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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2-20 00:57
31살에 사형된 언론사 사장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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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살에 사형된 언론사 사장의 진실
http://news.v.daum.net/v/20210619130148733


5.16 쿠데타 직후 1961년 12월 21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31살 언론인의 사형이 집행됐다.

그의 이름은 조용수, <민족일보> 의 사장을 지낸 이였다. 그의 판결이 법리적, 사실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재심 결정이 있기까지 47년이 걸렸다.

창간 한 달도 되지 않아 <민족일보>는 매일 4만 여부를 발행하는 신문이 됐다. 주요 신문이었던 <동아일보>, <조선일보>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빠른 성장이었다. 가판 판매 부수는 1위였다. <민족일보>의 대표적 성과는 장면 내각이 추진하던 반공특별법과 데모규제법 등 2대 악법 반대 투쟁에 앞장선 것이었다. <민족일보>는 두 법에 대한 반대 논설과 기사를 적극적으로 실었고 결국 법 제정은 좌절됐다.

세를 확장하던 <민족일보>는 창간 3개월만에 갑작스레 폐간됐다. 쿠데타 세력이 설치한 국가재건최고회의(부의장 박정희)의 통고에 따른 것이었다.

조용수는 <민족일보> 직원들과 함께 연행됐다. 혁명재판소 1심 재판부는 조용수와 안신규 상임간사, 송지영 논설위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1심 재판부에는 26살 이회창 씨도 배석해 있었다. 이 씨는 후일 이에 대해 "막 판사 생활을 시작한 신참이었고 혁명재판부로 차출됐는데 선배들이 그 사건에 참가하지 않으려 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혁명재판소의 판결 이후 국제언론인협회, 세계신문인협회 등에서 조용수 등에 대한 구명운동이 일었다. <워싱턴포스트>가 비판 사설을 싣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안 씨와 송 씨의 형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하지만 조용수는 1961년 12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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