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이름난 꽃인 진달래 무궁화를 조선의 이름난 꽃이라 하지만, 사실은 두견화라고도 하는 진달래가 조선을 대표하는 꽃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진달래는 색과 모양이 아름답고 화려하며 향기가 좋을 뿐 아니라 조선 어느 곳이든지 없는 곳이 없다. 여러 사람이 가장 널리 알고 가장 애착하는 마음을 가지는 까닭에, 조선에서 꽃이라고 하면 누구나 먼저 진달래를 생각하게 된다.
조선의 봄에 만일 진달래가 없다면 달 없는 깜깜한 밤이나 태양 없는 극지방보다도 더 쓸쓸하고 적막하여 그야말로 ‘봄이 왔어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조선 사람으로 외국에 가서 봄
바다이야기릴게임 을 맞이할 때, 먼저 진달래가 보고 싶고, 또 진달래를 본다면 몸은 비록 외국에 있어도 마치 고국에 돌아온 것과 같이 반가운 생각이 난다. 그것은 그냥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누구나 실제로 느끼는 일이다.
조선 사람의 진달래에 대한 애착심은 결코 일본 사람의 ‘벚꽃’에 대한 애착심에 못지않다. 그것은 여러 가지로 설명하지 않아도, 예로부터
한국릴게임 모든 사람의 많은 시와 노래를 가지고도 족히 설명할 수 있다. 조선에서 진달래 명소는 아마 영변의 약산 동대를 첫째로 손꼽을 것이다. 약산 동대의 진달래는 물론 꽃이 좋기도 좋지만, 그보다 “영변의 약산 동대- 진달 화초가 만발하였다…”라는 노래로 인해 널리 사람들에게 알려진 까닭이었다. 그것은 마치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은 제멋에 지워서 척 늘어졌다…”라
무료릴게임 는 노래가 있기 때문에 능수버들 한 그루도 없는 오늘날까지도 천안 삼거리 하면 으레 능수버들의 명소로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 강원도에는 원래 산이 많은 까닭에, 어떤 옛사람의 시에 ‘주위의 푸른 산이 모두 진달래라네’라는 말과 같이 가는 곳마다 진달래가 많다. 그러나 내가 본 바로는 춘천 삼악산의 진달래가 가장 볼만한 것 같다.
모바일바다이야기 삼악산은 원래 암석으로 된 웅장하고 큰 산으로 한강 상류에 있으며, 잡목이 무리지어 자라는 가운데 진달래가 특히 많다. 큰 것은 높이가 10여 척 정도 되는 나무도 있는데, 꽃이 필 때면 산 전체가 모두 꽃밭이 되고 그것이 또 강에 비치면 강 또한 꽃강으로 변하여, 위아래가 온통 꽃의 세계로 변하여 천하에 드문 멋진 경치를 드러낸다. 다만 아직까지 교통이
바다이야기#릴게임 불편한 까닭에 널리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유감이다.
영유의 배꽃, 춘천 배꽃 황주, 봉산, 함흥은 예로부터 참배가 생산되는 곳이니까, 배꽃이 흔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근래에는 삼량진, 울산, 독도(고양), 수원을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 과수원이 해마다 늘어나게 되니 배꽃도 또한 여기저기 해마다 늘어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유명하기로는 평원군 영유의 이화정 배꽃이다. 그것은 꽃이 좋다는 것보다도 임진왜란 때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선조 대왕이 의주로 피난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곳의 역참에 머물렀을 때, 배꽃을 보고 특히 사랑하여 그곳을 ‘이화정’이라 이름 짓고, 배나무에 옥으로 만든 관자(貫子)를 붙여주어 영감의 칭호를 받게 된 까닭으로 이름이 난 것이다. (영유 지역에는 또 우물까지도 옥관자를 붙인 것이 있다) 그곳에는 지금까지도 배꽃이 상당히 많아서 조선 일대에서는 누구에게나 칭찬을 받고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하지만, 조선 전체를 통해 배꽃이 많기로는 춘천의 우두평야와 ‘무른담이’일 것이다. 상중하 세 개 마을 수백여 호 집집마다 배나무가 다섯 그루에서 열 그루까지 있다. 꽃이 필 시기가 되면 온 마을이 모두 배꽃 세상으로 변하여 한눈에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멀고 넓은 평야(주위 약 삼십 리의 평야)가 마치 길고 넓은 큰 강물에 밝은 달이 조용하게 흐르고, 삼천 대지에 흰 구름이 희고 순수하여 실로 화려하고 깨끗하다. 어떤 시인이 ‘배꽃 피는 삼월이면 우두가 희다’라고 하고, 또 춘천민요에 ‘무른담이 처녀는 참배 장사로 나가니 얼굴이 희어서 배꽃이라…’ 한 것도 이것을 기리어 칭송한 것이다.
