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하게 관리받던 고등학교 생활에 익숙했던 내게 공강 시간과 내 자리가 없는 대학 생활은 무척 생경했다. 그 어정쩡한 시기에 딱히 할 일이 없을 때면 난 운동장 한쪽 스탠드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학생들로 북적이는 캠퍼스와 대조적으로 텅 비어 있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이 큰 공백이 캠퍼스의 일부가 되면 어떨까 상상하곤 했다.
주변 지형과의 높이차로 인해 생긴 옹벽과 둘 사이를 연결하는 계단. ‘사이(In-Between)’는 두 영역 간의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며 끊임없이 긴장감이 흐르는 상태
바다이야기게임 다. 다양한 높이와 통로를 통해 지형과 길이 되어 주변을 연결하고 다양한 행위를 모으는 숭실대학교 학생회관(작은 사진)은 그래서 ‘사이의 건축’이다.
캠퍼스를 확장하는 데 여러 제약이 따르는 도심에 있는 대학들은 주로 지하 공간이나 시설을 입체화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런데 이
백경게임 과정에서 캠퍼스의 소중한 오픈스페이스가 사라지곤 한다. 그래서 이를 최소화하거나 다른 형태로 대체하기 위해 공을 들인다. 2004년 숭실대학교도 부족한 학교 시설을 확보하고 캠퍼스의 기본 질서를 바꾸기 위해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건축가 이성관(한울건축)은 캠퍼스가 지하철역 바로 옆에 있어서 서울의
오션파라다이스예시 어느 대학보다 도심으로부터의 접근성이 편리하다는 이점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그는 캠퍼스의 중심인 중앙광장 북쪽에 면한 진리관(옛 도서관)을 리모델링하고 그 동쪽으로 조만식기념관과 웨스트민스터 홀을 새롭게 배치했다. 이를 통해 캠퍼스 동쪽에 연접한 서달산의 녹지가 두 건물을 거쳐 진리관으로 이어지는 축, ‘그린 스파인(Green Spine)’을 만들었다.
골드몽릴게임 그는 이 녹지의 흐름이 진리관 서쪽에 있는 대운동장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대운동장 바닥을 진리관 바닥 높이만큼 들어 올려 평탄하게 연결되는 거대한 인공 대지를 제안했다.
진리관의 리모델링이 끝날 즈음 ‘그린 스파인’ 개념의 마지막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학생회관 설계가 시작됐다. 건축가 최문규(가아건축)는 중앙광장이 진리관보다 12m 정도
오리지널바다이야기 낮은 높이차를 극복하기 위해 마스터플랜에서 제안한 방안이 아닌 대운동장의 바닥 높이를 낮추고 대운동장과 진리관 사이에 건축물을 배치했다. 이로 인해 학생회관은 중앙광장에서 보면 2층 건물이지만, 대운동장에서 보면 5층 높이로 솟은 지형이 되었다.
학생회관이 주변보다 낮은 땅에 놓임으로써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 첫 번째는 거대한 옹벽이 서달산에서부터 시작되는 녹지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상황이고, 두 번째는 채광과 환기라는 기능적 결함이었다. 최문규는 그린 스파인이 학생회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건물 북동쪽에 진리관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놓았다. 그리고 높이차로 인해 생길 수밖에 없는 대지 경계와 건물 사이의 공간은 빛과 바람이 스미는 전략적인 틈으로 활용했다.
여느 대학 캠퍼스와 마찬가지로 숭실대학교 중앙광장 주변에도 대학의 역사를 상징하는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광장 북서쪽 모서리에 자리 잡은 학생회관은 다른 건물들과 달리 크게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낮추어 광장의 배경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나마 V자 형태의 기둥과 그 위에 얹힌 캐노피(Canopy)가 조형적인 긴장감을 주는데, 이마저도 설계 초기 단계인 현상공모 안에는 없었던 요소다. 최문규는 학생회관의 외관을 인접한 진리관의 입면과 어우러지도록 설계함으로써, 중앙광장을 둘러싼 기존 건축물들과 시각적으로 다투지 않고 차분히 스며들도록 했다.
