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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것은 성폭행 가해자인 브렛 캐버노가 자신을 피해자의 자리에 올려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블래시 포드의 위증 때문에 자신과 가족의 삶이 무너져내렸다고 말했다. 이후 다른 여성 세 명의 비슷한 증언이 나왔지만 캐버노의 연방대법관 임명을 막지 못했다. 가해자가 피해자재테크상담
    의 언어를 전유함으로써 더 많은 권력을 획득한 사례다.



    2018년 9월27일(현지시간) 브렛 캐버노 당시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가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법사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주식박사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는 우리 시대 ‘피해자성(victimhood)’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살핀 책이다. 저자인 릴리 출리아라키 런던정치경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2024년 출간된 이 책으로 국제커뮤니케이션학과 최고단행본상을 받았다.
    피해자성은 타인에 의해 고통이나 억압, 차별이나 폭력을 당한 상은주식
    태를 가리킨다. 흔히 고통받는 피해자라고 하면 여성이나 어린이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이들을 떠올리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피해자성이 권력자들에 의해 무기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백인 남성 엘리트인 캐버노는 “자신을 고통받는 자로 연출하여 여성 피해자의 증언에 흠집을 내고 그 동기에 의심이 쏟아지게” 만들었다.
    저자는 근대 이후 주식관련책
    발생한 대규모 전쟁에서 피해자성이 어떻게 재현됐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서구 사회의 피해자성이 본래부터 강자에게 유리한 담론이었음을 드러낸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전쟁으로 인한 개인의 고통과 피해에 관한 지배적 서사는 거의 언제나 비백인이나 여성 등 약자의 고통을 지우고 강자인 백인 남성의 피해를 부각했다.
    남북전쟁과 양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증권소식
    쟁 등 산업화 이후 전쟁에서는 많은 남성 군인들이 사망하거나 살아남았더라도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었다. 정신의학자들은 이들의 고통을 분석하기 위해 셸 쇼크,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같은 개념들을 고안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취급은 차별적이었다. 남북전쟁의 경우 전사한 백인 군인들은 남군과 북군을 막론하고 국가 통합을 위한 희생자로 기려졌지만 “흑인 군인들의 죽음은 인정도, 추모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전쟁 이후에도 흑인 시민들은 여전히 배제, 굴종, 린치, 박해에 시달렸다”.



    1000만명 이상의 군인이 사망한 1차 세계대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사회는 영국 군인들의 정신 이상 증세에 대해서는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지만 영국군 부대에서 싸운 인도인 군인들에 대해서는 “셸 쇼크가 전무했다”는 입장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흑인 군인들을 ‘정신력이 허약하다’고 치부했다. 백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트라우마’라는 의미가 부여됐지만 유색인의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무대로 한 ‘안보전쟁’은 더욱 기만적이었다. 미군은 이들 지역에서 각기 탈레반과 사담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민중을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그러나 교전 중 우발적으로 아프간 소년을 사살한 미군의 개인적 고통은 ‘도덕적 상해’(도덕적 신념이나 윤리적 가치관을 심각하게 위배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느끼는 심리적 고통)라는 이름으로 연민의 대상이 된 반면, 해당 소년의 이름이나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다. 가해자 미군의 고통만이 가시화된 것이다.
    저자는 “백인 남성의 고통에 이렇게 특권을 부여하고 참혹한 폭력과 치유의 순환 고리가 활성화된 덕분에 남성들은 ‘증언의 자격’이라는 유산을 부분적으로라도 부여받았다”고 지적한다. “덕분에 고통을 주장해봤자 역사적으로 인정받은 적이 별로 없는 여성들과는 달리, 남성들은 고통과 고난을 호소할 때 신뢰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여성들과 유사하게 비백인 자아들은 발언할 권력도 갖지 못하고 그들의 희생, 고통, 상실을 인정·추모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싸우고 죽는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같은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이처럼 강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피해자 서사의 메커니즘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인물들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존슨 전 총리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저소득층의 고통을 외면하고 마스크 의무 착용에 불만을 느낀 극우 세력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고통의 플랫폼화’가 전개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우려를 제기한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여성들의 ‘미투’ 운동의 진지이기도 하지만, “페미니즘을 성인 남성과 소년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남성 혐오 운동으로” 묘사하는 남초 커뮤니티들이 즐비한 공간이기도 하다. “바이럴리티(확산성)를 추구하는 플랫폼의 성향은 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 주장들이 어떤 폭력의 맥락에서 제기되는지는 묻지 않은 채 이미 인기 있는 고난의 주장들을 계속 증폭할 뿐이다.”
    저자의 주장은 권력자들이 스스로를 역차별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한국에서도 시의성을 갖는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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