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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와는 달리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어 즐거워요."
지난달 11일 일본 지바현 소재 대형 전시장 마쿠하리 멧세에서 만난 도쿄 거주 직장인 모리야마 유아(가명·23)는 며칠 전 받은 첫 월급만 기다리며 한 달을 버텼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CJ 케이콘 재팬 2025'에서 최근에 빠진 한국 아이돌 그룹 '투어스' 굿즈를 살 날만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마쿠하리 멧세에 도착한 지 1시간도 안 돼 멤버들 사진을 장식할 굿즈에만 1만 엔판타스탁
(약 9만4,000원) 넘게 썼다. 하지만 많은 돈을 쓴 데 대한 스트레스는 없다며 즐거워했다. 모리야마는 "투어스 덕에 돈 버는 재미가 있다.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선 모리야마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에 돈을 쓰는 소비 활동을 '오시카쓰'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을 양음무료주식방송
정도로 좋은 사람이나 물건을 나타내는 단어 '오시'와 활동을 뜻하는 일본어 '카쓰도'를 합친 용어다.
오시카쓰 인구 80% "돈 작년보다 더 써"
'CJ 케이콘 재팬 2025'을 보러 온 한 여성이 지난달 11일 일본 지바현 지바시 마황금성 게임 다운로드
쿠하리 멧세에서 한국 아이돌 그룹 제로베이스원의 멤버별 캐릭터 인형으로 꾸민 이타밧꾸를 보여주고 있다. 지바=류호 특파원
오시카쓰를 두고 '아이돌 응원에 너무 유별나다'는 부정적 인식도 없지 않다.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만화·애니메이션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오타쿠'와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이데일리tv
팬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에 '이타밧쿠'라는 이름이 붙은 게 이를 보여준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사진과 캐릭터 상품 등으로 가득 채운 투명한 가방인 이타밧쿠는 일본어로 아프다의 '이타이'와 가방 '밧쿠'를 합친 오시카쓰 용어다. '못 봐 줄 만큼 희한한 가방'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누가 더 화려한 이타밧쿠를혜인 주식
들고 다니는지 경쟁한다. 팬 입장에선 아이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증명하는 도구로, 다른 팬에게 자신의 활동을 뽐내는 계급장 같은 존재가 됐다. 이타밧쿠의 사회적 의미가 달라졌듯, 이제 오시카쓰는 MZ(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잘파(1990년대 중반~2000년대 후반 출생)세대를 움직이게 하는 사회·경제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여성 연령별 오시카쓰 활동 인구 비율 변화. 그래픽=송정근 기자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오시카쓰 경제'를 올해 트렌드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오시카쓰 활동을 분석하는 오시카쓰소켄(종합연구소)이 지난 1월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시카쓰 활동 인구는 약 1,384만 명으로, 지난해 1월 조사보다 약 250만 명 증가했다. 가장 많이 늘어난 연령은 30대 초반(31~34세) 여성(오시카쓰 활동 인구 비율 30.4%)으로 8.2% 상승했다.
전체 활동 인구의 연간 총지출 규모는 약 3조5,000억 엔(약 33조1,300억 원)으로, 1인당 연간 약 25만 엔(약 236만 원)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약 80%가 "1년 전보다 쓰는 돈이 더 늘었다"고 답했다. 광고·마케팅 업체 하쿠호도가 오시카쓰를 분석한 보고서 '오시노믹스레포트'에 따르면 오시카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가처분소득(수입 중 세금·사회보험료 등을 제외한 뒤 실제 쓸 수 있는 소득)의 37%, 일하는 시간을 뺀 가처분시간의 39%는 오시카쓰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이은 급여 상승·SNS 소통 방식 영향도
한국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 일본 팬들이 3월 29일 도쿄 시부야 소재 쇼핑몰 시부야109에 마련된 트와이스 팝업 매장에서 굿즈를 사고 있다. 도쿄=류호 특파원
시장 규모가 커진 건 최근 몇 년간 MZ세대의 급여 상승이 한몫했다. 내각부에 따르면 지난해 29세 이하 임금 상승률은 4.2%로, 30대(3.6%), 40대(2.7%), 50대(1.0%)보다 높았다. 닛케이는 "젊은 층의 오시카쓰를 지탱해 온 건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높은 임금 인상률로, 신입사원 첫 월급이 30만 엔(약 285만 원)이 넘는 기업도 늘고 있다"고 짚으며 오시카쓰 활동 사례를 소개했다. 직장인이 된 지 2년 된 20대 남성 A는 좋아하는 게임과 캐릭터 구매에 6개월간 20만 엔(약 192만 원)을 썼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3년 된 20대 여성 B는 아이돌의 영상이 담긴 DVD와 아이돌을 캐릭터로 만든 인형을 사는 데 매달 평균 10만 엔(약 96만 원)을 지출한다고 전했다. A, B 모두 "월급이 오른 걸 생각해 쓰는 비용을 늘렸다"고 말했다.
