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의 아이언샷. 사진=KPGA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15장 16절)
2007년 7월 8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콩그레셔널 골프장.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AT&T 내셔널의 4라운드가 열렸다.
최경주 선수는 스튜어트 애플비 선수에 2타 뒤진 2위로 4라운드를 시작했다. 최경주는 첫 세 홀에서 파를 이어갔다. 릴게임손오공 4번홀에 이어 8번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우승에 한 발 다가섰다.
이날 새로 부상한 경쟁자는 스티브 스트리커 선수였다. 3라운드까지 최경주에 1타 뒤졌던 스트리커는 전반에 버디 4개, 보기 1개로 3타를 줄이며 치고 올라왔다. 한편 애플비는 7번홀까지 더블보기 1개, 보기 4개를 범하며 무너졌다.
뒤집고 뒤집힌 후반 라운드 야마토게임예시 …15번홀에서 승부 갈려
최경주는 10번홀에서 파 퍼트를 놓친 데 이어 11번홀에서 2퍼트로 보기를 하면서 2위로 떨어졌다. 12번홀에서 버디를 낚아 선두로 올라갔으나 13번홀 보기로 다시 스트리커와 공동 선두가 됐다.
승부는 15번홀에서 갈리기 시작했다. 스트리커가 보기를 한 반면 최경주는 버디를 잡으며 2타 앞서갔다. 손오공릴게임
최경주는 파4 17번홀에서 두 번째 샷이 벙커에 빠지면서 다시 위기를 맞았다. 보기를 범할 경우 스트리커와의 차이가 1타로 줄어들면서 마지막 18번 홀의 부담이 커질 판이었다. 최경주는 그러나 멋진 벙커샷으로 보기 위기를 단숨에 버디로 바꿔놓았다. 이로써 2위와 차이를 3타로 벌리면서 우승을 거의 확정지었다.
첫홀부터 검증완료릴게임 17번홀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경기였다. 그러나 승부가 엎치락뒤치락 요동을 치는 그 아래, 최경주의 내면은 지극히 평온했다.
전날 밤 부인이 건네며 암기하라고 한 성경 말씀
전날 밤 숙소에서 최경주에게 부인이 성경을 건넸다. "이 구절을 외우고 내일 대회에 나가봐요." 서두에 인용된 요한복음 15장 16절이 쿨사이다릴게임 었다. 그는 두 시간 동안 이 구절을 외웠다. 다음날 아침에 암송해 봤고, 연습장에서 공을 치면서도 확인했다.
웬 걸, 티잉 그라운드에 서자 외운 게 지워졌다. '너희가'라는 첫 단어만 떠올랐다. 긴장한 탓이었다. 일단 공을 쳤다. 머릿속에는 온통 그 구절 생각뿐이었다. 스코어카드 기록을 캐디에게 맡기고 '너희가' 다음 구절이 무엇인지만 궁금해했다.
그렇게 14번홀까지 쳤다. 15번로 돌아설 때에서야 전광판을 봤다. 공동 선두였다. '이렇게 치는데도 선두구나' 싶었다. 15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타석에서 내려오는데 다음 구절이 터졌다.
"'만약 1번 홀부터 성경 구절이 다 생각이 났다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해 봤죠. 그럼 온갖 생각을 다 하며 공을 쳤겠죠. '이 홀에선 이렇게 쳐야지, 저 홀에선 저렇게 쳐야지'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선두와 승부에 대한 그 엄청난 중압감, 미디어와 경쟁자들이 주는 그 엄청난 압박감을 제대로 버텨냈을까 싶어요." (출처: 중앙일보, 최경주가 말하는 '나의 골프, 나의 신앙', 2008.12.18.)
"까먹은 성경 구절 때문에 프레셔를 하나도 안 느꼈다"
최경주는 이렇게 들려준 뒤, "까먹은 성경 구절 때문에 그런 프레셔(중압감)를 하나도 안 느끼고 공을 친 거죠"라고 말했다.
