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모차르트 초상화와 그의 악보. 위키미디어 커먼스
모차르트의 탄생 270주년을 맞아, 작곡가의 도시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모차르트의 작품은 루트비히 폰 쾨헬에 의해 작품 목록이
10원야마토게임 기본적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2021년 모차르트의 생일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잘츠부르크에서 미발표곡을 초연했고, 기존 작품도 후대 연주자들의 재해석을 통해 가치의 재발견이 이뤄지기도 한다. 세상을 떠난 작곡가의 작품은 기록과 해석을 통해 270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명을 지속해 온 셈이다.
우리가 손에 꼽는 위대한 작곡가 대부분은 그들이
야마토게임예시 살아있을 때보다 세상을 떠난 후 가치가 평가된다. 시대를 앞서갔던 탓에 작품의 가치는 작곡가 사후 30년 혹은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난다. 살아있을 때 갖고 있었던 사회적 영향력이나 후광효과를 걷어내고,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도록 기다리는 긴 시간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들의 가치를 알아본 누군가의 시선과 충분한 기록이다. 버거운 현
야마토게임다운로드 실을 살았던 그들의 주변에 기록하고 전달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바흐도, 모차르트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당대에도 '천재 음악가'의 대명사였다. 많은 사람이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모차르트가 얼마나 뛰어난 음악가였는지, 특히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궁정악장 살리에리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며 알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3
바다신릴게임 5년의 짧은 생을 마감할 때 그의 시신은 공동묘지에 버려졌고, 29세였던 아내 콘스탄체에게 남은 것은 빚과 어린 두 아들이었다. 콘스탄체 역시 음악가였지만 눈앞에 닥친 생계를 위해 악보를 헐값에 팔거나, 새출발을 위해 모차르트라는 과거를 모두 외면하려 했다면 후대는 지금의 '아마데우스'를 볼 수 있었을까.
릴게임5만 영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 ⓒ ARTE/The Saul Zaentz Company
바흐의 기록자, 안나 막달레나
게오르크 니콜라우스 폰 니센의 초상화. 위키미디어 커먼스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는 모차르트 사후에 일어난다.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의 단편소설 '콘스탄체 폰 니센'은 모차르트가 떠나고 홀로 남은 콘스탄체의 관점에서 쓴 짧은 이야기다. 콘스탄체는 세상을 떠난 남편의 존재가 야속했다.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자리를 찾던 중 빈에 부임한 덴마크 영사 게오르크 니콜라우스 폰 니센을 만나 재혼하게 된다. 모차르트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인 니센은 모차르트의 작품 가치를 일찍이 알아보고 존경했던 애호가였다. 콘스탄체의 두 아들을 잘 양육하는 것은 물론 아내의 전 남편인 모차르트의 작품을 정리하고 지인과 친척들로부터 편지와 자료를 채집해 모차르트의 전기를 쓰던 중에 세상을 떠난다. 소설은 콘스탄체의 심경을 글로 풀어낸 것이지만, 그 내용은 모두 사실에 기반한다. 천재의 짧은 생을 안타깝게 여긴 하늘에서 이들 부부에게 부족했던 물질적, 정서적 안식을 선사하고, 작품을 재평가할 수 있도록 니센을 보내 기록과 정리를 맡긴 것만 같다.
저작권자이자 유산 관리자로서 니센은 모차르트 연구의 출발점이 된 인물이다. 외교관 공직에서 은퇴한 후에는 잘츠부르크로 이주해 모차르트 전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때 400여 통에 달하는 모차르트의 누이 난네를의 편지를 포함해 공연의 기록과 흩어져 있던 자료들을 수집했다. 콘스탄체와 가족들의 증언으로 자칫 윤색과 프레이밍을 거친 '미화된 모차르트'를 남길 수도 있었겠지만, 오늘날 모차르트 연구와 대중적 이미지 형성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전 생애를 바쳐 한 인물의 아카이브를 만들어낸 니센 덕분일 것이다.
사후 100년이 될 때까지 재평가 시기를 기다려야 했던 '음악의 아버지' 바흐에게도 중요한 기록자인 아내 안나 막달레나가 있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오르간 트리오 소나타, 평균율 제1권의 주요 부분과 B단조 미사 일부, 여러 칸타타의 필사 악보는 안나의 기록이었다. 그는 단순히 악보를 베끼는 일에 그치지 않고, 기록자의 입장에서 제목과 악장 이름, 교정까지 맡아 후원자들에게 판매하고 교육용 자료로써 재정리해 유통했다. 눈에 띄지 않는 노동이지만 위대한 작품이 온전히 후대에 이어지도록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역시 보이지 않았던 인물들의 온전한 '기록'이었다.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