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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기의 클래식 비망록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조지 거슈윈. 현대음악계에서 대중성과 예술성 면에서 모두 성공한 음악가이자 재즈, 클래식 등을 아우른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사진 사회평론]
릴짱릴게임 음악은 물리적으로는 공기의 진동이어서 이를 가지고 사고파는 일은 어렵기 짝이 없다. 음악이 상품으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16세기 기보법과 인쇄술의 발달로 탄생한 악보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악보의 소비자가 소수의 직업 음악가와 아마추어 음악가뿐인지라 음악 산업은 오랫동안 수공업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생산과 소비에 바탕을 둔 본격적
모바일야마토 인 음악 산업의 시작은 19세기 후반 뉴욕의 음악 출판사들이 낱장 형태의 대중적인 악보를 대량으로 찍어 내면서부터이다.
출판사들은 회고적이고 내밀한 사랑 이야기를 감미로운 선율에 실어서 32마디 AABA 형식에 담았다. 사랑 노래는 뻔하고 통속적이었지만 이해하기 쉬워 거부감이 없었고, 산업화와 도시화로 고독해진 대중은
바다신2게임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면한 28번가에 밀집해 있던 이 출판사들이 간행한 악보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서 1910년까지 판매량이 20억 장이 넘었을 정도다. 이곳은 늘 부산했고 요란한 음악이 멈추지 않아서, 깡통과 팬 두드리는 소리가 넘치는 골목이라는 의미의 틴 팬 앨리(Tin Pan Alley)로 불렸다.
엄청난 호
릴게임신천지 황 속에 틴 팬 앨리는 단순한 인쇄업을 넘어서 대중의 취향을 형성하고 통제하는 음악 산업으로 거듭났고, 역사상 처음으로 엄청난 돈을 버는 작곡가들이 탄생했다. 히트곡 제조기라고 불렸던 제롬 컨, 어빙 벌린, 리처드 로저스, 콜 포터, 조지 거슈윈 같은 작곡가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작곡한 ‘Smoke Gets in Your Eyes’ ‘Summertime’
바다이야기프로그램다운로드 ‘White Christmas’ ‘My Funny Valentine’ 등의 노래는 ‘스탠다드 팝’으로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다. 이들 중에서 클래식 청중마저 아우르는 인기를 얻었던 것은 단연 거슈윈이었다.
‘파리의 아메리카인’엔 택시 경적까지 넣어
1928년 모리스 라벨(가운데)의 생일파티에 참석한 조지 거슈윈(오른쪽). 자신의 예술 영역을 넓히려 노력했던 거슈윈은 라벨 같은 클래식 대가들에게 직접 배움을 청했다. [사진 사회평론]
거슈인은 한 번도 정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디시어를 쓰는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인 아슈케나지였던 거슈인의 어린 시절은 뉴욕 빈민가의 여느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고 동네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데 진심이었으니까. 그래도 이재에 밝고 부지런했던 부모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서 아이들을 위해 피아노를 사주었고, 피아노에 특별한 관심과 재능을 보였던 그는 2년간 동네 선생님들에게 레슨을 받은 후 놀라운 실력자가 되었다. 실용적인 유대인의 피 때문일까. 15살의 거슈윈은 다니던 상고를 중퇴하고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아닌 음악 출판사 전속 피아니스트의 길을 택했다.
거슈윈은 주급 15달러를 받으며 출판사에서 낸 신곡을 구매자들에게 데모 연주를 해주는 송 플러거(song-plugger)로 일을 시작했다. 음반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 악보 판매를 위해서 송 플러거의 연주 솜씨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 그는 보드빌 무대에서 라이브 연주를 하는 한편 자동 피아노의 롤을 제작해서 10대부터 이미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21살에 작곡한 ‘Swanee’ 덕분이다. 민스트럴 쇼 가수이자 브로드웨이 최고 스타 알 졸슨이 자신의 쇼마다 이 곡을 메인 레퍼토리로 부르는 바람에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됐다.
