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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다. 이런 삶도 있을 수 있구나, 종교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인물이었다. 소외받고 고통받는 약자들을 위한 그의 일관됐던 실천에 존중과 존경 외엔 달리 보낼 것이 없다.
물론 그의 삶에도 오점이라 할 만한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정권이 자행한 ‘더러운 전쟁’에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가 짊어진 오점이다. 퇴임을 결심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후임자가 되길 바라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프란 마이너스통장 발급기간 치스코 교황)을 바티칸으로 불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인 영화 ‘두 교황’은 이 과거를 굉장히 비중 있게 다룬다.
영화 ‘두 교황’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더러운 전쟁’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
서브프라임‘더러운 전쟁’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르헨티나 대통령(호르헤 라파일 비델라)이 정권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는 모든 자를 잡아들이고 고문하고 죽인 일련의 사건을 일컫는다. 살해당한 사람만 최대 3만 명에 이를 정도로 끔찍한 학살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시 관구장으로서 아르헨티나 예수회를 이끌고 있었다. 예수회는 빈민들을 위해 소상공인창업자금대출자격 봉사하고 그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구조에 대해 비판하길 꺼리지 않았고, 이런 예수회는 군부정권에 “저항세력의 옹호자”로 여겨져 탄압의 대상이 됐다. 실제로 많은 신부와 수녀가 정권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이 이어졌다. 베르고글리오 신부는 이때 예수회 구성원들의 안전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그 방법으로 그가 생각한 것이 정권과의 ‘타협’이었다. 정부전세자금대출 정권이 위협적이라고 여기는 책들을 치우고, 빈민가에서 선교하는 할릭스 신부와 요리오 신부를 찾아가 철수할 것을 요청했다. “예수회를 지키기 위해서”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하지만 신부들은 그의 요청을 거부했다. 예수회의 ‘뜻’을 지키기 위해서, 교회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결국 베르고글리오는 그들을 예수회에서 제명했고, 그 소상공인지원쎈타 들은 체포되고 고문당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보좌 대주교 시절 부에노스아이레스 빌라 21-24 빈민가를 방문해 현지 주민들과 함께 찍은 유인물 사진. 로이터
영화에서 베르고글리오 신부는 자기 입으로 여기까지만 말한다. 탄압에 침묵해 동료들의 삶을 파괴한 자신은 교황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네딕토 16세는 그다음의 일을 이미 알고 있다. 베르고글리오가 예수회 관구장의 권한을 이용해 사람들을 숨겨주고 탈출시켰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교황 즉위 직후 군사독재에 침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을 아꼈고, 교황이 이런 실천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그가 살린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서였다.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베르고글리오는 이렇게 대답했다. 독재정권에서 불가피한 것 아니었냐는 베네딕토 16세의 말에도 베르고글리오는 부끄럽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 당시 일을 떠올리는 베르고글리오의 눈동자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미켈란젤로의 그림 ‘천지창조’ 속 예언자 요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친구여, 내가 어디 있었죠?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셨죠?”
당시 독재정권이 붕괴되고 붙잡힌 사람들이 돌아오자 베르고글리오는 직위해제돼 국외로 보내진다. 사실상 추방이었다. 18년이 흐른 뒤에야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대주교가 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러운 전쟁’의 상처를 잊을 수 없었다. 독재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는 베르고글리오를 향해 신도들이 “당신은 그때 어디에 있었냐”고 소리치며 교회 밖으로 나가버리는 장면도 영화에 담겨 있다.
조직을 지키는 것과 운동을 지키는 것
이 이야기를 보며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가 ‘조직을 지키는 것과 운동을 지키는 것’이라는 제목의 2017년 칼럼에서 소개한 일화를 떠올렸다. 1960~1970년대 일본에서 베트남 전쟁 참전을 거부한 미군들의 탈영을 조직적으로 지원한 ‘자텍’(JATEC·반전탈영미군원조일본기술위원회)의 일화다.
보안이 중요한 일이었다. 누가 자텍 구성원인지, 누가 탈영병인지, 어느 경로로 탈출시킬지 정보가 새면 앞으로의 일도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탈영병을 맞았는데, 자텍 활동가들은 그의 행동거지가 일반 탈영병과 너무 다르다고 느꼈다 한다. 미군이 보내온 스파이일 것 같다는 우려가 조직 내에서 공유됐다. 하지만 자텍 활동가들은 “99% 의심스러워도 1% 진짜 탈영병일 가능성이 있다면 믿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작전을 강행했고, 결국 조직은 무너졌다. ‘조직을 지키는 것’과 ‘운동을 지키는 것’ 가운데 후자를 택한 것이다.
