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중인 ‘마음산책’ 연작 앞에서 포즈를 취한 강운 작가.
대중에게 그는 흔히 ‘구름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름에 구름 운(雲) 자가 들어가고, 1990년대 후반부터 하늘과 구름을 집중적으로 그려온 시간도 길다. 다만 강운이 말하는 구름은 ‘형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는 구름을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흐르고 쌓였다 사라지는 변화의 과정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 성질은 화면 위의 모티프를 넘어 작업을 대하는 태도 전반에 남아 있다.
올해 병오년 말띠해 환갑을 맞은 강운 작가는 흔히 떠올
릴게임뜻 리는 ‘말’의 속도나 기세보다는 자신의 리듬을 먼저 떠올린다. 젊은 시절에는 작업이 체력의 문제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사고와 감각이 더 또렷해졌다고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곧 창작의 쇠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체감이다.
“예술은 늙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창작에 대한 의지가 더 커졌어요.”
그가 말하는 ‘변화’
바다이야기게임장 는 작업을 대하는 기준이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이야기다. 무엇을 더 보여줄 것인가보다, 어떻게 오래 작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앞선다.
작업을 대하는 기준 역시 이전보다 분명해졌다고 했다. 이런 태도는 그의 작업 궤적 전반을 관통해 왔다.
구름을 하나의 상징으로 삼되, 그 형태를 고정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시
바다이야기오락실 간과 공간, 빛의 상황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는 구름의 성질을 회화 안으로 끌어들이며, 그는 줄곧 형상이 만들어지는 조건 자체에 주목해 왔다. 구름은 화면 위 재현되는 대상이 아니라, 시간이 축적되며 형성되는 상태로 남는다.
최근에는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수묵 특별전 ‘뉴욕 뉴 잉크(New York New Ink)’에 참여해 현지에서 작업
모바일릴게임 을 선보였다. 전시를 계기로 뉴욕 곳곳의 미술관과 전시 공간도 두루 살폈다.
그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과 같은 공간을 돌아보는데, 외국 사람들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오는 일을 여러 번 겪었다”며 “문화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걸 몸소 느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체감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지역에 대한
릴게임가입머니 이야기로 이어졌다. 광주비엔날레라는 국제적 플랫폼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라는 거점이 있다는 점에서 광주는 이미 미술 중심 도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인식이다. 다만 그는 앞으로의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관객 동원 같은 지표에 매달리기보다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대중의 비유에 맞추는 게 아니라, 대중이 새로운 미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심도 있는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운의 작업은 오랫동안 ‘구름’이라는 모티프와 함께했지만, 그 내부의 관심사는 한 방향에 머물지 않는다.
초기 작업에서 반복해 다뤄온 핵심어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빛이었다.
“광주비엔날레 때 데뷔한 작업이 ‘밤에서 새 아침이 오기까지’를 그린 ‘순수형태-여명’ 연작이었는데, 그때도 시간과 공간, 빛을 가지고 작업했어요. 구름은 그려지는 게 아니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존재처럼 느껴졌죠.”
이후 ‘공기와 꿈’ 연작에서는 형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화면 안에 구성하기 시작했다. 염색한 한지를 바탕으로, 얇은 종이를 겹겹이 붙이는 방식이다. 누적된 부분은 구름처럼 떠오르고, 얇게 남은 곳에는 바람의 흔적과 배경이 드러난다.
‘공기와 꿈’, 112.1x162.2㎝, 캔버스에 염색한지, 한지(2019)
이러한 감각은 또 다른 대표 연작 ‘마음산책’으로 이어진다. 나이를 먹으며 기억과 감정이 점차 추상화되는 과정을 체감했고, 고통스럽고 아팠던 감정 역시 시간이 지나며 유연해지고 객관화된다는 경험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그는 마음을 하나의 색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느껴 캔버스를 90도씩 돌려가며 여러 층을 입히는 레이어링 방식을 택했다.
“마음속 깊이 말 못 하는 걸 글로 쓰고 색으로 덮어요. 반응과 객관화의 단계를 거쳐 다시 색을 입히는 거죠. 감정의 시간이 겹겹이 쌓이면서 마음의 색이 태어난다고 생각해요.”
