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3월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파이프를 문 채 글을 쓰고 있는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위키미디어 커먼스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이 총력으로 맞붙은 2차 세계대전의 동부전선은 시대의 명운이 걸린 사생결단의 현장이었다. 연합군의 역전승은 1942년 겨울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전황을 뒤집으면서 시작됐다. 일설에 따르면 이 전투에 돌입하기 직전 아돌프 히틀러는 적장 이오시프 스탈린(1878∼1953)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촌평을 남겼다고 한다.
“처칠에 비하면 스탈린은 거인이지요. 처칠은 몇 권의
릴게임무료 책과 솜씨 좋은 의회에서의 연설 말고는 일생의 활동에서 보여준 게 없습니다. 반면에 스탈린은 의심할 여지 없이, 1억7천만 인민의 국가를 재조직해서 거대한 무력 충돌에 대비했습니다. 스탈린이 내 수중에 들어온다면 아마도 나는 목숨을 살려 온천 같은 곳으로 보내버릴 겁니다. 처칠과 루스벨트는 목을 매달 겁니다.”(제프리 로버츠, ‘스탈린의 전쟁’, 김남섭 역
릴게임야마토 , 열린책들, 617쪽)
혹자는 악마에 관한 악마의 찬사를 인용하여서 어쩌자는 건가, 싶겠지만 저 평가에 스탈린의 한 단면이 일절 담기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다. 기계적으로 공과를 분리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역사의 좌표계에 분명하게 고정하기 어려운 어떤 복잡성과 역설, 모호함과 비밀스러움이 그에 관한 평가를 에워싸고 있어서다.
검증완료릴게임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라는 문장 또한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흔히 스탈린의 어록으로 회자되는 이 아포리즘에 담긴 뉘앙스는 두 갈래로 파악된다. 첫째, 인명이 수치로 대상화될 때 그 개별적인 상실감과 고통에 관하여 공감 능력을 잃어버리기 마련인 인간적 본성에 관한 냉소, 둘째, 이러한 인간성의 아이러니를 들춰내어 압제와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폭력을 합리화하는 독재자 스탈린의 잔혹성. 주로 영어권에서 유명하지만, 한국에서도 이따금 쓰인다.
정말 스탈린의 말이 맞는지 확신을 갖기에는 근거가 부실하다. 표현의 꼴을 온전하게 보존한 가장 오래된 출처는 19∼20세기 프랑스에서 발행되었던 주간지 ‘르 코믹-피낭스’(Le Comic-Finance)다. 이 신문의 1924년 3월6일 자
오리지널바다이야기 2면에는 일종의 농담 모음집이 실려 있는데, 그중 한 편에서 원문을 찾아볼 수 있다. 때는 1차 세계대전 종전으로부터 5년이 흐른 어느 저녁, 한 살롱에서 전쟁이 화두로 오르자 장내가 숙연해진다. 노병은 전장에서 전우를 잃었고, 여인은 남편과 사별했다. “전쟁은 끔찍하고, 정당화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한숨 섞인 미망인의 토로에, 그때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던 ‘케 도르세’(프랑스 파리의 공관 밀집 지역)의 외교관이 자신만만한 어투로 토를 단다.
“전쟁이요? 그렇게까지 끔찍한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확실히 끔찍한 일이지만, 십만 명의 죽음은 통계일 뿐이지요.”
1924년 3월6일 자 ‘르 코믹-피낭스’(Le Comic-Finance) 2면. 프랑스 국립도서관(BnF) 디지털 아카이브 갈무리
‘르 코믹-피낭스’의 펀치라인이 전파된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후일 이것이 스탈린의 말이라고 주장하는 기록물 중에서 특별하게 검토할 만한 것은 두 가지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레너드 라이언스의 1947년 1월30일 자 ‘워싱턴포스트’ 기고 칼럼에 따르면, 스탈린이 군수 인민위원(Commissar of Munitions) 시절 최고위 회의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기근에 관해 성토하며 사망자 수를 열거하는 관리의 말을 끊고는 “한 사람이 굶어 죽는다면 그것은 비극이지만, 수백만 명이 죽는다면 그것은 단지 통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칼럼은 전문을 확인하기 어렵고, 따라서 라이언스가 어떤 경로로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는지도 알 수 없다. 디테일도 부정확한데, 그가 언급한 ‘우크라이나 기근’이 우크라이나 대기근(1932∼1933년)을 가리킨다면, 당시 스탈린은 장관급인 ’인민위원’이 아니라 소련의 최고 권력자인 ‘서기장’이었으며, 스탈린의 경력 전체를 살펴봐도 ‘군수 인민위원’이라는 직책을 맡은 적은 없다.