▲ 1973년 동방제사공장 풍경. 춘천문화원 제공
해설 차상찬의 글을 읽다 보면, 꽃은 식물에 머물지 않고 한 고장의 기억과 한 시대의 정조를 머금은 언어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보기에 조선을 대표하는 꽃은 무궁화라기보다 오히려 진달래에 가까웠다. 어디서나 피고, 누구나 먼저 떠올리며, 타향에서 보아도 곧장 고향의 봄을 불러오는 꽃. 진달래를 보는 마음이 곧 조선의 봄을 보는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춘천은 참으로 각별한 자리에 놓인다. 차상찬은 강원도 산천 어디에나 진달래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삼악산의 진달래가 가장 볼 만하다고 말한다. 바위산의 웅장한 골격 위에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고, 꽃이 한창일 때면 산 전체가 꽃밭이 되며, 그 빛이 강물에 비치면 강 또한 꽃강으로 변한다고 했다. 그것은 단순한 봄 경치가 아니라, 어린 시절 고향인 자라우 마을에서 봄마다 강 너머로 보았던 삼악산이 품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진달래는 전국 산야에 널리 피어 봄의 도래를 알리고, 삼짇날과 화전놀이 같은 세시 풍속 속에 스며들었으며, 마침내 한국적 정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차상찬의 문장이 설득력을 갖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에게 진달래는 백성의 정서와 풍속과 노래가 함께 얹힌 봄의 표지였다. 그 표지가 춘천에서는 삼악산이라는 풍경 위에 가장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 글에서 말하는 꽃의 아름다움은 진달래에서 그치지 않는다. 차상찬은 조선 전체를 통틀어 배꽃이 많기로는 춘천의 우두평야와 무른담(사농동 옥산포 일대)이 으뜸이라 했다. 우두의 봄은 피는 것이 아니라 번져 갔고, 배꽃은 들판을 덮는 흰 숨결처럼 마을 전체를 감쌌을 것이다.
1927년 4월, 차상찬이 썼던 ‘춘천의 봄소식은 어떠한가’라는 글을 겹쳐 읽으면 풍경은 더욱 생생해진다. 그는 이 글에서 금병산의 철쭉, 삼악산의 진달래, 청평산의 동백꽃과 더불어 우두의 배꽃은 춘천 봄 풍경의 한 축을 이루었음을 강조했다. 또한 형인 차상학이 춘천 유수영에서 장원한 시구를 빌어와 ‘배꽃 핀 삼월이면 우두벌이 하얗다’고 강조한다. 윗글에서 언급한 ‘어떤 시인’은 손병희가 ‘당대의 명문장가’라고 칭송했던 ‘차상학’이었던 셈이다. 형과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우두의 풍경은 먼 마을과 가까운 마을 모두 환한 달빛이 정결하게 그득하고, 매우 번성하고 화려했다 말하며, 춘천에 있었다는 고대 국가인 ‘맥국’의 흔적까지 노래한다.
