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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위. 윤명숙의 ‘일년 넘게 밥을 같이 먹은 짝꿍이 돌연 사라졌다’ : 조회수 4만4509회



일러스트=이철원


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데 까치 한 쌍과 멥새 두 마리가 솔가지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 자세히 보려고 일어나니 낌새를 스마트폰 개통철회 알아챈 놈들이 총알같이 날아가 버린다. 혹시나 다시 오려나 하고 식빵을 뜯어 창문턱에 뿌려놓고 다음 날 보니 흔적도 없다.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고 소문이 났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녀석들 덕에 창밖 풍경에 생기가 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새와 좋은 관계를 틀 때는 아니다. 당장 이웃과 친분을 쌓아가는 게 시급하다.
성격상 나는 lig손해보험우리캐피탈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번번이 인사하기가 버겁다. 반면 밥을 같이 먹는 내 짝꿍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곳에 들어왔는데도 친화력이 남달라서 아무하고나 잘 어울린다. 체중이 32kg에 불과한 약골 중 약골인데도 그녀는 포켓볼의 고수이고 탁구 동호회 회원이다. 나는 탁구도 칠 줄 모르고 포켓볼이 뭔지도 몰라 그녀와 상대할 거리가 없다. 그래도 인연이었는지 이사 근로복지공단 온 첫날 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두리번거리는 나를 식당 직원이 그녀에게 데려다주어 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십이지장을 떼어내는 큰 수술을 하고 나서 딸들의 결정으로 이곳에 왔다. 인테리어 업자인 둘째 딸이 모델하우스처럼 온갖 멋을 부려 집을 잘 꾸며 주었는데도 어쩐 일인지 그녀는 킹사이즈 침대를 놔두고 바닥에서 잠을 잔다. 남편 연체자담보대출 간병을 오래 한 버릇 때문일까. 남편을 떠나보내고 친구 따라 복지센터에서 7년 동안 봉사 활동을 했다며 그때를 가장 재밌고 흡족한 시절로 기억하는 걸 보면 그녀는 타인을 거두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 같다.
그런 그녀와 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은 지 어느새 일 년 하고도 석 달. 이젠 눈빛만 봐도 나는 그녀가 잠을 잘 잤는지, 기분이 수입차 할인 좋은지, 뱃속은 편한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밥 수저 놓자마자 벌떡 일어나 달려가면 화장실이 급한 거고, 믹스커피 뽑아 들고 주춤대면 다른 식탁으로 옮겨 앉아서 놀다 가겠다는 신호이다. 그러면 나도 말없이 따라가거나, 내키지 않으면 그냥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녀가 사라졌다. 식당에 내려오지 않아 간혹 나 혼자 밥을 먹은 적이 있긴 했지만 다음 날이면 평소처럼 믹스커피를 뽑아 들고 나타나, 며칠 어깨가 아파 요양 보호사가 상주하는 옆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고 생글대곤 했는데, 이번엔 어쩐지 느낌이 달랐다. 짝꿍과 형님 동생 하며 가깝게 지내는 분에게 물으니, 이명과 어지럼이 심한데도 아닌 척 숨기다가 딸들이 와서 보고는 바로 병원에 입원시켰다고 한다. 자식들한테 짐이 될까 봐 쉬쉬 숨긴 것까진 이해하겠는데 사정 뻔히 아는 우리한테까지 굳이 감추다니, 배려심도 이 정도면 자해에 가깝지 않은가.
저녁 식탁에서 형님이라는 그분이 대표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벨이 한참 울리고 나서야 전화를 받은 그녀는 병원이라고 했다. 내게 수화기가 넘어왔다. 여기나 그쪽이나 소음이 커서 우리의 망가진 청력으로는 서로 동문서답만 했다. 유일하게 알아들은 말은 나중에 자기가 전화할 테니 전화하지 말라는 것.
그러나 그녀한테서 전화는 오지 않았다. 대책 없이 기다리기 답답해서 나는 관리실을 찾아갔다. 입주자의 사생활 정보를 좀처럼 말하지 않는 직원의 무거운 입을 열어 간신히 들은 말은 전셋돈을 빼서 벌써 이사 가고 없다는 것. 아무리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도 그렇지 한마디 언질도 없이 그렇게 가버리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후 사람들은 혼자 밥을 먹는 나를 보기가 불편한지 자꾸 새 짝을 찾아보라고 성화했다. 나는 그냥 웃어넘겼다. 얼마 되지 않아 그때의 나처럼 신참 입주자가 식판을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내 식탁에 와 앉는 바람에 결국 또 짝이 생겼다.
이제 내 지난 짝꿍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녀에 대해 궁금해하면 다들 손사래를 치며 입을 다문다.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이곳에서 곁에는 두지만 곁을 주지는 않는 그들만의 관계 맺는 방식이 그런가 보다.
식후에 믹스커피를 한 잔 뽑아 그 옆에 차려놓은 식빵을 넘겨다본다. 새들이 나를 기다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서글픈 늙은이의 착각이겠지? 그래도 식빵 두 조각을 비닐봉지에 담아 집으로 간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할지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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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숙의 시니어하우스 일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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