두 번째 기록은 비교적 최근의 것으로 윈스턴 처칠의 막내딸 메리 소엄스가 2011년 영국 비비시(BBC)와 인터뷰에서 남긴 증언이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아버지 몰래 입대하여 대공포 부대 소속으로 참전하기도 했던 메리 소엄스는 전후 개인 보좌관 자격으로 처칠을 따라 포츠담 회담(1945년 7월17일∼8월2일)에 동행하였다. 승전국 지도자들(처칠, 스탈린, 트루먼)은 히틀러의 묫자리가 된 방공호를 함께 견학하고, 포츠담의 궁궐에 둘러앉아 전후 국제 질서의 재편을 논의하였다. 메리 소엄스는 비비시 방송에서 스탈린의 첫인상이 ‘말끔하고 멋졌다’(dapper)면서 다음의 일화를 회고했다.
“언제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버지가) 스탈린과 대화를 나누던 중 친구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아버지는 감정에 북받쳤고, 스탈린에게 ‘용서하십시오. 당신의 군대가 치른 끔찍한 희생을 생각하면, 제가 이런 일로 동요한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라며 양해를 구했죠. 그러자 스탈린이 말했어요. ‘아닙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언제나 비극이고, 수천 명의 죽음은 통계의 문제지요.’”
역사의 현장에 배석한 당사자의 진술이니 조심스럽지만, 이 역시 믿음직한 증거로 취급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2010년대 들어 갑자기 튀어나온 메리 소엄스의 회상이 그 어떤 문헌이나 증언을 통해 교차로 검증되지 않는다는 점, 정작 당시 그가 펴낸 회고록 ‘한 딸의 이야기: 윈스턴 처칠 막내딸의 회고록’(2011)에는 비비시 인터뷰에서 밝힌 스탈린 일화가 실려 있지 않다는 점, 포츠담 회담 관련 기록물이나 스탈린의 생애를 다룬 어떤 사료에도 저 문구를 스탈린의 것으로 연결하는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엄스 여사의 기억만으로 이 사태를 종결하긴 부족해 보인다. 물론 새로운 기록이나 증언이 발굴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으나, 지금으로써는 원조 대결에서 ‘르 코믹-피낭스’를 이기긴 어려울 것 같다.
1943년 11월 이오시프 스탈린, 프랭클린 루스벨트, 윈스턴 처칠이 이란 테헤란의 소련 공사관에서 함께 앉아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철의 장막은 피로써 축조한 것이었다. 메리 소엄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과연 처칠은 스탈린 앞에서 자신의 사적인 추모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는 외교적 감각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희생된 소련 인민은 약 2500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3분의 2가 민간인이고, 소련 내 수만 개의 도시와 수십만 개의 기반 시설이 붕괴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붉은 군대에 패퇴한 나치 독일의 인명 피해는 사망자 300만명 포함 1000만명 수준이다. 소련에 비하면 한참 적지만, 전쟁 기간 독일군 전체 사상자의 75%가 동부전선에서 나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기실 히틀러의 마수로부터 유럽의 자유 진영을 구조한 이는 무한 살육의 전장으로 자국민을 스스럼없이 밀어 넣은 독재자 스탈린이었다. 역사학자 제프리 로버츠는 이 역설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스탈린은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시스템을 창출했지만, 그것은 히틀러에 맞서 매우 힘든 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유일한 시스템이었을 것이다.”(앞의 책, 76쪽)
그 시스템은 다시 말해, 체제를 보위하기 위해서라면 대량살상의 불가피성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전체주의를 가리킨다. 이 체제로 인하여 수많은 소련 인민이 죽음으로 내몰렸으니,공소장 최상단에는 대숙청, 인종 청소와 더불어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적시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살펴본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 우크라이나 기근을 거론한 레너드 라이언스도―사실관계는 미심쩍었지만―비슷한 심경이었으리라.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1930년대 초 소련 전역을 덮친 흉작에 더해, 소비에트 집단 농장 체제의 참혹한 실패와 반인도주의적인 지도자의 정책적 판단이 겹치면서, 수백만 명의 아사자를 내고 우크라이나 지역 일대의 인적 토대를 초토화한 재앙이었다. 소련 공안 당국의 악랄한 통제 덕에 공식 기록조차 거의 남지 않은 이 재난의 사망자는 350만에서 500만 사이로 추산된다.
티머시 스나이더와 같은 학자들은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의도적인 학살로 규정한다. 현장에서 올라오는 실태 보고를 묵살하고 수탈의 강도를 올리는 동시에 배급은 틀어막는 행정력으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죽음을 강제하였다는 것이다. 스탈린이 식량 수출을 중단하거나, 곡물 비축분을 풀지 않고 극한에 몰린 우크라이나 주민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스나이더의 해석이다.(티머시 스나이더, ‘피에 젖은 땅’, 함규진 역, 글항아리, 89∼90쪽)
피를 피로 덮고 시체 위에 시체를 쌓아 올리며 성장한 체제가 나치를 물리치고 세계를 구했다면, 이것은 참작 사유가 될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비극과 통계’ 운운하는 레토릭만큼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박강수의 허언록은?
곡해, 도용, 날조, 과장, 오역 등 비틀린 말의 사정을 추적하는 에세이입니다. ‘잘못 알려진 명언’의 말 못 한 사정을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박강수의 허언록(https://www.hani.co.kr/arti/SERIES/3309?h=s)에서 읽어보세요!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