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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환 대표가 인터뷰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빛의 혁명 183’(갈무리). 조정환(69)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가 지난해 말부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거의 빠짐없이 참여한 뒤 기록한 자신의 생각을 모은 책이다. 183은 윤석열의 불법 계엄 선포일에서 이재명 대통령 당선일까지의 날수이다. 조 대표는 1988년 김사인, 박노해 등과 함께 ‘노동해방문학’을 창간해 주간으로 활동했고 2년 뒤에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수배를 받아 꼬박 9년을 수배자로 살았다. 수배 중와이솔 주식
필명 이원영으로 기고 활동도 했던 그는 수배 5년 차인 1994년에 ‘당 건설을 통한 노동계급의 활성화’라는 기존 신념에서 ‘다중의 헌법제정 활력을 통해 사회 혁명의 동력과 지도력을 찾는 자율주의적 관점’으로 이동했다.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1933~2023) 등이 이론화한 자율주의의 다중은 기존 계급 개념과 달리 유동적이고 다양한 탈중심적 장기추천종목
주체이다. 이번 탄핵 시위 참여자인 노동자, 농민, 지식인, 종교인, 페미니스트, 기후운동가, 성소수자 등이 바로 그 다중이며 이들이 소통을 통해 ‘공통성’을 만들어가는 게 21세기 변혁운동의 중요 과제라는 게 조 대표 등 자율주의자들 생각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 첫 촛불 시위가 등장한 2002년부터 광장에 출석하며 시위 양상을 흥미롭게 관찰했단다. 20HK스탁론
02년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순, 미선 양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어린 학생들 목소리가 촛불로 분출한 시기였다. “당시 촛불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시위와 전통적인 노동자 시위가 섞이는 것을 보면서 이론적 흥분 같은 게 있었어요. 책에서 읽은 변화가 한국 사회 광장에서 일어났으니까요.” 이번 책은 촛불 시위를 기록한 저자의주식발굴
네번째 책이다. 2002년 촛불을 분석해 ‘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2003)을 냈고 ‘미네르바의 촛불’(2009)은 2008년 광우병 촛불을, ‘절대민주주의-신자유주의 이후의 생명과 혁명’(2017)은 2014년 세월호 촛불에 이은 박근혜 탄핵 시위의 기록을 담았다. 지난 4일 서울 서교동 사무실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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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혁명 183’ 표지.
그는 이번 탄핵 시위를 ‘빛의 혁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책에 ‘빛의 혁명’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 그 이상이라고 썼다. “12월3일 다중이 국회의사당 앞에 나와 계엄군에 맞서고 국회의원들을 의사당으로 밀어넣지 않았다면 내란은 100% 성공했을 겁니다. 당시 의사당 앞 다중은 윤석열이 계산하지 못한 세력이었죠. 이 계산이 불철저해 윤의 계획이 무산되었어요. 다중들 때문에 의사당 앞은 장갑차고 뭐고 다 늪에 빠진 듯 꼼짝 못 했어요. 설사 특전사 군인들이 의원을 끌고 나온다 해도 이동이 힘들었어요.” 헌법재판소의 8대0 파면에도 다중의 힘이 작용했단다. “윤 탄핵 재판이 시작되고 그의 변호사들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면서 8대0 탄핵이 기정사실로 됐잖아요. 그런데 이때부터 오히려 탄핵 반대 집회가 엄청 커졌어요. ‘세이브코리아’ 등 새로운 탄핵 반대 시위도 생겨났고요. 이를 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군요. 이 흐름을 반전시킨 계기가 3월7일 윤석열 석방이었죠. 바로 다음 날 시위 주최 쪽인 ‘비상행동’은 집회에서 처음으로 대의민주주의 세력인 국회의원들의 단상 연설을 허용했어요. 다중은 이후로 대의민주주의 세력과 힘을 합쳐 결과적으로 탄핵이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죠.” ‘빛의 혁명’이 ‘파시즘으로 가는 움직임’을 소수화시켰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게 조 대표 생각이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대대적으로 돈을 찍어내면서 재정 위기를 맞았고 이에 대처하려고 복지를 크게 축소하는 등 긴축 정책을 폈지만 지금도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신자유주의 위기 상황에서 집권한 트럼프가 세계화 대신 일국화, 정보화 대신 산업화, 금융화 대신 관세 도입 등의 정책을 펴왔지만 이는 해법이라기보단 일종의 발악입니다. 이런 위기에서 다중이 독재자인 ‘총통’을 따르는 ‘예속 신민’으로 바뀌고 그들의 수가 늘어나 조직적으로 힘을 발휘하면 파시즘이 완성됩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선 이미 파시즘 정당이 주요 정당으로 자리 잡고 한국도 전한길 등이 국민의힘에 들어가 이 당을 파시즘화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김문수는 그 세력과 거의 손을 잡았고요. 이런 흐름은 신자유주의 위기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납니다. 위기 해법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다행히도 이번 빛의 혁명이 이런 움직임을 소수화시켰죠.”