캐노피 아래에 서면 여섯 갈래의 길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이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에 맞게 건물 내부로 진입할 수도 있고, 중정의 흐름을 따라 위아래층을 오갈 수도 있으며,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스탠드나 동아리실로 발길을 옮길 수도 있다. 그래서 학생회관은 닫힌 상자가 아니라, 여러 갈래의 길이 모였다 흩어지는 광장 같다.
숭실대학교 학생회관을 설계하기 전, 건축가는 인사동 쌈지길(2004)을 통해 건축물과 길의 관계를 실험한 바 있다. 인사동 쌈지길이 그 앞을 오가는 사람들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라면, 학생회관은 캠퍼스의 길이 자연스럽게 건물을 통과하며 구성원들 간의 우연한 만남을 유도하는 채널이다. 하지만 두 건축물 모두 사람들의 움직임을 가로막지 않고 경험을 풍부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길’을 지향한다. 건축물이 다양한 높이와 통로를 통해 지형과 길이 되어 주변을 연결하고 다양한 행위를 담으려는 시도는 ‘랜드스케이프(Landscape) 건축’의 주요한 지향점이다. 랜드스케이프 건축은 땅과 건물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기 위해 주변 지형과 건축물의 형태를 일체화하고, 이용자가 어느 지점에서든 건물에 드나들 수 있도록 여러 개의 출입구를 만든다. 숭실대학교 학생회관도 25개의 출입구와 입체적인 경사로를 통해 캠퍼스의 동선을 건물 안으로 수용한다. 이처럼 땅도 건물도 아닌, 혹은 둘 모두이기도 하는 랜드스케이프 건축은 필연적으로 ‘사이(In-between)의 건축’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다.
하지만 모든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건축가의 의도는 ‘관리’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개방과 연결을 지향하는 랜드스케이프 건축에서 가장 빈번하게 마주하게 되는 요소는 시설관리와 안전을 이유로 설치된 ‘출입금지 펜스’다. 이곳에서도 중정을 통해 옥상으로 오르는 경사로에 철제 펜스가 세워져 이용자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건축의 핵심 키워드인 ‘사이(In-between)’라는 개념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이’는 단순히 두 영역의 교집합이 아니다. 때로는 두 영역을 모두 포함하는 합집합이기도 하고,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합집합의 여집합 같은 상태이기도 하다. 확실한 건 성격이 다른 두 영역이 교차하는 ‘사이’에서 비로소 새로운 시너지(synergy)가 생긴다는 점이다. 결국, ‘사이’는 고정된 영역의 개념이 아니라 유동적인 관계의 개념이다. 그것은 평온한 균형의 상태라기보다는 불안정하며, 끊임없는 긴장감이 흐르는 상태에 가깝다.
학생회관에서 이러한 ‘사이’의 특징이 가장 내밀하게 감지되는 곳은 동아리방이 모여 있는 남쪽 건물이다. 양쪽에 배치된 동아리방의 불투명한 유리로 인해 그 가운데에 있는 복도를 걷는 사람은 유리 너머의 실루엣을 의식하게 되고, 방 안에 있는 이는 복도를 지나는 누군가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서로의 존재를 희미하게 인지할 뿐 정체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이 경계는, 소통과 차단 그 어디쯤 머무는 ‘사이의 막’이자 숭실대학교 학생회관이 품은 사이의 건축이 개념적으로 발현되는 지점이다. 이 은밀하고 묘한 긴장감 속에서 학생들은 비로소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익힌다.
시대가 변했다.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막연히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던 나의 학창 시절과 달리, 챗GPT가 질문과 동시에 답을 내놓는 시대다. 이제 하나의 명사가 아닌 예닐곱 개의 해시태그(#)로 자신을 소개하고 직업을 설명한다. 불명확한 역할과 정의되지 않은 일을 견뎌야 하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선명한 영역 안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찾아내는 힘이다. 땅과 건물 사이, 안과 밖의 어딘가를 자처하는 숭실대학교 학생회관은 우리에게 정해진 답이 없어도, 경계가 흐릿해도 그 ‘사이’의 유동과 모호함에서 관계를 찾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사이의 건축’에서 우리가 마주할 ‘사이의 시대’를 읽는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