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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근 해병의 안타까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반드시 진실을 규명하겠습니다."
지난 7월, 채상병 묘역이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이명현 특별검사는 특검 출범 일성으로 이같이 밝혔습니다. 압수수색 180회, 300여 명 조사, 휴대전화 등 디지털 장비 포렌식 430점. 장장 150일간의 수사 끝에 윤석열 전 대통령 등 33명을 기소하며 대장정을 마무리한 '순직해병' 특검.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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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P격노 있었다"‥이 말 듣기까지 2년



윤석열 정부 내내 숱한 논란을 불러온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시작은 이른바 'VIP 격노'였습니다. 지난 2023년 7월 31일 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릴박스 임성근 전 사단장이 과실치사 혐의자로 적시된 해병대수사단의 초동수사 결과를 보고받은 윤 전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대한민국에서 사단장을 하느냐"고 격노한 뒤 모든 것이 전례 없이 비정상적으로 처리됐다는 게 외압의 뼈대입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VIP 격노설이 제기될 때마다 대통령실 인사들, 군 지휘부 등은 입을 맞춘 듯 "보고도 없었 릴게임하는법 고, 격노도 없었다"며 부인하거나 아니면 아예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어쩌면 '순직해병' 특검은 이 격노 한 마디를 규명하는 데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채상병 순직 사건에 대해 대통령께 보고한 적 없다" <2023년 8월 국회 운영위>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정확히 무슨 주제인지 바다이야기예시 기억은 안 나지만 여름휴가 직전으로 기억하고 저희 앞에서 화를 내신 적은 없다" <2024년 6월 국회 법사위>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 "안보상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답변하기 곤란하다" <2024년 7월 국회 운영위>

그런데 국민 앞에서 격노가 없었다고 증언한 이들이 특검 수사가 본격화되자, 말을 바꾸기 야마토게임방법 시작했습니다.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부터, 이충면 전 외교비서관, 김 전 1차장, 임 전 국방비서관, 조 전 실장 등 당시 수석비서관회의 참석자들이 그날의 진실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한 겁니다.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尹 격노 들었다" <지난 7월 29일 특검 조사에서>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VIP, 회의 말미에 국방비서관 보고에 격노했다" <지난 7월 11일 특검 조사에서>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 "국방부에 격노한 尹 의중을 전달했다" <지난 7월 25일 특검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직후 대통령실 내선 번호인 02-800-7070으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도 윤 전 대통령과의 통화 사실을 특검 조사에서 처음으로 시인했습니다. (이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군에서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말단 하급자부터 고위 지휘관까지 줄줄이 엮어서 처벌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질책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 역시 당시 이 전 장관과의 통화에서 호통을 쳤다고 인정했습니다. 다만 "'이러면 부모들이 어떻게 자식을 군대에 보내겠느냐'는 재발 방지 차원의 질책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법리적 차원, 의도에 대한 해석 차이는 차치하더라도 지난 2년간 권력자들이 은폐해온 'VIP 격노'의 진실을 밝혀낸 점은 특검 수사 중 가장 큰 성과로 꼽힙니다. 이후 경찰로 넘어간 기록 회수, 기록을 재검토한 조사본부에 대한 외압, 박 대령을 향한 항명죄 수사 등 순직해병 특검이 맡은 여러 사건 규명에 단초가 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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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尹의, 尹에 의한, 尹을 위한‥



VIP 격노 이후 비정상적인 일련의 과정은 모두 '윤석열 전 대통령'의 개별적 지시 하에 이뤄졌다고 특검은 결론 내렸습니다.



