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람ARMC가 구성한 필진이 교회력에 따라 본문을 선정하고, 묵상을 나누며, 기도 제목을 공유합니다. 연재는 해당 주일 이틀 전인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성서 본문과 질문, 기도문 등 예배문 전체 내용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산상 변모 주일 / 강단색: 흰색?
명절을 앞둔 주일, 교회력으로는 산상 변모 주일입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빛을 가슴에 품고, 다음 주부터 시작될 사순절을 맞을 준비를 하는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야마토게임방법 찬양
비추소서 / 천지에 있는 이름 중(찬 80)
본문
출 24:12-18, 시 2 또는 시 99, 벧후 1:16-21, 마 17:1-9
너희는 들어라
미국의 미술작가 로니 혼(Roni Horn, 1955~)의 '유리 연작'은 비밀스러운 작품입니다. 투명한 유리를
야마토통기계 주조해 커다란 액체 덩어리처럼 보이게 해 놓았는데, 비치는 빛과 관객의 위치에 따라 작품의 색과 형태가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관객은 유리로 조형된 작품을 볼 때마다 매혹적인 혼란에 잠깁니다. 그 작품이 고체인지 액체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로니 혼의 작품은 유리를 수수께끼 같은 대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당신은 이것이 무엇인지 정말 알고 있
손오공릴게임 나요?' 하고 묻는 듯합니다.
기독교 신앙도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느 정도나 알고 있을까요? '변화산 사건'(마 17:1-9)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그분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습니다(마 16:16). 예수님이 산 위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
야마토무료게임 하신 일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인지도 잘 알았을 겁니다. 모세가 불 붙은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을 처음 만난 곳도(출 3:1-5), 이후 이스라엘을 시내산으로 이끌어 십계명을 받은 곳도(출 19:1-20:17),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 하나님이 불을 내리신 곳도 산이었으니까요(왕상 18:20-40).
특히 복음서의 말씀은 여러
바다이야기다운로드 모로 출애굽기 24장을 연상시킵니다. 모세처럼 예수님도 제자 중 일부를 따로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들의 눈앞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는 놀라운 모습을 목격합니다(마 17:1-3). 어찌나 흥분이 되었던지 베드로는 곧장 예수께 말합니다. 초막 셋을 짓고,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수님을 그곳에 모시겠다고요(마 17:4). 이 대담한 제안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베드로의 앎과 열망을 잘 보여 줍니다. 그는 초막절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자신의 선생인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영원한 통치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 경이로운 역사적 사건의 주역으로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상황은 베드로가 알고 있던 지점에서 더 나아갑니다. 그가 아직 말하고 있을 때, 구름 가운데서 음성이 울려 퍼집니다. 그 음성은 말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 17:5) 마태복음은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몹시 두려워하였다고 기록합니다(마 17:6). 예수님은 그들을 진정시키시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그 광경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마 17:9)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신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나라에 관한 앎도,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앎조차도, 그분이 곧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란 사실을 알게 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는 화를 냈고, 다른 제자들처럼 근심하며 슬퍼했을 따름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산 위의 황홀경이 아니라 산 아래의 현실이, 십자가 위의 죽음이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장소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히브리 백성의 풍부한 지식과 오래된 전통이 그 비밀을 완전히 놓쳤고, 되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역설까지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은 수수께끼를 다 푼 것일까요? 베드로후서는 부활을 아는 이들조차 언제든 진리를 놓치고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벧후 1:20). 그래서 우리는 늘 성령에 이끌려 오늘을 향해 다가오는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 비치는 등불을 대하듯 말이죠(벧후 1:19, 21).
아무리 많이 알아도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앎이 중요한 뭔가를 놓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최근 청어람의 페미니즘 이슈 북클럽에서는 클레어 데더러의 책 <괴물들>(을유문화사)을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우리가 사랑했지만 괴물로 드러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관한 고민과 딜레마를 담은 책입니다. 이 책에는 유명 영화 감독이자 각종 성범죄 의혹으로 심각한 도덕적·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우디 앨런과 그의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저자는 "현대 도덕의 날카로운 관찰자이자 중기 작품에서는 거의 플로베르라 불릴 만큼의 심리 분석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 이 문제에서만큼은 갑자기 바보 멍청이가 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런 일은 오늘도 전 세계에서, 많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묻기 전에, 우리의 앎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이 질문과 예수님의 죽음을 겹쳐 둔 채로 그분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겸손히 물으며, 들어야 합니다.
이풍관?/ 청어람AR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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