틴 팬 앨리를 평정한 거슈윈은 브로드웨이로 진출해서 뮤지컬에서도 놀라운 재능을 선보이며 만드는 작품마다 히트시켰고, 25살이 되던 1924년에 재즈의 왕이라고 불리던 화이트 먼이 위촉한 ‘랩소디 인 블루’로 대중의 열광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곡이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재즈가 젊은 세대의 쾌락적 자유분방함과 허무주의를 대변하는 퇴폐적이고 위험한 오락 정도로 치부되던 시절에, 끈적끈적한 듯 감미로운 선율의 전형적인 재즈를 클래식 피아노 협주곡이란 그릇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재즈와 관현악이라는, 서로 완전히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졌던 영역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뉴욕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 담로쉬는 이에 대해 “거슈윈은 재즈를 귀부인으로 만들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재즈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이 곡 이후 라벨과 코플랜드 등이 재즈 스타일의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는 등 클래식 음악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랩소디 인 블루’는 음반만 100만 장 이상이 팔렸고 저작권료로 25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거슈윈은 그 돈으로 뉴욕 어퍼 웨스트사이드 고급 주택가의 타운하우스를 가족에게 사주었고, 자신은 리버사이드 드라이브에 있는 펜트하우스에 정착했다. 20대에 이미 음악계의 저명인사가 된 거슈윈은 세련된 매너와 능숙한 연주 솜씨 덕분에 공연계와 사교계의 총아가 되었고, 아마추어 미술가로서도 고상한 취미를 뽐내며 뉴욕에서 가장 매력적인 독신남으로 꼽혔다.
세상에는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어도 여전히 성취에 목마른 사람이 있는 법이다. 성공을 즐기며 안주했을 법한데도 거슈윈은 이듬해에 곧바로 ‘피아노 협주곡 F장조’를 작곡하는 등 클래식 음악의 대규모 형식을 탐구하는 데 몰두했다. 높은 명성에도 그가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랩소디 인 블루’를 작곡해놓고도 관현악 편곡은 화이트먼 밴드의 편곡자인 퍼디 그로페에게 맡겨야 할 정도로 자신의 오케스트레이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라벨과 나디아 블랑제 같은 클래식 대가들에게 직접 배움을 청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비록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으나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라벨과 블랑제 외에도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프로코피예프, 플랑크, 알반 베르크 같은 유명 음악가들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재능 있는 사람이 쉬지 않고 노력하니 성취가 빠를 수밖에. 관현악 기술과 경험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거슈윈의 노력은 일찌감치 결실을 거둬, 1928년 재즈와 관현악의 완벽한 하이브리드 ‘파리의 아메리카인’을 능숙한 오케스트레이션 실력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그는 파리를 방문해서 느꼈던 감상과 분위기를 다양한 오케스트라 악기들로 생동감 있게 풀어냈을 뿐 아니라 파리에서 직접 구입한 택시 경적까지 음악에 첨가하는 참신함을 발휘했다. 친밀감을 주는 대중적인 선율을 클래식의 화성, 형식, 음색과 연결한 놀라운 쾌거다.
팝에서 시작해 재즈로, 그리고 클래식으로 영역을 넓혀가며 자신감을 얻은 거슈윈은 1934년 그의 인생 최대 역작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를 내놓았다. 미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부두를 배경으로 노동자, 걸인, 건달, 어부 같은 흑인 하층민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 이 작품은 완벽하게 클래식 오페라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유명한 아리아 ‘섬머타임’이 보여주듯이 재즈, 블루스, 흑인영가 같은 미국 토종 음악을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덕분에 최초의 순수한 미국 오페라이자 가장 위대한 미국 오페라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 번도 유럽의 영향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미국 음악이 독자적인 정체성을 얻은 순간이었다.
20대 때 대성공, 가장 매력적인 독신남 꼽혀
파리의 분위기를 다양한 오케스트라 악기들로 생동감 있게 풀어낸 ‘파리의 아메리카인’ 초반본. [중앙포토]
그때가 절정이었다. 이즈음부터 거슈윈은 극심한 두통과 고무 타는 냄새가 나는 듯한 환각 증상에 시달리기 시작하다가 1937년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급히 수술에 들어간 의사들은 그제야 비로소 그가 전부터 뇌종양을 앓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모세포종으로 추정되는 큰 종양을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깨어나지 못했고 결국 38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자신의 예술 영역을 끊임없이 넓히려고 했던 노력형 천재. 음악사 최초로 대중음악과 클래식 모두에서 사랑받았던 예술가. 거슈윈은 그렇게 사라졌고 이후 그와 같은 작곡가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하나를 잘하기도 힘든데 둘 다 잘하려면 보통 재능으로는 어려운데, 재능뿐 아니라 마음도 겸허해야 하니 더욱 그렇다. 성공했음에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새로운 걸 배우려는 사람은 정말 희소하니까.
거슈윈은 성공 비결을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늘 수줍고 겸손하게 대답을 피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었던 동료 케이 스위프트에게는 “나는 내 귀로만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귀로도 동시에 듣는다”라고 털어놨다고 한다. 동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열망에 늘 예민하게 귀 기울였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예술가는 모두 이런 이유로 성공하는 것 아닐까.
민은기 서울대 음악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음악이론을 전공하고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95년부터 서울대 음악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음악과 페미니즘’‘독재자와 음악’‘대중음악의 역사’ 등을 주제로 여러 권의 저서를 출판했으며 최근에는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시리즈를 집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