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태(오른쪽) 사관과 부인 임정선 사관이 2005년 12월 1일 구세군 사관학교 성탄축하회에서 나란히 앉아 찬양을 부르고 있다. 구세군 제공
1991년 사령관직에서 은퇴한 뒤 우리 부부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15평 남짓한 전셋집에 거처를 마련했다. 현역 사관으로서 행정을 돌보고 교단을 이끄는 공식적인 임무는 모두 끝이 났다. 매일같이 울리던 전화벨도, 결재해야 할 서류도 사라진 고요한 일상이었다. 평생을 쉴 틈 없이 달려왔으니 이제는 여생을 편안히 즐기라는 권유도 있었다. 하지만 구세군 사관의 군복을 벗었다고 해서 신앙인으로서 복음을 전해야
바다신릴게임 할 사명까지 은퇴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밥이나 먹으며 소일거리로 남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다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성경에서 찾았다. 이사야 62장 10절의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는 말씀이었다. 구세군의 창립자 윌리엄 부스는 1865년
릴게임바다이야기 영국 런던의 번듯한 예배당을 떠나, 빈민과 술주정뱅이들이 거리를 헤매는 런던 동부의 빈민가 빈터에서 천막을 치고 복음을 전했다. 구세군의 출발점은 닫힌 성전 안이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들이 오가는 척박한 길거리였다.
나는 아내 임정선 사관과 함께 휴대용 마이크와 소형 앰프를 챙겨 집을 나섰다. 우리가 향한 곳은 집 인근의 강남 압구정동 거리
릴게임5만 였다. 1990년대 초반 압구정은 세속적이고 화려한 소비와 유행의 중심지였고 복음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현장이었다. 은퇴한 우리는 화려한 상점들이 늘어선 아스팔트 길 한복판에 섰다. 불신자들을 향한 가로 전도, 이른바 우리 부부만의 ‘천장 없는 교회’가 그곳에 세워졌다.
거리 전도의 현장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현역 시절 사관학교 교장
바다이야기오리지널 과 교관을 지내며 단련된 나의 기질은 거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나는 마이크를 쥐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회개와 구원의 메시지를 외쳤다. 나의 설교에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바쁘게 걷던 행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길을 돌아갔고 인근 상점의 상인들은 장사에 방해가 된다며 시끄럽다고 항의했다. 종종 경찰이 출동해 소음을 줄여달라며 제지를 당하는 소동도 벌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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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면 내 곁에 선 동역자인 임 사관이 조용히 나섰다. 음악을 전공한 아내가 마이크를 건네받아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로 찬양을 부르기 시작하면 거리의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온화한 부인의 목소리와 찬양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의 설교와 아내의 찬양이 길거리에서 번갈아 이어졌다. 부부가 동등하게 사역을 감당하는 구세군 고유의 ‘동부인’ 제도가 거리 전도 현장에서 실천되고 있었다. 교회는 예배당 안에서 신자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다. 복음을 들고 세상의 한가운데, 불신자들이 생활하는 삶의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야 한다. 현역의 자리를 떠나 다시 길거리로 나선 우리 부부의 노방 전도는 은퇴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정리=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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