지난 2023년 8월 2일 박정훈 대령이 이끄는 해병대 수사단은 기록 이첩을 보류하라는 위법·부당한 명령을 뿌리치고, 경상북도경찰청에 사건을 넘겼습니다. 이 소식을 보고받은 윤 전 대통령은 곧바로 조태용 당시 안보실장에게 "이시원에게 말을 해 기록을 회수해오라"고 지시했습니다. 또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여태 사태 파악이나 대응조치를 처리하지 않고 있느냐"며 "사건 이첩에 관한 신속한 대응조치를 취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호통쳤습니다. 군 실무자들은 제대로 된 법적 검토도 없이 윤 전 대통령 의중에 따라 기록을 회수해 왔습니다.
박정훈 대령 개인에 대한 보복성 수사를 지시한 것 역시 윤석열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박 대령이 언론에 나와 수사외압을 폭로해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던 무렵, 박 대령의 입을 강제로 막기로 했습니다. 당시 박 대령 항명죄 수사를 맡았던 김동혁 전 군검찰단장에게 박 대령을 체포하라고 지시한 겁니다. 하지만 군사법원은 이를 기각했고, 이후 군 검찰은 2차례나 더 신병 확보에 나섰지만, 번번이 가로막혔습니다. 법적 요건을 무시한, 무리한 수사임이 증명된 겁니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의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해병대 수사단에 대한 보복성 조치도 감행했습니다. 'VIP 격노 회의' 당일 윤 전 대통령은 임기훈 전 비서관에게 "군사경찰이 제대로 업무를 못한다. 전체 군 수사 인력을 절반 이상 줄이라"는 취지의 지시를 합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국방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각 군 수사단을 799명에서 399명으로 절반가량 감축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군 수사조직 개편계획' 문건을 만듭니다. 하지만 자신들도 문제가 될 것을 알았던 걸까요. "시점상 오해를 줄 수 있다"며 결국 폐기했습니다.
특검은 이른바 '런종섭' 의혹도 윤 전 대통령이 꾸민 계획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자신까지 향하는 공수처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조태용 전 안보실장을 통해 수사외압 사건 핵심 피의자인 이 전 장관을 호주 대사로 도피시키려고 했다는 겁니다. 당시 전임 호주대사 임기가 2년 이상 남았고, 교체할만한 사유도 없었지만, 윤 전 대통령의 지시 하에 외교부와 법무부는 일사불란하게 교체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외교부는 '적격'으로 결정한 상태서 이 전 장관에 대한 공관장자격심사를 진행했고, 법무부는 수사기관인 공수처의 반대와 출국금지 해제요건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이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를 풀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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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덕에 비밀번호 기억나"‥'수중수색' 지시 임성근 구속



윤 전 대통령이 격노한 이유에 이 인물이 있죠. 바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입니다. 임 전 사단장은 지난 2023년 7월 19일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됐다 사망한 채상병이 속한 부대의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부하들은 임 전 사단장의 이른바 '수중수색' 작전 지시 탓에 채상병이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했으나, 사건을 수사한 경북경찰청은 지난해 결국 임 전 사단장을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유족들의 반발로 사건을 넘겨받은 대구지검 역시 1년 넘게 기소 여부를 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특검이 출범했습니다. 임 전 사단장의 과실을 증명할 수 있을지가 이번 순직해병 특검 수사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가늠자였습니다.
임 전 사단장은 특검 조사를 위해 출석할 때마다 기자들에게 적극 항변했습니다. 기소를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었습니다.

임성근 전 사단장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저로부터 수중·수색 지시를 받았는지를 확인한 후 바로 저를 기소해주십시오" <지난 7월 29일 특검 조사를 앞두고>

경찰의 불송치 결정, 업무상 과실치사라는 법적 다툼이 치열한 혐의 등 신병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특검은 임성근 전 사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청구했습니다.
특검은 이 난제를 돌파하기 위해 '증거인멸 우려'를 강조했습니다. 임 전 사단장이 부하들에게 진술을 회유한 정황을 제시한 건 물론,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전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2년여간 까먹었던 스무 자리에 달하는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갑자기 기억해냈다는 게 석연치 않다는 점도 파고들었습니다. 앞서 임 전 사단장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억하지 못했던 휴대전화 비밀번호가 "기적적으로 떠올랐다"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된 날"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결국, 임 전 사단장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됐습니다. 특검은 이후 보강 수사를 통해 임 전 사단장의 작전 통제와 지휘가 채상병 사망의 원인이 됐다고 보고 그를 구속 기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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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희에게 구명 부탁했을 가능성.."‥실체 규명 사실상 실패



