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기자]
▲ ?경북 영양군 '남자현 기념관' 앞의 지사 동상
ⓒ 김명희
남자현 지사는 우리나라 여성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당시 한국인들은 지사를 "독립운동의 어머니", "여자 안중
메이저릴게임사이트 근"으로 우러러 불렀다. 중국인들도 "혁명의 어머니"라 했다. 일본인들은 "전율할 노파"라 했는데, 비하하려는 속뜻은 있지만 그래도 대단한 독립운동가라는 사실만은 숨기지 못한 표현으로 보인다.
작년 10월 27일 '남자현 지사 역사공원'이 지사의 생가 바로 옆에 개관했다. 주소는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 394번지로,
모바일릴게임 공원 형태로 조성되어 있으며 웅장한 기념관과 동상, 순국 기념비 등도 잘 마련되어 있다. 10여 년 전에 가본 뒤 다시 참배하지 못했고, 개관행사 때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기념관도 둘러볼 겸 지난 7일 벗들과 답사를 했다.
예전과 두드러지게 변한 것은 사당의 위치였다. 본래는 사당이 복원한 생가 바로
모바일바다이야기 오른쪽 뒤에 있었는데, 지금은 기념공원을 조성하면서 기념관 뒤에 신축되었다. 사당 건물이 오래된 문화유산인 것은 아니므로 그렇게 장소를 바꿔 새로 건립된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깔끔하게 잘 지어졌다는 점에서 오히려 상찬할 만하다고 느껴졌다.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 ?"조선독립원",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진다"
ⓒ 김명희
바다이야기게임 사당 안의 영정은 예전과 같았다. 엎드려 절을 올린 뒤 기념관 안을 둘러보았다. 들어가자마자 지사를 상징하는 "조선 독립원" 다섯 글자와 유언 "독립은 이루어진다"가 얼굴 초상과 함께 커다랗게 게시되어 있었다. 답사자들에게 보여줄 들머리 게시물로 아주 적합하게 여겨졌다.
전시로를 오른쪽으로 꺾으니 지사의 좌상이 눈에 들어온다. 지사가 앉은 의자의 절반 정도는 비어 있다. 찾아온 답사자에게 지사와 나란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기념관 측의 세심한 배려로 보였다. 일행에게 촬영을 부탁하며 의자에 잠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많은 게시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지사의 운명을 앞두고 그 옆에서 참담하게 앉아 있는 아들과 손자의 사진, "망부(죽은 남편)의 설원하고저(원수를 갚으려고) 무등 전권(관동군 사렴관 겸 만주국 일본 전권 대사 무등신의) 암살 미수 20년간 OO운동('독립운동'을 글자 숨겨서 표기)에 종사한 61세 노파 남자현" 신문기사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 ?남자현 지사가 관동군 사령관을 암살하려다가 붙잡혔다는 보도 기사
ⓒ 남자현역사공원
남자현 지사는 1872년 12월 7일 선비 가문에서 3남1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19세에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동 김영주와 결혼했지만, 남편은 1896년 영양 일대에서 활동하던 '김도현 의진'에 들어 왜군과 전투 중 전사했다.
혼자 유복자를 키우고 시부모를 봉양하던 지사는 1919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만세운동으로는 독립을 되찾지도 못하고 남편의 원수도 갚을 수 없다고 판단한 행동이었다. 이미 50세를 바라보는 나이였는데도 지사는 중국 요녕성 통화현을 찾아가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주도한 서로군정서에 가입했다.
1920년 청산리전투에 참전해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던 지사는 그 이후 북만주 일대에 12개의 교회를 세웠다. 또 여권 신장과 여성 자질 향상을 위한 여성계몽에 힘써 10여 개의 여자교육회도 설립했다.
청산리전투 참전, 안창호 등 독립지사 구출 활동
1927년 봄 길림에서 안창호 등 5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석주 의사 추도회 겸 민족장래에 대한 강연회가 열렸다. 일제의 압박을 받은 중국 헌병사령관은 안창호·김동삼 등 3백여 명을 체포했다. 이때 남 지사가 백방으로 석방 운동을 펼치면서 마침내 중국은 구속했던 우리 지사들을 석방하였고, 남 지사의 노력에 대한 민족운동 진영의 찬사가 쏟아졌다.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만주사변의 침략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얼빈에 파견되었다. 남 지사는 왼손 무명지 두 마디를 잘라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 혈서를 썼다. 지사는 혈서가 쓰인 흰 천과 두 손가락을 인력거꾼에게 주어 국제연맹조사단 앞으로 보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부터 남 지사에게는 '여자 안중근'이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 ?(왼쪽 사진) 남자현 여사의 임종을 지켜보는 아들과 손자 (오른쪽 사진) 경북 영양 남자현 기념관 앞 지사의 동상 중 무명지 두 마디가 없는 손 부분
ⓒ 김명희
1933년 초 동지들과 함께 만주국(일본이 만주에 세운 괴뢰국가) 건국기념일인 3월 1일 행사에 참석할 예정인 주만주국 일본전권대사 겸 관동군 사령관 무등신의(武藤信義)를 제거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거지로 변장한 채 권총 1정과 탄환, 폭탄 등을 몸에 숨기고 장춘으로 출발했던 지사는 2월 29일 일제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일제는 지사를 일본영사관 유치장에 감금해놓고 6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 지사는 1933년 8월 자결을 결심했다. 망명 독립운동에 14년 세월을 보낸 지사는 15일 동안 단식투쟁을 벌였다. 지사가 사경에 이르자 일제는 고문치사가 아닌 양 위장하기 위해 보석으로 지사를 석방했다.
지사는 8월 22일 임종을 맞았고, 유복자 아들에게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라는 유언과 함께 중국화폐 248원을 주며 "독립이 되면 이 돈을 독립축하금으로 희사하라"고 당부했다.
남자현 지사 기념관을 둘러보는 마음이 착잡했다.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두 시간가량 머문 토요일 오후에 우리 일행을 제외한 다른 답사자는 없었다. 많은 분들이 경북 영양을 찾아 남자현 지사 기념관도 둘러보고 기타 여러 재미있는 관광도 즐기시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