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세에 퇴직당해 65세에 빗자루 쥔 노년일자리는 있는데 일은 없다는 정책 허점물속에서 차 마시는 상상력 어디로 갔나시니어 공공근로, 획일적 포용 넘어서야

연말, 스산한 거리에서 유독 눈에 밟히는 현수막이 하나 있다. 바로 ‘어르신 공공일자리 모집’ 공고다. 이 문구를 볼 때면 뜬금없게도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2’의 한 장면이 겹쳐 보인다. 물개들이 물속에서 우아하게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는 장면이다. 물속에서 차를 즐기는 발칙한 상상력에 감탄하다가도, 문득 우리는 왜 그런 유연함을 갖지 못하는지 자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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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눈을 돌려 시니어를 바라보자. 왜 어르신은 늘 ‘단순한 일’만 할 수 있다고 단정할까. 왜 그들의 경험과 역량은 제도권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무’(無)가 되는 것인가.
오늘날 어르신 공공근로의 현실은 씁쓸하다. 길거리 쓰레기 줍기, 화단 정비, 단순 신호 안내 등 난이도가 낮은 일에 집중되어 있다. 야마토게임장 ‘문제가 생기면 피곤해진다’라는 행정의 안전제일주의와 관리 편의성 논리가 한몫한다. 그러니 책임이 적고, 매뉴얼화가 쉬우며, 민원 발생 가능성이 낮은 일들이 우선적으로 배치된다. 근로의 목적이 사회 기여나 자기실현 같은 거창한 목적까지는 아니더라도, 결국에는 단순한 자본의 배분이 된다.
이 과정에서 웃픈 촌극도 벌어진다. 어르신들은 사회 사이다릴게임 적 기여나 자아실현보다는 “소일거리 삼아”, “무료함을 달래려”, “용돈이라도 벌려고” 조끼를 입는다. 일의 의미보다 시간을 채우는 수단으로 노동이 소비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심지어 주울 쓰레기가 없어 집에서 쓰레기를 가져가 몰래 공공 봉투에 채워 넣는 어르신이 있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우스갯 소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일하는 척’을 하기 위해 노동을 황금성슬롯 연출해야 하는 상황,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공공근로가 사회적 고립을 완화하고 소소한 소득을 제공하는 순기능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무늬만 일자리’가 반복될수록 사회 전반에는 의도치 않은 불편한 메시지가 각인된다. 바로 ‘노인은 역시 단순한 일밖에 못 한다’라는 낡은 편견의 강화다. 이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또 다른 야마토연타 낙인찍기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더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현재의 시니어 공공근로는 과연 사회적 ‘포용’인가, 아니면 교묘한 형태의 ‘격리’인가. 표면상으로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사회 참여를 유도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시니어를 기존 생산적인 사회 조직에서 분리해 ‘그들만의 리그’에 가두는 구조다. 사회는 어른신의 축적된 지혜를 스스로 고립시키고 있다.
한국 사회 특유의 뿌리 깊은 연공서열과 호칭 문화는 이 격리를 부채질한다. 조직 내에서 나이는 여전히 권력이자 서열이다. 젊은 관리자에게 나이 많은 부하직원은 존재만으로도 부담이다. ‘부리기 어렵다’라는 이유로 숙련된 시니어 인력은 채용 단계에서부터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시니어는 기존 조직의 지혜로운 멘토로 흡수되지 못하고, ‘노인 일자리’라는 별도의 섬으로 밀려난다. 세대 간의 융합이 아니라, ‘따로’, ‘끼리끼리’ 일하게 만드는 사회적 단절이다.



문제는 비단 65세 이상의 노년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에서의 평균 퇴직 연령은 49.4세다. 아직 일할 능력과 의지가 충만한 나이에, 매년 수십만 명이 조직 밖으로 튕겨 나간다. 이들은 시니어 정책의 대상도 아니고, 청년 일자리의 대상도 아니다.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15년을 표류한 끝에, 6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어르신 공공일자리’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은 단순 청소와 화단 정비이다.
40대 후반부터 시작된 경력 단절, 그리고 65세 이후의 역량 하향. 100세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인생의 후반 50년 중 절반은 표류하고, 나머지 절반은 단순 노무로 채워진다. 이 ‘이중 낭비’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물속에서도 차를 마시는 혁신적인 발상이 가능한 시대에, 왜 49세의 퇴직자는 갈 곳이 없고, 65세의 시니어는 쓰레기를 주워야 하는가.
2025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다. 초고령사회는 이제 현실이다. 이는 동시에 우리 사회가 1000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인적자원을 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술자, 관리자, 연구자, 교육자, 자영업자로 수십 년을 살아온 이들이 그 안에 있다.
이 거대한 집단은 ‘연령’이라는 하나의 기준에 묶여 있다. 현역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전문 지식, 기술, 판단력, 리더십은 은퇴와 동시에 평가절하된다. 65세라는 숫자 앞에서 개인의 역량은 일순간에 ‘보호와 관리의 대상’으로 뒤바뀐다.
인구 5분의 1에 해당하는 집단의 역량을 단순 청소나 화단 정리로만 소진시키는 것은 국가적 차원의 인적자원 낭비가 아닐까. 이 단순 노동은 이미 전문 용역이나 지자체 환경 미화 부서가 전담하여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일자리의 양이 아니라 다양성과 질이다. 지자체는 지역의 특성과 개인의 역량을 거의 반영하지 않은 채, 비슷한 청소 업무나 바리스타 교육을 제공한다. 많은 어르신이 교육을 받고 자격을 취득하지만, 정작 배치된 카페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 유동 인구가 적은 지역, 생활 동선과 맞지 않는 공간에 카페가 들어선다. 농촌에는 지속가능 모델을 내건 생활용품 상점이 열리지만, 역시 손님은 드물다. 일자리는 존재하지만 실제로 일할 기회는 많지 않다.
필요를 대신 결정하지 않는 것, 욕구를 처음부터 지우지 않는 것, 지역의 수요와 개인의 역량을 함께 고려하는 것, 이것이 포용의 출발점이다. 1000만 시니어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일부로 작동할 때, 도시의 온도는 달라진다. 획일적 포용이 아닌 개별적 상상력에 기반한 포용만이 우리 사회의 질을 바꿀 수 있다. 차가운 물속에서도, 차는 충분히 따뜻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