신경을 경기 밖의 무언가에 돌려 거기에 집중했더니 오히려 플레이가 안정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만약 그 구절이 떠올랐더라도 경기하는 내내 그 구절을 부분 암송하면서 홀을 돌았다면, 그 효과는 어느 정도 나타나지 않았을까.
중압감에서 벗어나 긴장하지 않게 하는 이 방법은 축구나 배구처럼 순간순간 긴박하게 돌아가는 스포츠가 아닌, 양궁이나 사격 같은 종목에도 활용될 수 있을 듯하다.
운동할 때 몸과 마음 사이에 머릿속에서 떠올릴 무언가를 완충재로 올려놓으면, 몸에 밴 기량이 자연스럽게 발휘될 공산이 커지는 듯하다. 모든 활동에서 강조되는 '힘 빼기'가 이뤄진 덕분으로 풀이된다.
두뇌 노동할 때 '윤활제'를 칠 수 있어
이런 원리를 두뇌 노동에도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머리가 작업을 더 매끄럽게 진행하도록 하려면, 두뇌에서 힘을 빼도록 하는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 무언가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백색소음과 배경 음악, 산책 등이다. 외부에서 흐르는 소리는 우리 정신과 두뇌 작업 사이에 윤활제 역할을 한다. 의식의 일정 부분을 백색소음이나 음악의 멜로디와 리듬에 맡기고 일을 하다 보면, 잡음이 전혀 없는 상태에 비해 일이 더 술술 풀린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방법도 있다. 숨 가운데 날숨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코로 길게 내쉬는 것이다.
산책 또한 우리 정신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사고를 활발하게 촉진하는 효과를 준다. 이런 효과는 이미 많은 두뇌 노동자의 활동을 통해서 제시됐다.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악상을 떠올리고 가다듬기 위해 자주 오랫동안 산책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오로지 걸어서 도달한 생각만 값어치가 있다"고 말했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이 문장에 앞서 다음과 같이 대구를 내놓았다. "앉아서 지내는 생활은 성령에 반하는 중대한 죄악이다."
나만의 루틴으로 워밍업 잘하는 사람이 고수
이런 윤활제를 치기 전, 두뇌 노동에도 워밍업이 필요하다. 운동할 때 워밍업이 기량 발휘와 부상 예방에 불가결하다면, 두뇌 작업에 워밍업은 사고 작용을 예열하는 준비 과정이다. 두뇌 노동의 워밍업은 구체적으로 루틴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해당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그 작업과 무관해도 좋은, 어떤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커피를 마신 뒤 책상을 정리하면서 관련 자료를 출력해두는 것도 루틴이 될 수 있다. 루틴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일이 원활하게 전개되도록 하는 나만의 루틴을 형성해놓은 사람이 고수다.
두뇌 노동이 잘 돌아가도록 윤활제를 쳐놓은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기존 '몰입'이라는 개념은 이 상태를 뜻하지 않으며, 저자에 따라 다른 상태를 의미한다. 어떤 저자는 좋아하는 취미에 빠져서 지내면 자신도 모르게 시간이 휙 지나간다는 그 상태가 '몰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취미에 빠지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고, 따라서 그 몰입은 업무에는 응용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다른 필자는 해결해야 할 과제에 장기간 집중해 전념하는 과정을 '몰입'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몰입'은 일상 업무 처리와 종류가 다르다.
개념과 이름은 단순한 명칭에 그치지 않는다. 잘 명명된 개념은 그 상태에 도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몸을 통해 두뇌 활동이 걸림 없이 돌아가는 상태를 '활주(滑走)'라고 부르자고 필자는 제안한다. 활주는 '땅이나 물 위를 미끄러져 내닫는 동작'을 가리킨다. 스케이트를 타고 빙판을 활주하는 것처럼, 귀를 비롯한 신체 신경을 편안하게 분산하면 두뇌가 더 기분 좋고 효율적으로 가동된다.



백우진 칼럼니스트 (smitten@korme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