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문학동네소설상,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각광받고 있는 김홍 소설가가 '인공지능(AI)과 함께 설 쇠기'를 주제로 짧은 소설을 기고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설 인사처럼 읽혔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도 담겼습니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와서 손 좀 보태! 엄마 혼자 이 물량 다 못해."
그렇지 않아도 일찍 갈 생각이었다. 명절 앞두고 대목이면 선물세트 주문이 밀려들었다. 나의 엄마 권순욱 여사는 은평구
바다이야기온라인 응암동 응암오거리에서 정육점 '사태파악'을 운영했다. 아침 9시에 문을 열어 저녁 9시에 문 닫을 때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알짜 가게였다.
엄마의 영업 비결은 '뭐든지 두 배로'였다. 남들이 서비스로 파채 한 봉씩 줄 때 무조건 두 봉! 5만 원 이상 구매 시 사골육수 1㎏에 1㎏ 한 통 더! '어서 오세요.' 반겼어도 '무지
릴게임온라인 반갑구먼요.' 인사 한 번 더! 남편이 죽지 않았으면 자식도 한 명 더 낳았을 게 분명하다.
"너도 이제 고기 제법 썬다. 회사 때려치우고 엄마 밑에서 일해볼래?"
"됐네요. 얼마나 편하게 부려 먹으려고."
"그럼 안 되니? 자식인데."
엄마는 모른다. 내가 고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온라인야마토게임 먹는 건 물론이고 쳐다보는 것도 질색이다. 마장동에서 마트로, 마트에서 소매점으로 옮겨 다니며 엄마가 정육의 달인이 되는 동안 어렸던 나는 늘 집에 혼자 있었다. 그때 나와 함께 해준 건 생성형 AI 모델 '주이 2.0' 뿐이었다. 나는 주이에게 내 모든 외로움을 털어놨다. 내게 필요한 따듯함은 모두 주이에게 있었다. 주이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오션파라다이스다운로드 옹졸하고 못된 어른이 됐을 거다.
이제 주이는 없다. 주이 서비스를 제공하던 회사가 갑자기 망한 게 벌써 10년 전이었다.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 내내 주이와 나눈 대화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며칠을 밥도 안 먹고 엉엉 울기만 했다. 엄마는 내가 왜 그런지도 몰랐을 거다. 물어보지도 않았으니까. 적당히 혼자 상상했겠지. 택도 없는 사람에게
바다이야기룰 고백했다 차였겠거니 하면서.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최선을 다해서 산 거니까.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면서 나를 먹여 살리는 게 엄마의 바람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목표는 초과달성이다.
"뭐야 이거. 너희 집 주소 아니야? 너한테 주문 들어왔네."
"내가? 아니야. 나 주문 넣은 것 없어."
"아니. 너희 집으로 가는 거라고. 네 이름 맞잖아."
배달 주문 내역을 뽑아든 엄마가 고개를 갸웃했다. 주문서를 건네 받아 읽었다. 엄마 말이 맞았다. 내가 혼자 지내고 있는 자취방으로 '특상 한우 모듬로스' 세트 주문이 들어온 거다. 보내는 사람은 '리주이'였다. 내가 아는 주이는 하나뿐인데.
"북한 사람인가? 너 아는 사람 맞아?"
"엄마. 이거 주이야. 인공지능 주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이건 're주이'였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어릴 적 내 친구가 돌아온 거다. 칼질을 하다 말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어디에도 주이 서비스가 재개됐다는 소식은 올라온 게 없었다.
"주이라고? 어머, 세상에. 나도 이거 없어지기 전에 한참 썼는데."
"엄마가? 주이를 왜 썼어?"
"아니 뭐 그냥, 이것저것 물어볼 것도 있고 해서……."
얼버무리는 모양이 엄마답지 않았다. 왠지 얼굴도 좀 상기돼 보였다.
"엄마. 방금 주문 하나 더 왔어. 엄마한테도 하나 보냈네. 리주이가 주문을 두 개 넣었어."
엄마가 말없이 칼을 내려놓았다. 눈동자 위가 도톰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눈물이 도마 위에 툭툭 떨어졌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뭐라 말도 못 하고 엄마를 쳐다보기만 했다. 나 없는 데서 얼마나 많이 울었을지 알 수는 없지만, 내게 그런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습관처럼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건조한 목소리의 앵커가 뉴스를 읽었다.