임성근 전 사단장이 수사를 피하기 위해 이종호 씨를 통해 김건희 씨에게 구명을 부탁했다는 이른바 '구명로비 의혹'. 윤 전 대통령이 임 전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왜 빼라고 지시한 것인지, 그 동기를 찾는데에도 상당히 중요한 특검의 주요 수사 사안이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실체를 명확히 규명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특검은 이종호 씨와 임성근 전 사단장의 "일면식 없는 사이"라는 주장을 깨는 데 주력했습니다. 처음 이 의혹이 불거진 '멋쟁해병' 단체대화방 참석자들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서는 건 물론, 임 전 사단장과 이종호 씨가 함께 술자리를 했다는 첩보를 받아 수사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미 있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채상병 사건 직후 임 전 사단장과 오랜 친분이 있었던 '멋쟁해병' 송호종 씨가 이종호 씨에게 임성근을 구명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겁니다. 또 임 전 사단장이 지난 2023년 8월 초 윤 전 대통령 부부가 휴가를 보내던 '저도'를 방문한 정황도 파악했습니다. 다만 여기까지였습니다. 이종호 씨와 임 전 사단장의 친분을 입증할 만한 명확한 물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사의 칼날은 김건희 씨에게 닿지도 못하고 끝났습니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개신교계 구명로비' 의혹 역시 실체에 다가가진 못했습니다. 채상병 사망사건 발생 전 기독교계 원로 김장환 목사가 해병대1사단을 방문하고, 윤 전 대통령이 격노한 회의 전후로 김 목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 조태용 전 안보실장 등 주요 공직자와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 등은 확인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참고인 신분의 김 목사가 소환조사를 거부하면서 수사 기간 내 한 차례 진술도 받지 못했습니다. 특검은 재판단계에서 김 목사 등을 증인으로 신청해 통화 내용을 확인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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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수처 겨냥한 전방위 수사‥무리한 기소?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공수처에 고발된 시점은 지난 2023년 9월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수처는 4개월 만에야 국방부에 대한 첫 강제수사에 나섰고, 주요 피의자 조사 역시 지난해 4월 총선이 끝난 뒤에야 유재은 전 법무관리관을 소환하며 이뤄졌습니다.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조차도 공수처에 "왜 이렇게 수사 마무리를 못하고 있느냐"며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특검은 김선규, 송창진 전 공수처 부장검사가 채상병 사건 수사 진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들이 '친윤' 검사로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주요 피의자 소환을 막고, 압수수색 영장 결재를 거부하는 등 직권을 남용해 수사팀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겁니다.
다만 법원은 "범죄 혐의에 대해 사실적, 법리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또 "수집된 증거관계에 비추어 증거를 인멸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고 보이고,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특검의 주장 하나하나를 반박한 겁니다. 무리한 신병 확보 시도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오동운 현 공수처장과 이재승 차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긴 것과 관련해서도 '무리한 기소'라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특검은 오 처장과 이 차장이 "공수처 구성원과 조직 보호를 위해 송창진 전 부장검사에 대한 위증 사건을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며 둘을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공수처장에게 공수처 검사의 범죄와 관련해 대검에 통보의무가 생기는 경우란 단순한 고소·고발이 아닌, 수사를 통해 일정한 수준의 혐의가 인정될 때야 비로소 생기는 것"이라며 "결론을 정해 놓고 사실관계를 꿰어맞춘 기소, 기본적인 법리조차 무시한 '묻지마 기소'"라며 반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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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P격노'와 '부화뇌동'한 권력자들‥'내란 사태'가 떠오른 이유



이번 순직해병 특검 취재를 하며 언뜻 '12·3 내란 사태'가 겹쳐보였습니다. 국민을 섬겨야 하는 고위공직자들이 국민 대신 대통령만을 바라보다 위법·부당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로 15년의 구형을 받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들 모두 계엄에 반대했다면서도 누구 하나 윤석열 전 대통령을 끝까지 말리지 않았습니다.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임을 알고도 윤 전 대통령 의중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국헌문란을 기도한 군 수뇌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VIP 격노'를 듣자 자신이 전날 결재한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는 것을 보류했습니다. 조태용 전 안보실장,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 김태효 전 안보실1차장 등은 VIP를 지키기 위해 격노 사실을 2년간 감춰왔습니다.
재판에 줄줄이 넘겨진 군 지휘부 역시 부화뇌동한 당사자들이었습니다. 신중한 법적 검토 없이 누구하나 전례없는 지시에도 반발하지 않고, 오히려 불이익을 감수하고 소신을 지킨 박정훈 대령을 공격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국회, 군사법원에서 위증하고, 허위공문서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특검 수사기간이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왔습니다. 특검은 수사팀 30여 명을 남겨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법정에 서게 된 이들이 합당한 책임을 지는지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차현진 기자(chacha@mbc.co.kr)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780501_291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