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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대목동병원의 ‘수술방 청소 여사’ 정경숙씨는 인간이 회복될 자리를 마련하는 일을 한다. 남궁인 작가 제공


급박·긴장·일사불란한 수술실 풍경수술중 오염물질은 재빨리 바닥에 버려
역겨움에 ‘으악’ 소리 나지만 최대한 신속히인간이 회복될 자리를 마련하는 사명감
나는 병원에서 의사로 일한다. 내가 소속된 병원은 한주에 300건이 넘는 수술을 소화한다. 평일 하루 50건 꼴이다. 수술은 정규 수술과 응급 수술로 나뉜다. 정규 수술은 만반의 장비와 인력을 갖추고 정해진 스케줄에 맞추어 진행하는 수술이다. 응급 수술은 스물네시간 언제든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수술이다. 우리는 열네개 수술방에서 이 모든 수술을 소화한다.
수술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의료 행위이다. 손(手)을 써서 하는 기술(術) 중에서 가장 숭고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수술은 숙련된 의료진이 다수 필요한 노동 집약의 결정체다. 수술의 책임 자인 집도의와 1조수, 2조수뿐만 아니라 마취과 의사와 간호사, 수술 도구를 준비하는 수술방 간호사 등의 의료진이 필요하다. 이들을 돕는 보조인력 또한 필수적이다.
환자가 수술대 위에 오른 이유는 외과적 처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피부로 막혀 있고, 평소 우리는 그 안쪽을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의사는 수술방에서 메스 로 피부를 절개해서 장기와 혈액뿐 아니라 림프액, 고름, 양수, 대소변 등을 만진다. 또 의료진은 수술대 위에서 발생한 오염 물질을 가차 없이 바닥에 버리도록 훈련받는다. 그대로 남아 있을수록 감염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더 빠르고 신속하게 바닥에 버릴수록 환자를 위한 올바른 행위가 된다. 그래서 수술을 마치면 수술방은 흡사 전쟁을 치르고 난 것 같은 각종 도구와 오물의 잔해가 남는다.



서울 이대목동병원에서 수술을 마친 의료진의 수술복이 폐기되기 위해 쓰레기통에 담겼다. 남궁인 작가 제공


언제나 정규 수술은 밀려 있고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다. 수술방의 공기는 급박하고 철저하고 일사불란하다. 모자를 쓴 환자들은 조용히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지정된 수술방으로 굴러간다. 열네개의 수술방은 하루 몇 번이고 비워졌다가 다시 새 환자를 받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수술방을 매번 깔끔하게 치워야 한다. 환자들이 내놓은 오물을 순식간에 치워내는 업무다. 병원에 근무하며 오래도록 생각해왔다. 본디 청소란 존경받을 행위지만, 수술방을 치우는 일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청소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분들을 ‘수술방 청소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아침 첫 수술은 여덟시에 시작된다. 이 수술실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도 청소 여사님이다. 새벽 여섯시에 수술방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는 정경숙(65) 여사님을 만났다.
“매일 새벽 네시에 일어나요. 네시 사십오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한번 환승해서 다섯시 반쯤 도착해요. 일단 사무실에 들러서 출근 사인을 하고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해요. 갱의실과 화장실을 청소하고 수술방 엘리베이터 앞도 닦고요. 일곱시부터 아침을 먹으면 본격적으로 수술이 시작되죠. 오후조가 세시에 출근하면 교대해요. 2014년부터 일했으니까 벌써 십이년이 되었네요.”
그는 변기 안에 손을 넣어 닦으며 말했다. 화장실이 윤기가 났다. 오늘 그가 치울 것에 비하면 화장실 청소는 준비운동에 불과할 것이다.
“청소 일은 이게 처음이에요.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부업만 했어요. 이어폰 조립, 미용 재료 포장, 지퍼 끼우기 같은 거였어요. 그런데 마침 아는 사람이 수술방 청소 자리가 비었다고 했어요. 자격 조건도 입사 테스트도 전혀 없더군요. 감독님이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깨끗하게 해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쉬운 일은 아니죠. 처음에는 피비린내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냄새가 아주 역했어요. 적응이 되어도 아직 역해요.”
그는 엘리베이터 앞을 밀대로 밀며 말했다. 중환자실의 가족을 지키는 보호자 한두명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화장기 없는 의료진이 새벽 공기를 뚫고 하나둘 출근하고 있었다.
“그래도 취직해서 월급 받으면서 일하니까 좋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매달 월급도 들어오고요. 외주 회사지만 아주 잘해주세요. 노조가 생긴 다음부터 연차도 열다섯개가 나와요. 안 쓰면 돈으로 돌려주기도 해요. 명절 보너스도 있고요. 정년은 70살인데, 조금 더 일할 수 있으면 일해도 돼요. 여기 병원 청소를 관리하는 소장님이 계시는데 수술방은 아무래도 들어오기 곤란하니까 잘 안 들어오세요. 수술방 청소의 좋은 점이라고 할까요. 또 오후 세시 퇴근이니까 손주랑 놀이방도 가줄 수 있고요.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서울 이대목동병원의 ‘수술방 청소 여사’ 정경숙씨가 수술방 입구 복도를 깨끗이 닦아내고 있다. 남궁인 작가 제공