더구나 차상찬의 ‘조선민요집’에 실린 ‘춘천 장사타령’에서는 그 꽃을 단지 보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무른댐이 처녀는 문배장사로 나간다/우두의 처녀는 참배장사로 나간다”는 내용은, 우두의 배꽃이 단순한 자연의 치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계와 노동 속에 놓여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래서 춘천의 봄은 더욱 입체적이다. 삼악산의 진달래가 산의 봄이라면, 우두의 배꽃은 들의 봄이었다. 하나는 붉게 타오르고, 하나는 희게 번져 간다. 산은 불꽃처럼 봄을 밝히고, 평야는 눈부신 침묵처럼 봄을 펼쳐 놓는다. 붉은 봄과 흰 봄이 서로를 마주 보며 한 도시의 계절을 완성하던 시절, 춘천은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꽃으로 기억되는 고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풍경은 시대 앞에서 같은 얼굴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오늘의 우두동을 떠올릴 때 많은 사람이 먼저 생각하는 것은 배나무보다 뽕나무이고, 배꽃보다 잠업의 기억이 더 가까운 기억들이다. 자료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잠업 산업이 커지면서 우두동 일대와 옥산포 일대에는 넓은 뽕나무밭이 들어섰고, 춘천농고의 잠업과와 제사공장 운영이 그 변화를 떠받쳤다. 배나무의 계절적 풍경은 점차 산업의 풍경으로 밀려났고, 꽃의 마을은 실을 뽑는 공장과 누에를 기르는 밭의 기억으로 바뀌어 갔다.
그 변화의 이면에는 식민지 근대의 그늘도 드리워져 있다. 춘천의 잠업전습소와 동양 최대라는 칭송을 들었던 동방제사공장(현 롯데인벤스 자리)은 지역 산업의 상징이었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가혹한 공간이기도 했다. 1927년 8월 잠업전습소의 10대 여학생들이 부당한 처우와 풍기 문란에 맞서 동맹휴학과 퇴교로 저항한 기록과, 1930년 20명의 노동자들이 부당한 임금에 저항한 기록 등은 우두의 뽕나무가 결코 순진한 근대의 상징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 뽕나무는 번영의 초록이면서도, 억압과 저항의 기억을 함께 품은 초록이었다. 꽃이 지고 산업이 들어선 자리였다.
이렇게 다시 읽고 나면, 차상찬의 글은 단순한 꽃 예찬문이 아니다. 꽃을 따라 지역의 시간을 더듬는 글이다. 삼악산 진달래는 춘천 사람들의 마음속에 붉은 봄을 심었고, 우두의 배꽃은 들판 위에 흰 봄을 펼쳐 놓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뽕나무가 들어서면서 한 고장의 풍경은 이처럼 자연에서 생업으로, 생업에서 산업으로 옮겨 가며 자기 얼굴을 바꾼다. 한때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찾았으며, 육영수 여사가 생을 달리하기 3개월 전 춘천을 찾아 잠업 산업을 독려했다는 기록은 다시 과거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우리가 차상찬의 글에서 읽어야 할 것은 그 꽃이 피어 있던 자리의 삶, 그 꽃이 사라진 뒤 들어선 시대의 질서, 그리고 그 모든 변화를 품고도 여전히 봄이면 무언가를 기억하게 하는 땅의 힘이다. 삼악산의 진달래와 우두의 배꽃, 그리고 뒤이어 우두를 채운 뽕나무는 서로 다른 빛깔을 지녔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춘천의 봄은 늘 꽃으로 왔으나, 그 꽃은 언제나 사람의 삶과 함께 피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현대어 번역=(사)차상찬기념사업회 △해설=이현준 한림대 강사·소설가 △발췌문헌= 청오생靑吾生 ‘요새에피는八道의ㅺㅗㅅ이약이’. ‘별건곤’ 4권 3호. 1929. 4. ‘차상찬 전집 5’ 456~465쪽. ‘차상찬현대문선집1’67~78쪽.
#진달래 #차상찬 #이야기 #현대어 #뽕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