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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노동 차별임금 인정해도, 기회 불평등은 용납 안돼”
서울 소재 전문대학에 다니는 2000년생 김현준(21·이하 가명)씨는 주로 취업과 집값 문제에 고민이 깊다.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의 집단심층면접과 <한겨레> 전화 인터뷰에 응한 현준씨는 “20대가 되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들은 말이 ‘인문계는 졸업하고 치킨집 차리고, 이공계는 40대에 치킨집 차린다’였다. 그 정도로 일할 곳이 부족하고 한창일 때 회사를 나오는 게 현실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서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최근 무섭게 오른 집값 탓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현준씨는 “서울에 전세방 구하는 친구와 같이 돌아다녀보니 왜 사람들이 결혼을 못 한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며 “나중에 내가 집을 사야 할 때가 올 텐데 솔직히 30년 일한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면담자인 1999년생 이재현(22)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다녀온 뒤 취업을 준비 중이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다니는 1998년생 박유미(23)씨는 대학 2년생이지만, 안정적인 고용과 적당한 수입을 보장해줄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가 요즘 최대 고민이다. 높은 벽을 앞에 둔 청년들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정규직-비정규직 차이는 인정”
1~2년쯤 뒤 취업 전선에 뛰어들 유미씨와 현준씨, 이미 취업 전선에 나선 재현씨에게 본인이 취업을 한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 어떤 고용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지 물었다. 세 사람 모두 “비정규직일 것 같다”고 답했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유미씨는 “제가 취업을 희망하는 분야는 프리랜서 고용 형태가 많다. 정규직 자리는 1천 대 1, 2천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제가 그 경쟁을 뚫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대에서 공학을 전공하는 현준씨는 “업계에 진입할 때 전문대를 나온 전문학사와 4년제를 나온 학사의 기회 차이가 심하다. 공학계열은 딸 수 있는 자격증도 달라진다”며 “지금 4년제로 편입 준비 중”이라고 했다.
세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상황을 제시하고 이 상황이 공정한지 불공정한지 견해를 물었다.
“나는 △△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5년간 일을 해왔고, 자동차 공장에서 자동차의 왼쪽 바퀴를 다는 일을 하고 있다. 오른쪽 바퀴는 사내하청 소속이 아닌 △△자동차 정규직 직원이 달고 있다. 당신의 월급은 400만원이고, 정규직 직원의 월급은 600만원이다. 비슷한 일을 하는데 임금 격차가 나는 것에 대해 때론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규직으로 입사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셋 모두 ‘나’와 ‘정규직 직원’의 임금 격차는 “공정하다”고 답했다. 유미씨와 재현씨는 “나는 정규직이 아니므로 임금이 적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 시험을 볼 기회가 생기도록 회사에 요구할 것”이라고 답했다. 현준씨는 “그냥 현실을 감내한다”고 답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정규직과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입사 조건과 난이도가 다를 것이다.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은 대졸 이상, 하청업체는 고졸 이상의 조건으로 채용했다면 같은 월급을 받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을 다니고 자격증을 취득한 것에 대한 기회비용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급 차이는 당연하다”고 그는 말했다.
전국의 20대들은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했을까. 에스티아이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제시한 상황 속에서 ‘나’와 ‘정규직 직원’의 임금 격차를 “공정하다”고 답한 경우는 55.5%였다. “불공정하다”는 답(44.5%)보다 11%포인트 높았다. 응답자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정규직과 임금 격차는 비정규직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으로 임금 격차를 줄이자는 주장이나 정규직 전환 요구는 옳지 않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 문장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51.2%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 48.8%보다 높았다.
부모 지위 높을수록 “능력주의 잘 작동”
이번 조사에서 20대 응답자 상당수는 ‘능력’ ‘시험’ 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능력주의’가 주는 느낌이 어떤가”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긍정적’ 43.8%, ‘긍정 부정 느낌 없음’ 37.3%, ‘부정적’ 18.9%로 각각 응답했다. ‘긍정적’이라는 반응이 ‘부정적’이라는 답보다 두배 이상 많았다. 능력이 우월한 사람이 더 많은 사회적 자원과 기회를 갖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는 뜻이다.
초중고 시절부터 경쟁에 익숙하고, 대입과 취업을 겪었거나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능력주의에 상당 부분 찬성하는 의견을 보인 것이다. 유미씨는 “각자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 좋은 사회라고 생각해왔고, 나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능력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채용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게 어느 정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유미씨는 “그나마 시험이 지금까지는 가장 공정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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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따른 차이라면 인정하지만”…‘기회 평등 구현 안돼’ 72%
“촛불 뒤 삶 안달라져 ‘진보’ 안해”…열에 여섯은 ‘정치색깔 없음’
“극단적 능력주의와 오작동은 문제”
재현씨도 시험에 따라 보상의 결과가 달라지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 대체로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재현씨는 ‘능력주의’란 말에 왠지 모를 부정적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재현씨는 “4년제와 2년제 대학 졸업자들 사이에 연봉과 임금 차이를 두는 것, 시험을 잘 본 사람한테 혜택을 더 주는 것은 어느 정도 합리적”이라면서도 “능력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는 사람 중엔 부모님이 타고난 재능을 지원할 환경을 가진 경우도 많은데 노력만으로 그들을 따라잡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재현씨는 “능력이 부족하면 ‘개인이 고쳐야지’라고 말하는 극단적 현실이 무섭고, (저는) 좌절감과 상실감만 커져간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를 보면 20대들은 능력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 사회가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항목 중 “지금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는 개선되어야 한다”에 응답자의 무려 84.3%가 “그렇다”고 답한 게 대표적이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답한 이는 15.7%에 불과했다.
현실을 불가피하게 인정하더라도, 이런 불공정 사회가 지속돼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실제 조사 결과를 보면, “(경쟁에서) 승자와 패자 간의 불평등을 수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항목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물었다. 절반에 가까운 46.3%가 ‘동의’했다.(보통 37.4%, 동의 안 함 16.4%) 이와 동시에, “경쟁의 결과에 따라 지나친 격차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항목에 동의하는지도 물었다. 이 질문 역시 절반 이상인 55.2%가 ‘동의’했다.(보통 30.2%, 동의 안 함 14.6%) 응답자들은 경쟁에 따른 결과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를 수용해야 한다면서도 그로 인한 격차가 너무 커지지 않게 사회적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것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유미씨 또한 다수의 설문 응답자처럼 능력주의에 찬성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20대들에게 ‘능력에 따른 배분’을 합리적으로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유미씨는 “다수의 사람이 모이면 자원을 배분할 수밖에 없는 만큼, 능력을 기준으로 한 배분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20대 청년들이 능력을 10만큼 쌓아도 10만큼 결과를 배분받기 어렵다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능력주의 자체는 합리적이지만 현실에서 오작동하는 게 문제라는 의견이다. 유미씨는 “모두가 선망하는 일자리에 뽑힌 사람들 가운데 채용비리 사건을 통해 낙하산으로 밝혀지는 게 현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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