그의 메신저에도 세살 손주와 같이 있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가 맡은 구역의 청소를 마치고 우리는 같이 아침 일곱시에 지하 병원 식당으로 향했다. 모두가 하루 일과를 위해서 아침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병원 밥은, 솔직히 부실해요. 집에서 먹는 밥이랑은 다르죠. 점심은 수술방에 마련된 식당에서 먹어요. 어떤 사람은 수술방에 교수님도 계시니까 수술방 점심만 맛있게 나오는 거 아니냐고 그러던데, 아유, 여기랑 똑같아요. 교수님들은 어떻게 이처럼 부실하게 먹고 일하시는지.”
나는 이 주제로 병원 내 어떤 직종과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는 동료의 존재가 반가웠다. 숟가락으로 아침 죽을 뜨며 주 업무에 대해 물었다.
“일단 수술방에 들어가자마자 쓰레기를 걷어요. 바닥에 있는 건 분리수거고 뭐고 몽땅 버려야 해요. 그리고 폐기물 박스로 포장해요. 가끔 수술 도구가 섞여 들어가면 박스를 다시 열기도 해요. 다음엔 바닥을 말끔하게 미는 거예요. 빨리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시간이 촉박하거든요. 전화기로 호출이 울리면 달려가서 방을 치워야 해요. 수술대 위는 선생님들 영역이라 건들지 않아요. 저희는 정말 바닥만 치워요. 벽에 핏방울이 있다면 닦아내는 정도예요. 수술이 끝난 방은 정말 어질러져 있어요. 어떤 방은 ‘으악’ 소리가 절로 나요. 또 냄새가 어찌나 심한지, ‘웩’ 하고 구역질이 날 때가 있어요.”
한마디 의성어로 표현했지만, 공포 영화나 게임 안에서 재현해놓은 기괴한 장면의 현실판일 것이다. 각종 장기의 부산물과 의료 도구가 제멋대로 널려 있는 광경은 본능적인 끔찍함을 불러일으킨다. 그 광경을 오분 이내에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방마다 어질러진 게 달라요. 오래 일하다 보니 무슨 과 수술인지 다 알 수 있어요. 변이 널려 있으면 대장 수술을 한 거예요. 그게 냄새가 독해요. 산부인과도 말도 못해. 선지 덩어리가 막 굴러다녀요. 그리고 정형외과는 뼛가루가 날리고 피바다 물바다고요. 흉부외과에서 심장 수술 하면 알 수 없는 도구가 널려 있는데, 쓰레기가 엄청나게 많이 나와요. 안과, 이비인후과는 생각보다 깔끔하고요. 그래도 바삐 치워야 하는 건 마찬가지죠. 어떨 때는 숨이 헉헉 소리 나게 가쁠 때가 있어요. 집에 가면 발바닥이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하루 평균 만오천보는 항상 넘겨요. 집에 가서 장딴지를 막 두들기기도 해요. 쓰레기 박스도 무거운데, 석션통도 무거워요. 선지랑 기름 덩어리 같은 게 나와요. 말라붙어가지고 담갔다가 씻으려면 솔로 닦아야 하는데 잘 안 닦여요. 그러면 힘들고 어깨도 너무 아파요.”
수술을 마친 수술방은 그야말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피범벅이다. 또 모든 수술방은 석션을 사용한다. 환자의 몸에서 나온 온갖 오물을 식염수에 섞어 석션통 안에 넣는 것이다. 한번 빨려 들어가면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액체지만, 그것을 깨끗이 닦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도 여사님의 업무다. 병원의 동료로서 가장 궂은일을 맡고 계신 셈이다.
“전에는 의사, 간호사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을 하고 보니까 너무 힘들어 보여요. 몇 시간 동안 계속 같은 자세로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있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좀 안쓰러워요. 이 냄새도 마찬가지예요. 저희는 잠깐씩만 방에 들어가서 치우면 되는데, 선생님들은 몇 시간 동안 그 안에 있잖아요. 이걸 눈으로 보면서 손으로 만지고 해야 하니까 힘드실 거예요.”



