 꽃말은 순수함이다. 탁한 진흙 물에서 자라나 티끌 없이 맑고 깨끗한 꽃잎을 드러낸다. 연꽃은 환생이나 재생이라는 상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연꽃의 생태적인 특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연꽃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정오에는 꽃잎을 오므렸다가, 다음날 아침 새롭게 피어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오므린 꽃잎 속엔 향기로움이 가득 차 있다. 해가 떠서 빛을 비추고, 만물이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움직일 때 그윽한 향기를 뿜으며 서서히 피어난다.
연꽃 속에서 선홍빛이 분출하듯이 보이는 아라홍련.
단아한 아라홍련의 모습.
토속신앙에서 태양은 환생을 상징하고 영생을 준다고 여겨져 왔다. 태양과 함께하는 연꽃 역시 환생을 상징한다. 우리 조상들은 연꽃의 생태에서 죽은 뒤 다시 태어나 살게 된다는, 무량한 생명을 연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마음에 맑은 향을 전해주고, 곤충에게는 생명의 양식을, 새들에게는 서식처를 내어주는 것이 연꽃이다. 그러니 연꽃이 있는 곳이 만물이 생동하는 소우주다.
보는 각도와 빛에 따라 연꽃은 다른 형태의 모습과 색채 농담 변화를 볼 수 있다.
빛에 따라 향기를 거두고, 잎을 펴고 오므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오므린 연꽃은 빛을 감추고 내일 다시 생명으로 피어난다. 오므린 연꽃 봉오리 속에 맑은 세상이 있지 않을까?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 아미타불 부처나 미륵보살과 같은 보살들이 거주하고 있는 청정한 세계인 정토를 그린 고려 불화에서 연꽃이 빠짐없이 그려져 있는 이유다.
암끝검은표범나비(여름형) 수컷이 아라홍련 위에 앉아다.
연꽃잎에서 잠시 쉬어가는 왕파리매. 매처럼 곤충들을 사냥한다고 해서 파리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실잠자리에게 자리를 내준 연꽃잎.
고려 시대 불화 및 벽화에도 남아있는 아라홍련은 현재의 연꽃이 다양하게 분화되기 이전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유 전통 연꽃의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진화하지 않은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니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수십 종의 유사한 홍련과 비교한 결과, 아라홍련과 같은 종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고려불화 아미타여래도에 그려진 홍련.
고려불화의 홍련과 아라홍련의 모습이 닮았다.
아라홍련 시배지와 함안 연꽃테마파크의 거리는 약 1.5㎞다. 연꽃테마파크는 혼종 연꽃이 생길 수 있는 환경이다. 이곳에는 아라홍련과 법수홍련 그 외의 연꽃이 혼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아라홍련 시배지에 혼종이 생기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연꽃의 향기는 오전 9시 이후에 서서히 사라진다. 이 때문에 연꽃테마파크에 있던 벌들은 오전에 향기가 사라진 시배지까지 날아올 일이 희박한지도 모르겠다. 꿀벌의 행동반경은 2~3㎞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에는 의외성이 있기에, 언젠가 아라홍련이 고유성을 잃고 혼종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장기적인 원종 보전을 위해 아라홍련 시배지 사방 3㎞ 이내에는 다른 연꽃을 식재하지 않는 것이 아라홍련의 고유성을 보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바라본 아라홍련.
아라홍련 연씨는 2009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전국 최고·최대 목간 출토지로 알려진 함안 성산산성 유적지 내 연못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수집됐다. 수집된 연씨 일부를 함안박물관에서 그해 4월 인수 받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을 의뢰했는데, 그 결과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 고려 시대 연씨임이 밝혀졌다.
빛에 따라 연꽃잎은 농담의 변화가 다양하다.
연잎과 연꽃 조화롭다.
연꽃이 있는 곳엔 벌이 있기 마련이다.
함안박물관과 농업기술센터가 공동으로 연씨 7개에 씨 담그기, 싹 틔우기 등을 시도해 그 가운데 3알에서 싹 틔우기에 성공하였다. 이후 2010년 7월7일 일 년 3개월 만에 붉은빛이 감도는 홍련을 피우기에 이른다. 첫 꽃이 피었을 때, 아라홍련의 꽃 길이는 13㎝, 꽃잎 수는 12개 전후, 꽃봉오리는 타원형이었다.
함안박물관 정문 앞 아라홍련 시배지.
아라홍련 시배지 관리인 윤기숙씨가 재배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연꽃의 이름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함안이 고려 시대에도 융성했던 아라가야의 옛 땅으로 기록되어 있음에 착안해 아라홍련으로 지어졌다. 2011년 5월 고유종 보호를 위해 가야읍 도항리 649번지 부지에 시배지 1649㎡를 마련해 처음 꽃을 피운 알뿌리 150촉을 옮겨왔다.
해를 거듭할수록 현재 개체 수가 늘고 있다. 첫 개화 때보다 생육환경이 좋아져 현재 아라홍련의 꽃 길이는 11~17㎝, 꽃잎 수는 15개 전후로 더욱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라홍련 관찰과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 김정희 함안박물관 문화유산담당관을 비롯해 직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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