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5억명 넘는 사람이 찾는 유튜브엔 매일 수많은 채널이 만들어집니다.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서울 성동구 서울나솔마취통증의학과의원에서 만난 의사 겸 유튜버 정유진 원장. 유튜브 채널 ‘닥터나솔’ 운
야마토게임방법 영자인 그는 “유튜브 영상이 끝나도 마음에 남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한형 기자
유튜브 채널 ‘닥터나솔’ 화면 속 그의 모습은 당당하다. ‘혼자 20여명의 직원을 책임지는 40대 여자 의사의 하루’ ‘백화점 VIP가 명품을 사지 않는 이유’ ‘명품 가방들을 쿨하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게 버리는 40대 여자 의사’…. 하나같이 성공한 여성의 화려한 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영상들이다. 이들 콘텐츠의 주인공은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에 살면서 성동구에서 마취통증의원을 운영하는 정유진(47)씨.
많은 이가 선망하거나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튜브 채널 영상
바다이야기5만 목록을 더 살피면 정씨의 굴곡진 인생사를 확인하게 된다. ‘자궁적출, 소변줄 그리고… 나의 여성성을 잃어버린 날’ 영상에서 그는 화려한 의사가 아닌 연약한 환자일 뿐이다. ‘싱글 아줌마 40대 후반부의 인생’ 영상에서도 정씨는 ‘성공한 여의사’라는 수식어를 떼어낸 뒤 홀로 나이 들어가는 중년 여성으로서 느끼는 감정과 고민을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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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게임바다신2 난달 26일 서울 성동구 병원에서 만난 정씨는 “사람들이 보는 나의 화려한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라며 운을 뗐다. 그에게 유튜브는 성공을 뽐내는 전시장이 아니었다. 의사라는 권위 뒤에 숨은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는 ‘거울’이자 ‘일기장’이었다.
환자가 된 뒤에야 배운 ‘공감’
온라인야마토게임 정씨가 처음부터 이런 마음으로 유튜버가 된 건 아니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일상을 기록하다 뜻밖의 순간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순간을 만났다고 한다. 인기를 끈 자신의 브이로그 영상을 보던 중, 화면 속에서 새벽에 일찍 출근한 정씨 때문에 긴장한 병원 직원들의 얼굴과 효율을 핑계로 환자의 말을 자르는 자신의 무심한 모습을 직면했다.
“모니터링을 하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화면 속 제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차갑고 날이 서 있었거든요. ‘유능하고 바쁘니까 이래도 돼’라고 자만했던 민낯을 보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습니다.”
그때부터 정씨에게 유튜브는 자기 자신을 살피는 거울이자 일기장이 됐다. 이 같은 반성은 가슴 깊이 묻어뒀던 암 투병의 기억을 꺼내놓는 용기로, 자신이 환자였을 때 느낀 두려움을 환자들에겐 전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유튜브 채널 ‘닥터나솔’의 콘텐츠.
그의 투병 이력을 살피려면 2019년 5월로 돌아가야 한다. 그즈음 아무런 증상 없이 찾아온 자궁경부암과 유방암은 정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해 7월, 정씨는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에서 생경한 공포를 마주했다. 평소 당당히 걷던 복도였지만 환자가 돼 누운 채 바라본 천장의 형광등은 차갑고 암울했다.
“수술 전 의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는 의사니까 다 알지?’ 제가 같은 의사라는 이유로 상세한 설명은 생략됐는데, 그 침묵이 환자에게 얼마나 무거운 공포로 다가오는지 뼈저리게 느꼈어요. 환자복에 갇힌 거대한 고독을 처음 마주한 거죠.”
수술 후 깨어난 그를 기다린 건 배에 찬 소변줄과 자궁 적출이라는 현실이었다. 내 몸조차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수치심과 평생 ‘자궁암 환자’라는 꼬리표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일상을 짓눌렀다.