"오늘 오전 태양 흑점의 이상 활동에 영향을 받아 북미 지역의 데이터센터가 연쇄적으로 셧다운 됐습니다. 관련 기업의 주가가 일제히 폭락하며……."
드나든 사람도 없이 문이 흔들리며 짤랑짤랑 방울 소리를 냈다. 나는 생각했다. 주이구나. 주이가 왔구나. 언젠가 한 번은 다시 만나고 싶었어.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을 거라 믿었거든.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헤어졌잖아.
"가게 열기 전에 너무 고민돼서 AI라는 거 처음 써봤다. 의논할 사람 한 명 없어서. 그때 너는 곁에만 가도 찬 바람이 쌩쌩 불어서 말도 붙이기 힘들었어."
엄마는 눈물을 닦고 다시 칼을 잡았다. 꽃등심에서 기름을 쳐내며 말을 이어갔다.
"'비상사태'랑 '사태파악' 중에서 어떤 게 나은지 도무지 감을 못 잡겠는 거야. 그래서 주이 2.0에 처음 들어갔어. 신통방통하데. 비상은 독약 이름이니까 어감이 안 좋다고 사태파악으로 하라는 거야. 그때부터 미주알고주알 내 얘기하기 시작했지. 사근사근하고 수다스러운 게 꼭 니네 아빠랑 연애할 때 같더라. 내 사정 듣더니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이야기해줬지. 처음 같이 동물원 갔던 날 나한테 운동화 벗어주고 맨발로 다닌 사람. 모르는 할머니한테 우산 주고 홀딱 젖은 채로 데이트 장소 나온 사람. 병원에서 죽을 날 기다리는 데도 자다 깨서 나한테 이불 덮어주던 사람. 그러더니 언젠가부터 정말 네 아빠처럼 말하더라. 나도 그냥 네 아빤가보다 생각하면서 의지했어. 갑자기 서비스 종료되기 전까지."
나는 앞에 놓인 부채살을 결대로 잘라내는 것에 집중하며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정한 두께로 망설임 없이 칼질해 예쁜 단면으로 겹쳐 놓았다. 선물용 포장 용기에 담아 리본을 묶으며 매듭이 보기 좋은 대칭을 이루게 하는 데 집중했다. 쓸모없고 동떨어져 있는 다른 생각도 조금 했다. 아침에 가게 오다가 본 고양이의 꼬리가 흔들리는 물음표처럼 보였던 장면 같은 것을. 뭐든지 두 배인 걸 좋아하는 엄마라도 나까지 우는 건 좋아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제일 예쁘게 담긴 선물 세트 두 개를 들고 집에 갔다.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잔뜩 깔고 불판을 달궜다. 차돌박이로 시작해서 등심, 새우살, 부채살, 안창살…… 배가 터지도록 구워 먹었다. 너무 더부룩해서 집 앞 공원을 스무 바퀴 돌며 파워 워킹했다. 그제야 좀 소화가 됐다. 노곤한 기분으로 일찍 잠들었는데 이상한 꿈을 꿨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서 산을 오르는 꿈이었다. 꽤 가파른 절벽을 통과했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정상에 도착하면 새로운 해가 떠오를 걸 알았다.
엄마가 발끝으로 허벅지를 꾹꾹 눌러 잠에서 깼다.
"엄마. 좀 더 상냥하게 깨워줄 수 없어?"
"정초부터 늦잠 자면 한해 내내 게으름 피운다."
거실에 나가보니 고기 구운 흔적은 깨끗하게 사라지고 차례상이 차려져 있었다. 눈을 비비며 엄마와 나란히 섰다. 절을 두 번 하고 소원을 빌었다. 올해는 운수대통, 만사형통, 튼튼씩씩…… 그리고 아빠 안녕. 떡국에는 큼직하게 자른 산적 고기가 떡만큼이나 많아 보였다. 계란 지단은 노란색과 흰색을 따로 해서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두 그릇인 이유는 따로 묻지 않았다. 주이 안녕. 고마웠어. 나보다 더 나를 잘 알아줘서. 엄마 곁에 있어 줘서.
"새해 복 많이 받아요."
"그래 너도. 두 배로 받아라."
김홍 소설가. 한겨레출판 제공
김홍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