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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사라진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터에 새로 생긴 '매키탄 호텔'. 이곳은 스크린과 막의 경계가 사라진, 관객의 무대다. 배우를 따라다니며 보는 무용극 또는 1인칭 시점의 몰입형 연극, 대규모 방탈출 게임, 그 무엇이라고 느껴도 좋다. 자신만의 모험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경험하면 된다.
관객 몰입형 공연(이머시브 시어터)의 원조로 꼽히는 '슬립노모어'가 마침내 서울에 상륙했다. 객석에 앉아 제작진과 배우가 의도한 대로 받아들이던 공연과는 차원이 다르다. 객석 없이 3시간 내수산주
내 7층 규모 공연장을 누비며 서사를 개척해야 한다. 2003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선보인 뒤 미국 뉴욕, 중국 상하이에서 누적 265만명이 관람했다. 앞서 뉴욕에선 2011년부터 올해 1월까지, 상하이에선 2016년부터 지금까지 상연 중인 장기 흥행작이다.
내용의 뼈대는 셰익스피어 희곡 '맥베스'다. 세 마녀의 예언을 들은 후 권력에 눈주식달인
멀어 살인을 저지르는 맥베스와 그의 부인 레이디 맥베스 등의 이야기를 1930년대 누아르로 재해석했다. 특히 '서스펜스의 거장'으로 불리는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스타일을 녹여냈다. 으스스하고 좁은 복도, 의심쩍은 방들, 공포영화에서 봤음 직한 안개 낀 숲과 병동 등이 정말 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것처럼 생생하게 구현됐다. '더 이상 잠들지 말라'는 뜻의 양귀비 릴게임
제목은 미신에 대한 맹목적 믿음, 불안에 갇혀버린 맥베스의 상황을 나타내는 원작 속 명대사다. 관객들이 3시간 동안 경험할 극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도 은유한다.
1930년대 누아르풍으로 셰익스피어 희곡 '맥베스'를 재해석한 '슬립노모어 서울'. 미쓰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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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들어서면 먼저 관객은 어두컴컴한 복도로 내던져진다. 자기 오감에만 의지해 미로 같은 길을 통과해야 비로소 극에 들어갈 채비를 마친다. 공연 전후로 재즈풍 공연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맨덜리 바'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입장 때 받은 번호가 불리면 차례로 본격 극에 입장한다. 일부는 계단, 또 일부는 엘리베이터를 야마토2게임
타고 흩어진다. 관객마다 입장 시간도, 입장 후 보게 되는 장면도 제각각이다. 총 등장인물 23명이 100개가 넘는 방 곳곳에서 18개 이야기를 동시에 펼치고 있다. 1시간짜리 이야기가 세 차례 반복되는 형태다.
관객은 입장과 동시에 가면을 착용한다. 관객과 출연자를 구분하는 동시에 극 속에 더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다. 눈구멍만 뚫려 있는 플라스틱 가면 사이로 배우와 강렬한 눈빛을 주고받는 순간도 찾아온다. 배우들은 때로 관객에게 손을 내밀고 때로 말을 건다. 그의 손길을 따라 둘만의 방에 들어갈 수도, 함께 계단을 질주하거나 그의 눈물을 닦아줄 수도 있다. 가면 속 '나'를 잠시 잊은 채 1인칭 시점으로 극에 들어가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코앞에서 맞닥뜨리는 배우들의 에너지도 대단하다. '논버벌(대사 없음)' 형식으로 대부분 현대무용을 가미한 몸짓을 선보이는데, 관객이 모여 있는 쪽으로 과감히 몸을 던지거나 주변 소품을 활용해 날아다닐 듯 격렬한 춤사위를 펼치기도 한다.
관객에 따라선 극의 전개가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예컨대 어떤 배우가 무슨 역할인지도 모른 채 퍼즐을 맞춰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이고 관객의 몫이다. 지난 20일 매키탄 호텔에서 만난 영국 제작사 펀치드렁크의 창립자 겸 연출자 펠릭스 배럿은 "이머시브 시어터는 단순한 쇼가 아니라 하나의 세상을 만들고 그 중심에 관객을 뚝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정답이나 옳고 그름 없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고 말했다. "행운은 대담한 사람의 편(Fortune favors the bold)이라는 말이 있죠. 호기심을 가지고 더 많이 탐험한 관객만이 찾아낼 수 있는 장면이 있어요. 우리는 단 한 명의 관객만 찾더라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모든 요소를 만들었습니다."
'슬립노모어 서울'의 한 장면. 현대무용을 결합한 '논버벌(대사 없음)' 형식으로 보여준다. 미쓰잭슨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원하는 여정을 따라가기 어려울 때도 있다. 아무래도 주요 인물인 맥베스, 레이디 맥베스를 쫓아다녀야 핵심 장면을 볼 가능성이 크기에 이들을 따르는 관객 밀도가 높다. 발을 밟히거나 배우를 놓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한국 기획사 미쓰잭슨의 박주영 대표는 "뉴욕·상하이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보실 수 있도록 수용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며 "맥베스 외에도 흥미로운 캐릭터가 많기에 쏠림 현상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배럿 연출자 역시 "어떤 공간이나 장면이 너무 붐빈다면 좀 더 비어 있는 공간에서 나만의 뭔가를 찾을 기회"라며 "이 공연이 '맥베스'가 아닌 '슬립노모어'인 건 맥베스뿐 아니라 모든 배우가 중요하고 누구를 따라가더라도 대단한 여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서울 공연은 폐막일을 정해놓지 않은 채 21일 정식 개막했다. 앞선 3주간의 프리뷰 기간에도 모두 매진을 기록했고 공연 특성상 향후 재관람 관객도 많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 관객과 창작진이 새로운 경험과 자극을 통해 영감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관객 호응에 따라 롱런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서울 프로덕션은 슬립노모어 중 최대 규모로, 영화 상영관의 높은 층고 등을 살려 공간을 구성한 것도 특징이다. 초기 투자비만 약 250억원이 투입했고 이전 프로덕션에 없던 새로운 장면도 포함됐다. 일부 배우의 신체 노출이나 피범벅이 된 분장, 비명과 큰소리 음악 등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시청각 묘사도 다수 있다. 내부에서 휴대전화와 스마트워치 사용은 불가하고 가방 등 짐은 모두 맡긴 뒤 보안 검사를 받고 입장한다. 만 19세 이상 관람가, 관람료는 19만원부터.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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