하지만 그 처절한 무너짐은 환자들과 더 깊이 소통하는 계기가 됐다. 병원을 개원한 것도 이때의 경험 때문이었다. 대형 의료 시스템에서 기계적으로 반복되던 ‘3분 진료’로는 환자가 느끼는 거대한 고독과 두려움을 보듬을 수 없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렇듯 자신이 겪은 상실과 우울을 유튜브로 투명하게 드러내자 환자들은 정씨를 의사를 넘어 ‘나의 아픔을 아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병원 이름이자 채널명인 ‘나솔’에는 ‘나아서 올’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여기엔 병의 통증뿐만 아니라 환자가 겪는 낙인과 고립감까지 챙기겠다는 다짐과, 그들이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정씨는 자신의 아픈 내면도 공개하기도 했다. 2004년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된 우울증으로 20년 넘게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 매일 아침 약을 삼키며 하루를 시작하는 환자라는 ‘동질감’은 환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도구가 됐다. 유튜브에서 비만 치료제 위고비의 부작용을 직접 경험하고 공유한 것도 환자의 고충을 몸으로 이해하겠다는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유 없이 온몸이 쑤시고 아픈 분들에게 저는 조심스럽게 제 이야기를 꺼냅니다. 저도 20년 넘게 우울증 약 먹고 있다고. 그러면 환자분들의 눈빛이 달라져요. 저를 ‘선생님’이 아닌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으로 바라봐 주시는 거죠. 그 신뢰 위에서 비로소 진짜 치유가 시작됩니다.”
진료실 휴지통에 눈물 젖은 휴지가 가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환자들은 그에게 허리 디스크나 어깨 통증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명절 가사 노동의 서러움, 자식과의 갈등, 노후에 대한 불안을 쏟아낸다. 정씨는 그 이야기를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듣는다. 환자복을 입고 두려움에 떨던 그날을 떠올리며 환자의 말 뒤에 숨은 침묵까지 견뎌내려 한다. 그것이 의사의 숙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영상 보고 병원 갈 용기 얻었어요” 감동
가정환경이 유복하지 않았기에 정씨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혼자 힘으로 미래를 일궈야 했다. 서울대 생물교육과 97학번이던 그는 안정적인 교사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3학년 때 교생 실습을 나갔다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직감했다.
“가르치는 일보다 ‘사람은 왜 아픈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저를 더 괴롭혔어요. 결국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수능을 봐서 의대에 재입학(00학번)했습니다. 통증의학과를 선택한 것도 신체적 아픔 뒤에 숨은 고단한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유튜브에서 재테크 콘텐츠를 다루는 것은 ‘삶의 또 다른 통증’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1억 전세로 시작해 고군분투하며 자산을 일군 과정을 구독자들과 공유하는 것은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경제적 불안이 일상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고통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남긴 기록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40대 싱글로서 겪은 경제적 고충과 생존 전략을 나누는 것. 정씨는 이것 역시 환자의 삶을 보듬는 넓은 의미의 ‘치유’라고 믿는다.
그의 채널 구독자는 2만5000여명이다. 대형 유튜버에 비하면 소박한 숫자이지만 정씨는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어느 날 영상에 달린 “선생님 영상 보고 무서워서 미루던 병원에 갈 용기를 얻었어요”라는 댓글이 그를 계속해서 카메라 앞에 서게 만든다.
“직접 수술을 한 것도 아닌데, 제 영상이 누군가의 결정을 바꾸고 삶의 궤도를 수정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것이 제가 유튜브 카메라 앞에 서는 동력이에요.”
정씨는 이제 두 곳의 진료실에서 환자를 기다린다. 하나는 옥수동의 작은 진료실이고, 또 하나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이다. 그는 오늘도 화면 안팎을 넘나들며, 병의 통증과 삶의 고단함에 지친 누군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자신의 상처를 기꺼이 꺼내 놓는다.
“나솔 영상을 보니 좀 살 것 같다,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지치고 아픈 날, 제일 먼저 찾게 되는 채널을 만들고 싶어요.”
신지호 기자 p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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