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2019),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2024), 독일 국제문학상(2025)을 잇따라 수상한 세계적 시인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제공
시인이 쓰고 편집자가 교정을 본 원고에 군인들이 콜타르로 검게 덧칠해 돌려보내던 1970년대 말, 시인 김혜순(71)은 출판사 평민사에 다니는 "무색무취무명의 말단 편집사원"이었다. 하루는 평민사 담당 형사가 김혜순에게 물었다. 그가 교정 보던 책의 번역자 전화번호와 주소를 아느냐고. "모른다"고 했더니 마포경찰서로 오라고 했다. 가 보니 다짜고짜 "이게 까불어?" 쌍욕을 퍼붓고 뺨을
골드몽릴게임 일곱 대나 올려붙였다. 김혜순은 이 일로 며칠 결근하면서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뺨 한 대에 시 한 편씩" 7편을 썼다. "드디어 발가벗기고 매 맞고/ 무거운 이야기를 옷인 양 입고/ 몸 위로 가득 글씨를 토하고야 만다"('그곳 2') 무서워서 몇 해가 흐른 후 1988년 펴낸 시집 '어느 별의 지옥'에 실은 6편의 연작 '그곳'이다. 전부 욕설로
야마토통기계 된 한 편은 빠졌다.
"말을 빼앗기는 경험은 내 죽음에 앞서 혀가 먼저 죽는 경험이었다. 혀에서부터 온몸으로 죽음이 퍼지는 경험이었다." 김혜순은 'Tongueless Mother Tongue(혀 없는 모국어)'라는 제목으로 유신 독재 말기에 겪은 고초를 회상하며 이렇게 썼다. 2023년 독일 베를린 시 축제의 키노트 연설문 일부를 이루기
오션파라다이스다운로드 도 한 이 글에는 김혜순 포에틱스(시학)의 정수가 담겼다.
김혜순 시인. 문학과지성사 제공
최근 출간된 김혜순의 '공중의 복화술-문학은 어디서 시작할까?'에는 이 글을 포함해 2020년 가을부터 2년 남짓 문예지 '
백경게임랜드 악스트(Axt)'에 연재한 산문 13편과 같은 시기 국내외 강연과 여러 매체를 통해 발표한 산문 가운데 추린 6편이 묶였다. 목소리, 슬픔, 침묵, 죽음, 다시쓰기, 고백, 고통 등 19개의 열쇳말을 통해 시작(詩作)의 내밀한 과정을 시인이 직접 밝힌 책이다.
"시는 은유가 아니다. 시는 언어로 하는 일종의 수행(닦을 수修가 아니라 짐승
황금성사이트 수獸, 갈 행行)이다. 여자들의 시를 보라." 1979년 처음 시를 발표한 이래 펴낸 15권의 시집을 아우르는 김혜순의 시 세계는 '여성으로서 쓴다'는 자의식 위에 세워졌다. 남자 시인들의 당대 언어, 비유와 상징이라는 관습적 시 문법에 맞서면서다. "시는 목소리다. 아직 언어화되어본 적 없는 것, 언어화할 수 없는 것을 보이고, 들리게 하는 목소리다." 김혜순이 독자들로부터 '이 시가 다 무슨 의미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 이유일 터다.
그에게 "시는 일종의 무언의 대화이고, 다수가 웅얼거리고, 중얼거리고, 요동하는 일종의 소음"이다. "그중에서도 여러 번 내쫓김과 죽임의 세계를 거쳐 온 여성시는 자율적인 주체가 아닌 물질이며 신체인, 다양한 기관들의 응집체 (…) 그 기관의 유령들이 모두 중얼거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해왔다." 시의 목소리에는 주인이 없다. 김혜순은 "내 여성적이고 시적인 욕망은 이렇게 모국어의 공백들 속에서 이행할 때, 비로소 한 편의 시가 펼쳐진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시 쓰기를 '시하다'라고 부른다.
공중의 복화술-문학은 어디서 시작할까?·김혜순 지음·문학과지성사 발행·330쪽·1만8,000원
시인은 책의 서문에 시에 대한 선언 형식의 글을 끼워 넣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한 대목. "시는 이 사회 문화가 만든 망상에 대항한다. 그중에 대표적인 망상이 모성이다. 누가 나보고 모성 좀 가지라 하면 잡아먹고 싶다."
대부분의 여성은 어느 순간 스스로를 여성주의자로 잉태하는 순간을 맞고, 그 뒤에는 스스로의 여성주의를 기르는 시간을 거친다는 게 시인의 말. 여성들의 "스스로를 잉태하고 기르는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구성물인 모성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게 된다. 시인은 모성이라는 말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고 역설한다. "모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모두에게 해당되는, 오히려 스스로를 향한 기름, 돌봄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어야 한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