서울 이대목동병원 수술장 내 갱의실 안내문. 남궁인 작가 제공


여사님은 집도의처럼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나는 반대로 머리를 숙이고 수술방을 치우는 일의 힘듦을 생각해왔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였다. 수술방으로 올라가며 여사님은 뜻밖에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제가 사실, 많이 아팠어요. 이십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서 이 병원에 실려 왔었어요. 한 보름 정도가 기억이 없어요. 교수님이 우리 아들한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까지 했다던데. 어찌어찌 잘 살아서 퇴원했어요. 그런데 또 머리가 아파서 갔더니 뇌수가 순환이 안 된다고 해서 머리에다 호스를 넣었어요. 그러니까 괜찮더라고요. 지금은 후유증 없이 이렇게 보시다시피 건강해요. 제가 누웠던 수술방에서 이렇게 일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다들 이 병원과 인연이 깊다고 해요.”
나는 인연에 대해 생각하며 청소 대기실로 들어왔다. 여기는 오로지 청소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다. 벽에 수많은 대걸레가 걸려 있고 세면대에 희석된 락스가 찰랑거렸다. 인간의 온갖 부산물을 처리하기 위해 집약된 공간에서 십년 넘게 일하고 계신 것이었다. 여사님은 다른 것보다도 혈액이 가장 안 닦인다고, 또 산부인과 교수님이 새로 오셔서 양수를 치울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너무 많아요. 수술을 해도 해도 끝없이 환자들이 와요. 수술을 마치면 선생님들이 ‘환자분 일어나세요’라고 외치거든요. 그런데 잘 안 깨면 저도 같이 걱정해요. 빨리 깨서 건강하게 집에 가셔야 하는데, 하면서요. 가끔 선생님들이 급박하게 뛰어가면 겁이 나고 무서워요. 엊그제 환자분 배를 열었다가 수술 못 하고 닫아버렸던가 봐요. 수술 중에 교수님이 나와서 설명하고 보호자분들 우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저도 의식 없이 여기 실려 왔을 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니까 아들이 그렇게 가슴이 철렁했대요. 제 아들도 저런 기분이었겠지요. 안 아파야겠다 생각이 들어요. 건강이 최고예요.”



환자 수술이 끝난 뒤 석션통(큰 통)에 담긴 피와 기타 오물, 작은 통에 담긴 고름 등은 개수대에 버리고 깨끗이 세척한다. 남궁인 작가 제공


대기실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여사님들은 뛰어가서 방을 치우고 빨간 혈액에 기름이 둥둥 뜬 석션통을 들고 와 개수대에 부었다. 이곳은 수술방만큼이나 분주했다. 짬이 날 때마다 폐기물 박스를 접으며 여사님이 말씀하셨다.
“일을 오래하는 비결은 직접 하는 거예요. 성격상 누구한테 일을 시키면 내 몸이 답답하거든요. 이건 저 사람 일이지 하면서 미루면 안 돼요. 그런데 수술방에는 핏자국이 없을 수가 없어요. 모든 사람이 전부 피를 흘리니까요. 거즈도 계속 쓰지요. 수술방에는 피와 거즈가 널려 있는 게 정상이에요. 하지만 다음 환자가 수술하러 들어갈 때는 하나도 남아 있으면 안 돼요. 핏방울 하나라도 안 돼요. 그래서 자꾸 자리를 돌아봐야 해요. 얼룩이 있으면 찾아내야 하니까요. 반면 나쁜 냄새가 났어도 기억을 안 해야 해요. 잊어버려야 다음 수술방에 들어갈 수 있어요.”
여사님은 일을 미루지 않고 늘 지나간 자리를 돌아봐야 하지만, 잊어버려야 하는 것은 잊어야 한다고 했다. 역한 냄새를 표현할 때를 제외하고는 여사님은 모든 게 긍정적이었다. 다들 수고했다고 인사할 때, 잘 도와달라고 말을 들을 때가 좋다고 했다. 저걸 어떻게 치울까 하면서도 오분 안에 새것처럼 만들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사람 손이란 건 정말 대단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권유하기는 어려운 직업이지만 평생 이 일을 하겠다고도 했다. 그가 하는 일은 인간이 회복될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생을 얻은 사람들이 다시 그 자리를 치우고, 타인의 생명을 연이어 건져낼 것이다.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은 이곳에서 순환한다. 그 시작이 있다면 바로 여사님의 손끝인 것이다.



남궁인 작가


작가 남궁인

남궁인 l ‘월급사실주의’ 동인. 산문집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 ‘제법 안온한 날들’ 등을 냈고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에 참여했다. 현재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이대목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