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말금이 거머쥔 신인상 7관왕은 운 좋게 굴러온 복이 아니라 치열한 시간이 만든 결과다. 트리플픽쳐스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로 이름을 알린 배우 강말금씨(46·본명 강수혜)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다 28세에 연극배우가 됐고, 10년도 더 지나 41세에 영화로 신인상을 받았다. 10일 개봉한 영화 ‘고당도’에서 조카의 의대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버지의 가짜 장례식을 준비하는 장녀로 분한 강씨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골드몽


최근 개봉한 영화 ‘고당도’에선 아버지의 가짜 장례식을 꾸미는 딸로 변신한 그의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다. 트리플픽쳐스


강씨는 부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고등학생 때 교내 연극동아리를 하며 연기에 발을 들인다. 백경게임 연기에 뜻이 있었다기보단 그저 무대에 오르는 게 멋있어 보여서였다. 글 쓰고 책 읽는 게 좋아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고교 연극반 후배들이 연기를 가르쳐줄 선배가 없어 헤매는 걸 보고 도움을 줬다. 후배들이 학예회 무대를 훌륭히 마무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강씨는 연기에 대한 강한 이끌림을 자각했다. 그는 부산대 연극동아리인 극예술연구회에 들어 10원야마토게임 가 활동하며 배우라는 꿈을 갖게 됐다. 그러나 꿈을 좇는 것보다 돈을 버는 게 더 급했다.
“대학 졸업 후 집 가까운 무역회사에 들어갔어요. 딱 3년만 일해서 배우 생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려고 했죠. 하고 싶은 게 따로 있으니 회사에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출근하기가 싫어서 밤에 잠들며 다음 날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바다이야기룰 정도였으니까요.”
돈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입사한 지 6년이 지나서야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돈을 충분히 모아서, 연기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무대 위 자기 모습이 부족하다고 느껴서였다. 강씨의 꿈을 알고 있던 대학 연극동아리 선배는 직장인이던 그에게 작은 역할로 무대에 설 기회를 줬다. 연극동아리 야마토릴게임 시절을 생각하며 자신만만해 했지만 오랜만에 오른 무대에선 부족함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마침 서울에 발령받아 살던 상황.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의 한 극단에 들어갔다.
“처음 참여한 작품이 인형극으로 만든 ‘어린왕자’였어요. 어린왕자 분절 인형에 배우 3명이 붙어서 머리·허리·발을 조종했죠. 대사는 발을 맡은 선배 몫이었고, 저는 대사가 한마디도 없었어요. ‘나도 말하고 싶다, 직접 연기를 하고 싶다, 나는 왜 안될까?’란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인형극에 익숙해지고 나서야 그 시간이 기본기를 다지는 데 꼭 필요했음을 알게 됐죠.”
연기는 쉽지 않았다. 부산 사투리, 어색한 걸음걸이와 자세, 부족한 대사 전달력을 고치기 위해 애쓰며 이름 없는 시절을 채워나갔다. TV나 영화에 출연하는 유명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연극 무대가 좋았다. 2009년 KBS ‘스펀지’에 재연배우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단편영화로 영역을 넓혔다. 그곳에선 연극배우로 일할 때와는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배우로 데뷔한 지 20년 가까이 된 지금에서야 그는 굽었던 등이 펴지고 목소리를 찾게 됐다고 말한다.
영화 데뷔 10년 후인 2020년, 강씨의 인생을 바꾼 첫 장편영화 주연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세상에 나온다. 그는 집도 없고, 남자도 없고, 갑자기 일마저 똑 끊겨버린 영화 프로듀서 ‘찬실’을 연기했다. 강씨는 영화를 통해 백상예술대상·부일영화상·청룡영화상 등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7관왕을 달성한다.
“기쁘기보단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컸어요. 김초희 감독님이 만들어주신 건데 제게만 큰 관심이 쏟아진 것 같았거든요. 상은 강말금이 아닌 찬실이가 받았다고 생각해요. 수상 후 캐스팅 제안이 많이 들어온 건 참 좋았습니다. 저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저 대신 집안 생계를 책임지면서 연기를 할 수 있게 해준 친언니, 무용 무대에 세워준 무용과 선배, 연기를 가르쳐준 극단 동료들, 감독님들까지. 그분들 덕에 제가 지금 연기할 수 있는 거죠.”
이후 강씨는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서른, 아홉’ ‘폭싹 속았수다’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왔다. 오랜만에 주인공을 맡은 영화 ‘고당도’에선 또 한번 새로운 얼굴을 꺼내 들었다.
“서른다섯살 때쯤, 어머니가 편찮으셨어요. 전엔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괜찮았는데 어머니 병원비를 보탤 수가 없으니 큰 절망감이 밀려오더라고요. ‘고당도’에 나오는 것처럼 아픈 부모님을 마주하거나 본인이 아프게 되는 건 누구든 피해 갈 수 없는 일이에요. 관객분들이 아버지나 자식의 입장에 감정을 이입하며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