그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은 개인의 취향이나 감정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강운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만큼, 한국 미술계를 둘러싼 평가 방식 역시 여러 차례 바뀌어 왔다고 본다. 36년 동안 풀타임으로 작업을 이어오며, 그는 작가를 판단하는 기준 또한 시대마다 달라졌다는 점을 체감해 왔다.
국전을 중심으로 한 공모 체계에서 미술관 제도, 비엔날레라는 국제 무대, 아트페어와 시장 중심의 구조, 나아가 작가 개인을 둘러싼 팬덤까지. 그는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작가를 판단하는 잣대가 무엇이었는지 되짚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주목받았는가’보다 ‘어떤 작업을 남겼는가’라는 질문을 더 중요하게 놓게 됐다고 말한다.
“출세한 작가는 돈을 기준으로 하지만, 성공한 작가는 좋은 작품을 미학적으로 남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평생 작업할 수 있었던 사람이 성공한 작가죠.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이제야 알겠어요.”
이런 생각은 그의 이력과도 맞닿아 있다. 1990년대 후반, 국내 초기 레지던시로 꼽히는 쌈지스페이스에 참여해 동시대 미술의 현장을 가까이서 경험했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리듬을 잃을 것 같다는 판단 끝에 다시 시골로 내려가 작업을 택했다.
“블루칩 작가도 해봤지만 5년 이상 버티기 어렵더라고요. 저는 마라톤을 뛰겠다고 생각했어요. 돈이나 명성보다는,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했거든요.”
광주매일신문에 ‘강운의 캔버스 산책’을 꾸준히 연재해 온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작업을 성찰하는 과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생각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봐요. ‘캔버스 산책’은 나 자신을 알기 위한 글이기도 하고, 소통의 방식이기도 해요.”
글을 쓰고 사유하는 작업을 중요하게 여겨온 그는, 생성형 AI가 일상화된 환경에서도 질문의 중요성을 먼저 꺼낸다.
“생성형 AI가 보편화될수록 더 중요해지는 건 ‘너 자신을 알라’는 질문이에요.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그 사람을 드러내죠. 작가는 먼저 자기 사고와 자기 생각에서 나오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색’은 자기 시각이 집중되는 지점이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색으로 변환하는 발상, 이름의 구조에서 표준색을 만드는 상상, 관객 참여를 위한 키오스크 아이디어 등도 같은 흐름에서 나온다. 그는 이를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한글의 구조를 색으로 사유하는 시도로 설명한다.
이런 탐색은 올해 사비나미술관 전관 개인전으로 구체화될 예정이다. ‘색으로 태어나다’를 주제로, ‘마음산책’을 한층 심화한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 이후의 작업 방향은 작업을 이어가며 차차 구체화될 예정이다.
후배들에게 그는 “자기 자신을 믿는 작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아무도 하지 않은 선택을 할 때, 끝까지 버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자기 확신이라는 이유에서다. 작업의 성과를 시장의 반응이나 팬덤의 속도로 판단하기보다는, 자기 인식 위에서 성찰하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스스로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하다.
“아무도 하지 않은 걸 할 때는 자신을 믿어야 해요. 자신을 믿으라는 게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어요. 절대 기죽을 필요도 없고요.” 이 말은 후배들에게 건네는 조언임과 동시에 그가 오랫동안 작업을 지속해 온 방식이기도 하다.
인터뷰 말미, 새해를 맞아 지금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젊었을 때는 몸으로 치열하게 작업했다면, 지금은 내 자신을 알아가면서 꿈을 펼치는 것 같아요. 그동안 흩어져 있던 퍼즐들이 조금씩 맞춰지면서, 더 깊이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느낌이 들어요.”
구름은 늘 같은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다. 20년 넘게 구름을 그려온 지금도 그는 ‘구름 작가’라는 이름에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
병오년 말띠해 환갑을 맞은 지금, 그 역시 서두르지 않는다. 흐르고 쌓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시간 속에서 그는 그 과정을 회화와 글, 색으로 옮기며 다음 변주를 준비하고 있다.
/글·사진=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