하지만 몇 달 뒤 자텍은 다시 조직됐다고 한다. 신뢰와 책임감이 생명인 운동에서 그 둘을 지켜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앞선 상황에서 조직을 지키기로 결정했다면 그 어떤 탈영병도 자텍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전보다 운동이 더 커졌다. 각지에서 자생적인 자텍이 등장하면서 전국적인 반전운동으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후지이 다케시는 이렇게 썼다. “자텍의 경험은 조직의 파괴가 운동의 끝이 아니며 조직을 지키려는 행위가 오히려 운동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베르고글리오는 예수회를 지켰고, 할릭스와 요리오는 예수회의 뜻을 지켰다. 아르헨티나 예수회도 자텍의 경험과 같은 경험을 했을까. 그랬을 것이다. 할릭스와 요리오가 예수회의 뜻을 지켜 그 신뢰를 지켰기에, 대주교가 되어 돌아온 베르고글리오가 그들의 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영화에서 베르고글리오는 이것을 “속죄”라고 표현한다.
베르고글리오가 자신의 타협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애썼다면 예수회는 어떻게 됐을까. 할릭스와 요리오가 타협한 베르고글리오를 쫓아내는 데 골몰했다면 어땠을까. 조직을 지키기로 한 자의 속죄와 운동을 지키기로 한 자들의 자비 속에서 베르고글리오는 나아갔고, 2013년 3월 마침내 교황에 즉위했다.
자신의 죄를 성찰하는 사람들
베르고글리오의 고백을 모두 들은 베네딕토 16세는 말한다. “당신은 신이 아니에요.” 그러고는 예수의 성화를 가리킨다. “하지만 저분이 계시죠. 그러니 믿으세요. 자신이 설교하는 자비를요.” 이어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고글리오에게 성사를 해준다. 자신을 향한 용서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베르고글리오와 그런 그에게 끊임없이 위로를 전하는 베네딕토 16세의 대화가 흥미롭다. 이 관계가 뒤집히는 순간 용서는 발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고보면 이 영화의 팽팽한 구도는 베네딕토 16세 역시 자신의 죄를 성찰하기에 성립한다. 퇴임을 결심하게 된 여러 계기 가운데 하나가 ‘바티리크스’, 즉 베네딕토 16세 최측근 집사가 기밀문서를 외부로 유출한 사건이다. 성직자들의 뇌물 비리, 바티칸 은행의 돈세탁 혐의 등이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고. 이로 인해 교황청 내에서 고립돼 건강 문제가 악화됐다. 또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문에 대해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 속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러니 더는 교황으로서 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베르고글리오와의 오랜 대화 끝에 베네딕토 16세는 이렇게 말한다. “음성을 듣지 못했던 이유는 주님이 날 버려서가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인 것 같소. ‘가거라, 내 충성스러운 종이여.’”
속죄의 길을 걷는 베르고글리오, 내려옴으로써 길을 찾은 베네딕토 16세. 우리는 죄를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고, 내려오는 순간 다시는 올라갈 방법이 없을 것이라 믿는다. 끊임없는 정당화와 합리화, 타협은 그러한 확신에 기인하는 법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두 교황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또 다른 길이 열려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길은 속죄 없는 타협, 자리를 지키는 탐욕이 향하게 될 길보다 더욱 밝고 넓고 깊을 것이다.
영화 ‘두 교황’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름을 따온 성프란치스코는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해야 하는 일부터 하라. 그다음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그러면 어느새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꼭 이 말처럼 살았다. 해야 할 일, 속죄를 했다. 할 수 있는 일, 실천을 했다. 그렇게 교황이 되어 전세계를 돌며 불가능한 일들을 해냈다.
성프란치스코에 대해 이런 일화도 있다. ‘두 교황’에서도 베네딕토 16세가 언급하는 이야기다. 어느 날 신이 성프란치스코에게 ‘무너져가는 나의 교회를 고쳐라’라는 음성을 보냈다. 그러자 성프란치스코는 벽돌과 회반죽을 사서 교회 건물을 말 그대로 ‘고쳤다’. 신의 뜻이 단순히 건물을 수리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교회의 정신을 바로잡으라는 의미였다는 사실을 프란치스코는 뒤늦게 깨달았다.
무엇이 우리를 구원하는가
베네딕토 16세는 이 일화를 농담처럼 언급했지만, 나는 이 일화가 무척 마음에 든다. 많은 단계를 건너뛰어 거대한 목적으로 곧장 나아가는 대신 당장 눈앞에 놓인 작은 일부터 겸손하게 하나씩 해치워나가는 우직한 부지런함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베르고글리오도 그렇게 했다. 바로잡을 수 있는 것부터 바로잡으며 그저 가만히 성찰했다. 선종한 교황의 삶을 돌아보며 그런 배움을 얻는다.
강남규 ‘토론의 즐거움’ 멤버·‘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영화 ‘두 교황’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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