조정환 대표. 강성만 선임기자
그는 지난 20여년 광장에서 바라본 다중의 변화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 사회에서 다중적 현상이 가장 강력하게 분출된 시기는 2008년 촛불이었어요. 당시 다중은 국회와 같은 대의민주주의 기관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강기갑 의원 등 다중과 함께 싸워 온 사람을 빼곤 단상에 오를 수 없었죠. 그러다 2016년부터 대의민주주의 기관을 활용하자는 흐름이 나타나 박근혜 파면과 정권교체라는 성과를 얻었죠. 이 경험이 이번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그는 책에서 “촛불에서 드러난 국민 다중의 희망은 사회대개혁”이라면서 “내란 청산과 개헌이 시민 주도적으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헌의 방향을 두고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헌법과 법률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헌법은 차별 금지를 규정하는 데 이에 대한 입법적인 내용이 전혀 없어요.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헌법 정신을 실현해야 합니다.” 직접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선 국민발안제 도입을 강조했다. “스위스는 국민이 직접 법을 발안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법을 통과시킬 수 있는 권리까지 헌법이 보장합니다. 우리 제헌 헌법에도 제한적이지만 청원권 형태의 국민발안제가 있었어요.”윤석열 탄핵시위 참여 기록 묶어 “의사당 달려간 ‘다중’이 내란 막아 시민 주도로 내란 청산과 개헌 함께 스위스처럼 국민 발안권 보장을 국민이 법 만들면 전혀 다른 삶 될 것”2002년 첫 촛불시위부터 주목해 그간 촛불집회 기록 저서 4권 내 국회가 있는데 왜 국민이 법을 만들어야 하나? 그는 “국민이 발안한 법을 국회에서 어느 수준까지 받아들일지는 논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답을 이었다. “법안을 만드는 과정은 국민들 사이 토론을 촉발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국회의 토론이 국민들의 토론을 대신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국민은 수동적 존재가 되어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정치적 의식의 어떤 가능성이 잠식당해 열등한 인간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법이 이렇게 되면 좋겠다고 상상하면서 사는 삶은 전혀 다른 삶이 될 겁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는 “직접 민주주의 강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철학적으로 보면 ‘인류학적 변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이다라는 표상이 있어요. 저는 사람이 이 표상보다 훨씬 위대하고 훌륭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입에 밥이 들어오는 생존의 차원에 머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삽니다. 생존 이외의 다른 것을 다른 사람이 대행해주면 개인의 삶은 왜소화합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 생각보다 더 크고 좋은 삶이 될 수 있어요.” 그는 국민 발안권과 같은 직접 민주주의 강화가 극우와 맞서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직접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에서 독립적인 민주주의인데요. 이것을 강화해야 극우도 제거할 수 있어요. 저는 극우가 비극우인 법치주의적 대의 민주주의적 세력이 직접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거부하는 상황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바로 직접 민주주의적인 극우이죠. 하지만 이는 사이비 직접 민주주의입니다. 총통(독재자)이 직접 민주주의를 변질시키고 타락시켜 자기의 도구로 만듭니다. 전광훈 같은 사람이 너희가 우리나라를 구할 수 있는 힘이라고 직접 행동을 선동하잖아요. 직접 민주주의를 도구화해 활용하는 게 바로 파시즘입니다. 하지만 국민 발안권이 있으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어요. 극우는 총통에 예속되기 때문에 그들의 직접 민주주의인 직접 행동에는 눈과 귀가 없어요. 머리와 가슴이 달리지 않는 거죠. 국민에게 발안권이나 소환권, 해임권을 안 주니 행동으로만 나오는 겁니다. 머리가 없는 직접 민주주의는 파시즘으로 갑니다. 국민이 매일매일 정치적으로 훈련되게 끔 해줘야 합니다. 그 훈련을 할 수 있는 게 우리가 법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는 과정입니다.” 그는 광장의 촛불 시민을 두고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는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자기 삶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성찰적 인간이며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경쟁의 틀을 넘어서 사고하기 시작한 사람들이죠. 