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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안 본 지 한참 됐어. 나는 드라마 볼 때만 TV 봐.
(서울=뉴스1) 김민재 김종훈 기자 = 60대 A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온 A 씨는 14일 이른 아침 한남동을 찾았다. 한 손에는 성조기를, 다른 한 손에는 '스탑 더 스틸(Stop the Steal)'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그는 지상파 방송이 모 1금융권 두 '가짜뉴스'라며 집회 현장을 찾은 기자들에게 소리 질렀다.
이날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제루터교회 앞에선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다. 간밤에 내린 눈비와 미세먼지 탓인지 한남대로의 아침 공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였으면 맨눈으로 보였을 인근 상가 건물의 간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촬영 피디수첩부산저축은행 기자 쫓아내고 '우리 편'인지 검증…기자 앞길 막아서기도
집회는 언론을 때리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무대에 오른 발언자와 사회자는 연신 "좌파와 언론은 한패다", "언론이 주사파에 장악당했다"고 외쳤다. 연단 위의 사람이 말끝에 힘을 주어 문장을 끝낼 때마다 참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단기연체대출 기자 신분을 밝히자 참가자들은 '우리 편'인지를 물었다. 부정선거 주장하는 영상을 보던 40대 여성은 명함을 요구하며 "좌파 아니야? 우리 편인 걸 확인해야 해"라고 말했다. 언론을 왜 믿지 않냐고 묻자 '명백한 사실'인 부정선거를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장 취재진을 쫓아내기도 했다. 오전 9시 20분쯤 종편 방송 촬영 기자가 국민행복기금 햇살론 집회 현장을 찾았다. 사회자는 취재를 거부한다며 현장에서 나가라고 말했다.
한 중년 남성은 철수하는 촬영 기자를 쫓아오며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보도를 합리적으로 해", "가짜 방송 꺼져"라고 소리 질렀다.
이들 대부분은 언론의 집회 규모와 부정선거 관련 보도가 불만족스럽다고 했다.
종편 방송 개인회생대출신청 촬영 기자에게 항의하던 한 노년 남성은 "주사파에 장악당한 국내 언론이 집회 인원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최 측 추산 인원은 턱없이 많고 경찰은 인원을 잘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하자 "하여튼 언론 다 안 믿어. 우리는 다 유튜브로 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고는 자리를 뜨는 촬영 기자를 쫓아갔다.
루터 교회 앞에서 경광봉을 들고 담배를 피우던 중년 남성은 기자의 앞길을 막아서며 부정선거 사실을 인정하라고 압박했다. 답변을 거부하자 그는 "민경욱과 황교안이 부정선거가 있다잖아요. 그러면 무조건 부정선거 있는 거예요"라고 목소리를 키웠다.
탄핵 정국과 별개로 한국 언론에 실망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20대 남성 B 씨는 "요새 들어 언론을 경계하기 시작한 건 아니다"라며 "몇 년 전에 인터뷰했는데 발언 취지와 다르게 내용을 끼워 맞춰서 실망했다"고 설명했다.
공수처와 경찰의 윤석열 대통령 2차 체포영장 집행 시도가 임박한 가운데 1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2025.1.14/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자체 제작 신문, 외신은 환영…국내 언론 불신이 낳은 '풍선효과'
언론을 향한 적대감은 여러 '풍선효과'를 낳았다. 국내 언론을 밀어냈지만 정보 수요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먼저 '믿을 만한 매체'라는 이름표는 외신으로 넘어갔다.
오전 11시 40분쯤 손에 태극기를 든 무리가 지나가는 촬영기자 카메라에 적힌 로고를 보려고 걸음을 늦췄다. 외국 통신사 기자인 걸 확인하자 "외신에는 잘 해줘야 해"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무대 사회자는 현장을 찾은 AP통신 촬영 기자를 보고는 "외신은 다 오케이죠"라며 영어로 "베리 굿. 엑설런트(Very good, Excellent)"라고 말했다.
직접 신문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집회 현장 곳곳에는 '히스 타임스(His Times)'라고 적힌 신문 형태의 전단이 보였다. 전단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유튜브 채널의 섬네일을 담고 있었다. 창간일은 올해 1월 10일이었다.
집회 참가자 열 명 중 한 명은 이 전단을 유심히 바라봤다. 루터교회 앞에서 전단을 읽던 60대 후반 C 씨는 "다 아는 내용이긴 한데 정리가 잘돼 있으니 읽어봐도 좋다"고 말했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말을 걸자 뒤로 물러서며 "기자는 믿지 않는다"고 경계했다. 그는 "광화문 집회에는 한 시간에 20만~30만명 정도 모이는데 그러면 누적 인원이 100만을 훌쩍 넘긴다"며 "언론들은 이런 표현을 아예 안 쓴다"고 주장했다.
1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부정 선거를 주장하는 전단을 들여다보고 있다. 2025.01.14/뉴스1 ⓒ 뉴스1 김민재 기자
이들에게 주류는 '유튜브'였다. 탄핵 반대 집회를 생중계하는 유튜브 '신의 한 수' 채널 구독자는 162만명이다. 이날 오후 4시 40분 기준 8000여 명이 탄핵 반대 집회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한 여성은 관저 검문소를 촬영하는 취재진 모습을 라이브 방송으로 송출했다. 그는 휴대전화에 대고 "언론사들 대신 제가 진짜 진실을 보여드릴게요"라고 말했다.
다만 필요한 때에는 국내 언론을 인용했다. 대부분 수사 당국의 동향을 알리거나 집회 분위기를 선전하는 경우였다.
사회자가 낮 12시쯤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한 청년 인터뷰를 담은 기사를 화면에 띄웠다. 그러고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판이 바뀌었다"고 선언했다.
1시쯤에는 주요 일간지가 보도한 경호처 차장 체포영장 발부 소식을 언급하며 "경찰이 내란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에 야유하던 집회 참가자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minja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