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최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스틱인베스트먼트 본사에서 매일경제와 용퇴 선언 이후 첫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비록 높으나, 내려올 때를 모르면 후회가 남는 법이다."
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스틱) 회장은 금융인으로 45년간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이 같은 의미를 담은 사자성어 '항룡유회(亢龍有悔)'로 갈음하며 내년 용퇴를 선언했다. 그는 이달 말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자신의 경영권 지분 대부분을 미국계 운용사에 넘긴 뒤 내년부터는 스틱의 '영원한 리베로'로
골드몽게임 남기로 했다.
그의 용퇴는 '슈퍼 갑' 보험사 최고투자책임자(CIO) 자리를 내려놓고 스틱을 창업한 지 30년 만의 일이다. 30년간 꾸준한 성장을 일군 스틱은 현재 총 10조원이 넘는 자산을 굴리는 대체투자 전문 운용사로 성장했다. 벤처캐피털로 출발해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로까지 보폭을 넓히며 그가 걸어온 길은 한국 자본 시장이 진화해 온
카카오야마토 궤적 그 자체다.
이미 2년 전부터 70세가 되는 2026년을 퇴임 기점으로 못 박은 터였지만, 예상치 못한 지분 매각 결정 소식에 시장은 적잖이 놀랐다. 도 회장은 "창업자의 역할은 시스템을 안착시키는 데까지이며, 그 이후는 회사를 함께 키워 온 후배들의 몫"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 "지배구조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해소하고 '질서
바다신2다운로드 있는 퇴장'을 하는 것, 그것이 스틱과 자본 시장에 할 수 있는 마지막 책임 경영"이라고 덧붙였다.
외환위기와 나스닥 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를 모두 겪은 금융인의 생존 비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투자는 심사역들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나는 '해서는 안 될 투자'에만 거부권을 행사했다. 상식에 따라 경영했을 뿐인데 운 좋게 살아남은 것
야마토무료게임 같다."
서울 스틱 본사에서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도 회장은 떠나는 소회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행동주의펀드의 압박 때문에 지분을 판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출자자(LP)들은 오히려 은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국내 주요 기관 CIO들이 평균적으로 나보다 10세 이상 어리다. 운용사(GP)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는 잘못하면 LP한테 얻어터지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업계 대선배이니 싫은 소리를 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비켜줘야 후배들이 새로운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지분을 남겨두면 진정한 은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대주주지만 지분율이 낮아 행동주의펀드에 빌미를 줬다는 지적이 있다.
"나는 스틱을 창업했지만 한 번도 '오너'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전문경영인이라고 생각해 왔다. 가장 지분율이 높았을 때도 16% 정도였다. 창업 초기 나를 도와준 주주가 60여 명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외환위기를 버텼다.당시 어려움에 처한 주주들의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 살던 아파트를 팔았다. 이후 2015년까지 17년 동안 전세로 살았다. 이후 회사가 잘되면서 주주들의 투자 회수 요구가 이어졌다.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회사를 상장사인 디피씨와 합병시켜 투자 회수 기회를 열어줬다. 그 과정에서 내 지분율은 9%까지 낮아졌다. 훗날 지분 확대를 도와주겠다며 접근하는 세력도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덕분에 스캔들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미리캐피털을 파트너로 선택한 이유는 뭔가.
"운용사의 성장은 결국 총운용자산(AUM) 선순환에 달려 있다. 최근 퍼블릭 마켓과 자산관리(WM) 전문가로 꼽히는 강신우 대표와 사재훈 대표를 영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시장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그동안 중동과 유럽 등지에서 펀딩을 해 왔지만 자본 시장 종주국인 미국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미리캐피털은 지난 2년 반 동안 미주 시장 펀드레이징을 지원하겠다고 꾸준히 접촉해 왔다. 미리캐피털은 미국에서도 전통적으로 부자가 많은 보스턴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그들이 가진 북미 네트워크와 스틱이 쌓아 온 국내 시장 내 신뢰도가 결합하면 새로운 '스틱 2.0'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지배구조 변화에 우려도 나온다.
"미리캐피털은 현 경영진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의사 결정 구조도 독립적으로 설계돼 있다. 일부 LP들이 걱정하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인력 이탈은 전혀 없다. 오히려 변화에 대한 기대가 더 큰 것 같다. "
서울 테헤란로 스틱인베스트먼트 사옥 내부에 걸린 '투자보국(投資報國)' 현판을 배경으로 도용환 회장이 웃고 있다.
-창업 초기엔 벤처캐피털이란 개념도, 사모펀드란 개념도 없었다.
"1996년 창업 직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필리핀 ADB 본부를 무작정 찾아갔다. 자본도 인맥도 없었지만 '투자가 국가 경제의 허리를 살리는 길'이라는 '투자보국(投資報國)'의 신념이 있었다. 2000년대 초에는 4대 그룹을 찾아다니며 '미래 먹거리를 찾는 레이더망이 되겠다'고 설득해 맞춤형 벤처펀드를 결성했다. 한국 벤처 시장에 본격적인 '펀드 시대'를 연 건 내 경영 인생에서 큰 자부심 중 하나다. 2003년에는 일본 미쓰비시상사를 주주로 영입하며 해외 펀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는 한국 벤처캐피털 산업이 한 단계 성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30년간 스틱이 성장해온 비결은.
"결국 규모의 경제다. 일정 수준 이상 AUM이 있어야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스틱은 초기부터 차별화된 성장 전략을 추구했고, 그 전략을 꾸준히 실행해 왔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생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생을 하면서 '절대 망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겼다. 그래서 스틱은 20년 넘게 무차입 경영을 유지했다."
-후회되는 결정도 있었나.
"2008년 무렵 벤처캐피털 부문 분사와 실물자산 투자 진출을 추진하다가 10년 가까이 지체된 것이 가장 아쉽다. 리스크를 지나치게 의식한 방어적 경영이 기회를 늦췄다. 그때 '도전정신이 약해지면 결국 도태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또 초기 경영 시절 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후배들을 다그치다 좋은 인재를 놓친 적도 있다. 그 경험을 통해 만든 것이 지금 스틱의 '집단지성 시스템'이다."
도용환 스틱 회장
△1957년 경상북도 경산 출생 △1975년 경북고 졸업 △1982년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제일투자금융 입사 △1990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신한생명보험 투자운용실장 △1996년 스틱투자자문 설립 △2003년 일본 미쓰비시상사 주주 영입(해외 펀딩 시대 개막) △2008년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 △2011년 스틱인베스트먼트 회장
[우수민 기자 / 한우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