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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로 한가운데에 핀 들꽃이었다. 바로 옆을 보면 화단에 꽃이 모여 있으나 나는 갈 수 없다. 홀로 남겨져 사람들의 발길질을 견뎌내야 한다. 그게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른 채로.”
레즈비언(여성에게 정서적·성적 끌림을 느끼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여성)인 세하는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던 12년 동안 마음이 이끌리는 친구가 생겨도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18살이던 지난해 쓴 글 ‘학교와 나, 그리고 배움’에서 “(연애 상대방이) ‘나를 여자애로서가 아닌, 남자애 대신으로 여기 보험대출이자율 는 거라면 어쩌지?’ 하는 불안”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을 ‘도로 한가운데에 핀 들꽃’에 빗댄 세하의 글은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지원센터 ‘띵동’이 지난해 6월 ‘학교와 나, 그리고 OOO’란 주제로 처음 연 퀴어청소년 무지개백일장에서 무지개상을 받았다.
띵동이 최근 온라인 누리집에 공개한 퀴어청소년 비과세급여 무지개백일장 수상작을 보면,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며 겪은 혼란과 이를 가족·친구 등에게 알리는 커밍아웃 과정에서 겪은 갈등 등을 주된 소재로 글을 썼다. 세하와 동갑인 류애는 ‘학교와 나 그리고 정체성의 퍼즐’에서 “당연히 내 사랑의 대상은 남자뿐일 거라 생각”했지만 “40명이 넘게 찍힌 단체 사진에서도 대출상담사 자격증 한 번에 얼굴을 찾을 수 있었”던 동성 친구를 짝사랑한다는 걸 깨달으면서 퍼즐 조각 맞추듯 정체성을 찾게 됐다고 돌아본다.
트랜스젠더인 16살 메로는 동네 미용실을 찾아 “이모 저 머리 잘라주세요!”라고 처음 말한 날을 떠올리며 ‘트랜지션(지정 성별의 외모, 신체 특징, 성 역할 등을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춰 변화시켜나가는 과정)’을 썼 새희망홀씨 서류 다. “머리카락이 이렇게 무거웠을 줄을 몰랐다.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게 얼마나 가볍고 후련하게 느껴질지도 몰랐다.” 메로는 “그날 나는 처음으로, 창문이 아닌 거울로 ‘배수현’이 아닌 ‘배도현’의 얼굴을 보았다”고 적었다. 도현은 ‘뒤돌아보지 말고 나만의 길을 걷자’는 바람과 다짐을 담아 그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메로와 동갑인 별은 아파트담보대출한도 ‘소음공해’란 글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혐오를 소음 공해에 빗댔다. “처음엔 그저 문을 두드리는 듯한, 조금 성가신 소리”였던 소음은 이내 “날카로운 포크로 그릇을 마구 긁어대는 소리”가 됐다. 별은 “그까짓 소음쯤이야 그냥 이 악물고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층간소음으로 살인까지 일어났다는 뉴스 기사도 보이니 소음의 힘은 감히 무시할 수 없(었)다”고 돌아봤다. 별은 자신이 어렵사리 털어놓은 성적 지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부모 덕분에 찾은 마음의 안정에 대해 이렇게 썼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엄마 아빠께 말했다. 엄마 아빠는 이 소음들을 환청 취급하지 않았고, 그 뒤로 (중략) 난 조용한 우리 집에서 내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띵동은 오는 4월 말 퀴어청소년 무지개백일장을 열 예정이다. 정민석 띵동 대표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경우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누군가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등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안전한 공간에서의 글쓰기를 통해 더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가 고민을 털어놓는 것을 넘어 자신을 긍정하는 경험을 갖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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