선결제를 보세요. 참으로 존경스러울 정도로 폭넓게 생각하고 아주 직관적으로 본질을 꿰뚫는 사람들을 촛불 광장에서 많이 봤어요.” 기억에 남는 ‘빛의 혁명’ 시민을 묻자 그는 “유튜브에서 본 부산 탄핵 집회(2024·12·11)의 한 노래방 도우미 여성”이라고 했다. “단상에서 그는 왜 자기에게 발언을 할 권리가 있는지 또 자기가 바라는 세상은 뭐고, 이전 집회의 문제가 뭐고 앞으로 집회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하나하나 짧은 시간에 다 짚더군요. 이 연설 전문을 분석한 글 ‘편견과 망상에 관해 어느 “술집 여자”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에 대한 주석’을 이번 책에도 실었죠.” 그가 자율주의를 받아들인 지 30년이 넘었다. “자율주의에 대한 경도는 변함이 없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자율주의 안에서 계속 변하는 거죠. 거기서 불변 속에 변화가 있고 변화 속에 불변이 있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율적인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30년 가까이 화두로 삼아왔다고 밝힌 바 있다. 답을 찾았을까? “제 생각에 자본주의의 본질은 한마디로 강제노동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잠재력은 박스에 갇힌 쥐 신세이죠. 여기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는 게 자율주의이죠. 강제에서 벗어난 노동이 바로 자율입니다. 자율주의 이전에도 강제에서 벗어난 노동이 있었어요. 파업이죠. 이런 자율 행위를 보다 의식적으로 집단으로 확대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 뭔가 궁리한 게 자율주의 운동입니다.” 그는 강제노동을 거부하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면서 수배가 풀린 이듬해인 2000년에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부와 토론 공간인 ‘다중지성의 정원’을 열었던 자신의 선택을 예로 들었다. 그는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 4학기를 수료한 상태에서 민중미학연구회 사건으로 투옥되었고 6개월 수감 뒤 풀려나고 3년 뒤 다시 지명수배되었다. “저는 그동안 지성권에서 자율주의를 실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수배가 풀린 뒤 대학에 돌아가는 것을 제가 거부했어요. 대학에 뭘 배우고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지성이 정말 지성다우려면 대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도화한 학문, 권력화한 학문으로부터의 자율이죠.” 그는 올해 설립 25년인 다중지성의 정원을 두고 “지적인 성숙과 연대를 위한 공간”이라고 했다. 지금도 약 100명이 12개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단다. “지금껏 이 공간을 다녀간 사람이 1만명은 넘을 겁니다. 길 가다 목마를 때 물을 기를 수 있는 지성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죠. 지적인 모색을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고 나름 뿌듯하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작용합니다. 제가 대표인 갈무리출판사에서 책을 낼 때도 출판에 그치지 않고 여기 사람들과 함께 반드시 프리뷰를 하고 서평을 쓰고 집담회를 합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지적 함양을 할 기회를 주는 공간이죠.”
조 대표가 쓴 ‘까판의 문법’과 ‘증언혐오’는 2000년 인권연대가 뽑은 ‘올해의 인권책’ 목록에 올랐다. 저자는 두 책에서 권력형 성폭행 피해자 장자연 사건의 증인 윤지오가 우리 사회의 혐오와 마녀 사냥에 의해 어떻게 사기꾼으로 몰리며 매장되었는지 치밀하게 논증했다.
그는 다중지성의 정원 활동을 ‘공부투쟁’이라고도 했다. 다중에게 공부는 어떤 의미? “다중은 이질성과 다양성을 함축하는 존재입니다. 산업자본주의에선 다 파란색 옷을 입고 똑같은 일을 수행했잖아요. 하지만 산업자본주의가 인지자본주의가 되면서 사람들이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며 살아갑니다. 한국 기준으로는 1990년대 이후 정보화가 부상할 때이죠. 그런데 인지자본주의 다중은 지성이라는 고리를 통해 연결됩니다. 사실 다중지성은 집단지성과 같은 말인데요. 요즘은 지성뿐 아니라 감각이나 감정도 서로 네트워크 되면서 계속 형성됩니다.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나, 희망 이런 게 집단적으로 형성됩니다. 그래서 이런 다중적인 지성이나 정동(Affect)을 서로 연결하는 게 중요해요. 제도권 학교나 대학은 다중적 지성이나 정동을 중앙적 지성이나 정동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면 획일 사회가 됩니다. 숨이 막힙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계속 다른 생각이나 감성을 만들어내기 힘들어집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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