MZ세대는 다른 연령층보다 오시카쓰에 유독 많은 돈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닛케이가 지난 3월 오시카쓰 관련 조사를 실시했는데, 활동 인구 중 30대 이하는 연간 약 20만 엔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대의 연간 지출액(약 7만 엔)의 세 배나 됐다. 닛케이는 "MZ세대는 옷이나 화장품 등 자신을 꾸미는 비용을 줄이는 대신 오시카쓰에는 쓰는 비용을 늘리는 경향이 해를 거듭할수록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젊은 층이 많은 돈을 쓰는 건 단지 늘어난 급여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MZ세대 특유의 소통 방식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일종의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셈이다. 히로세 료 닛세이기초연구소 연구원은 "오시카쓰를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활동을 인정받으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어떤 굿즈를 구입했는지, 어떤 이벤트에 참여했는지 SNS를 통해 보여주려 노력한다"고 평가했다.
콘서트 취소 걱정 없게 보험 상품도
아이돌 그룹 투어스가 4월 21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앨범 발매 쇼케이스에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오시카쓰 경제는 단순히 굿즈 구매에만 그치지 않는다. 숙박과 교통, 지역 식음료 구매 등 지출 활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한국 아이돌 그룹 '제로베이스원'을 응원하기 위해 규슈 후쿠오카현에서 지바를 찾은 30대 주부 아베 나쓰오(가명)는 이번 2박 3일간 오시카쓰 여행 경비로 약 10만 엔(약 96만 원)을 잡았다. 비행기 2만 엔, 호텔 2박 숙박비 3만 엔, 굿즈 구매 2만 엔, 기타 비용 3만 엔가량 들 것으로 생각했다. 아베는 "오시카쓰는 나를 일하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활력소"라며 "콘서트가 끝나면 제로베이스원 팬미팅을 통해 만나 친해진 친구와 지바 이곳저곳을 구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일본을 찾아 돈을 쓰게 하는 미끼 역할도 한다. 이날 마쿠하리 멧세에서 만난 30대 중국인 치아키(가명)는 제로베이스원을 보기 위해 일주일 휴가를 내고 중국 상하이에서 날아왔다. 그는 "3년 전 일본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오시카쓰에 빠졌다"며 "지난해 일본을 떠난 뒤 반년 만에 온 만큼 교토 여행을 가려 한다. 온천과 료칸을 예약해 뒀다"고 말했다.
'오시카쓰 보험'까지 등장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서 팬들은 지방 콘서트·팬미팅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도쿄에 사는 사람들이 남쪽 후쿠오카까지 내려가거나 해외에 같이 따라가는 '원정 활동'이라는 단어도 나왔다. 이들을 겨냥한 게 바로 오시카쓰 보험이다. 기상 악화나 연예인의 건강 문제로 갑작스럽게 콘서트, 사인회, 팬미팅이 취소될 경우 보상해 주는 상품이다.
오시카쓰 관련 뉴스를 다루는 오시코코에 따르면 오시카쓰 활동 인구의 약 20%는 지방 콘서트·팬미팅이 갑자기 취소된 일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중 약 30%는 교통비, 숙박비로 약 3만 엔(약 28만5,000원)에 달하는 취소 수수료를 지불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점을 눈여겨본 보험 업체 마이슈랑스는 2020년 오시카쓰 보험 상품을 내놨고, 지난해 연말 기준 누적 계약 건수가 100만 건을 넘어섰다.
"취미 넘어 하나의 경제·문화 현상 돼"
아이돌 그룹 아일릿이 지난해 10월 21일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앨범 공개회에서 수록곡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을 노린 여행 상품도 나오고 있다. 교통 업체 JR도카이는 2021년부터 '오시카쓰 여행'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정 아이돌의 공연을 보러 가는 팬들만 이용하는 '전용 열차'를 운행하는 관광 상품이다. 같은 아이돌을 응원한다는 공통의 관심사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히로세 료 연구원은 "MZ세대는 상대방과의 공통점을 찾아 관계를 맺으려는 경향이 강한 세대"라고 설명했다.
JR도카이는 여행 상품 수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 기획한 상품 수는 약 100건, 신청 인원은 전년의 두 배 이상인 약 1만 명으로 늘었다. 다다 나쓰호 오시카쓰소켄 소장은 "오시카쓰 활동 인구 중 30대 초반 남녀 모두 지난해보다 크게 증가한 게 눈에 띈다"며 "오시카쓰가 일상생활의 새로운 가치관으로 인식되고 있고, 단순히 취미 활동을 넘어 문화·경제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바= 류호 특파원 h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